옆동네 강아지들 짖는 소리가 그리운 겨울밤

“메밀묵 사려” 소리에 이야기는 더욱 깊어지고...

등록 2008.01.31 10:19수정 2008.01.3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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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도 지나고 입춘(立春)이 코앞인데 무척 춥습니다. 그래서인지 동지(冬至)보다 요즘의 밤이 더 길게 느껴지네요. 하긴, 과학의 논리와 실제 느낌이 다른 경우가 흔하니까요. 여름에도 하지(夏至)가 지나야 무더위가 시작되듯 신체구조가 잘못됐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저희 집 겨울밤 분위기는 소설(小雪)을 전후한 11월 하순부터 무르익기 시작합니다.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라는 말이 있듯 날씨가 추워지면서 사람들이 따뜻한 아랫목과 화로가 있는 안방을 찾으니까 그랬던 모양입니다.

쌀장사를 하면서 농사를 짓던 어머니와 누님의 손길은 가을걷이가 끝나는 늦가을부터 이듬해 설날과 대보름이 들어 있는 정월달까지 바빴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생신이 10월에 들어있고, 동짓달과 섣달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제삿날이 들어있어 집이 항상 북적댔으니까요. 게다가 매달 초사흘에 지내는 고사와 팥죽을 쑤어먹는 동짓날은 겨울밤 분위기를 한껏 돋워주었습니다. 사람을 좋아했던 저는 손님이 많으면 무조건 좋았지요.

매달 초사흘에 지냈던 고사는 시루떡과 삶은 돼지고기를 촛불이 켜있는 상위에 올려놓고 성주님과 부엌의 조항님, 곳간, 대문, 뒷간, 장독을 다스리는 신(神)에게 복을 빌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았던 저는 추운 줄도 모르고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구경했지요.   

매년 정월에는 독경(讀經)을 했는데, 손님들은 이야기꽃을 피우며 꼬박 날을 샜습니다. 지금이야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친구들이 알까 무섭더라고요. 그래도 무당이 칼을 들고 춤추는 마당 굿은 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금강경(金剛經)과 천수경(千手經)을 읽고 소지를 올리며 복을 비는 독경의 의미는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듯, 독경할 때 옆에서 지켜보며 배운 음률과 장단을 어른이 되어서도 뇌까렸으니까요.


독경은 새벽녘에 대를 잡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대를 어떻게 잡는지 보려고 했으나 야속한 잠 때문에 번번이 놓쳤습니다. 미신이긴 하지만 대잡는 광경을 못 본 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독경을 하고 고사를 지내는 어머니가 작은 누님과 제가 교회에 나가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세월이 가면서 미신을 멀리 했고, 제가 교회 집사가 되었을 때는 축하까지 해주셨습니다. 아마 하느님과 부처, 성주님 등을 함께 믿어서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하신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모든 생명이 얼어붙는 추운 겨울밤이면 천지가 고요했지만, 저희 집 안방은 그와 반대였습니다. 일반선 전기가 나가면 호야를 켜놓고 대화가 이어졌으니까요. 신작로에서 “쩔쩔 끓는 고추감주~”를 외치고, 깨엿과 군밤, 메밀묵을 사라는 소리가 들리면 ‘거리에서 파는 군밤과 깨엿은 비싸기만 하지 맛이 없고, 메밀묵은 가짜네 진짜네’하면서 토론의 주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메밀묵 사려~”와 함께 아스라이 들려오던 옆 동네 강아지들 짖는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서 맴돕니다.

손님들이 유달리 많았던 이유는, 음식 솜씨가 좋고 나눠먹기를 좋아했던 어머니 성품에. 동네에서 유일하게 신문을 구독했고, 일제 트랜지스터라디오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사에 관심 있는 아저씨들이 모여 뉴스와 연속극을 청취했으니까요. 저는 인기가 좋았던 ‘장희빈’과 ‘강화도령’이란 프로그램 제목과 인기프로였던 ‘스무고개’에 출연했던 ‘한궁남’ 박사와 ‘엄이채’ 박사 이름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어지면 초저녁부터 안방을 차지하고 있던 ‘원식이 아버지’와 ‘전기회사 집’ 아저씨가 어머니를 부릅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외갓집에서 가져온 뜨거운 물고구마와 김치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아저씨들이 가실 때쯤이면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식혜가 나왔지요.

애처가였던 아버지는 여행은 물론, 영화 관람도 꼭 어머니와 함께 가셨습니다. 어쩌다 홍어 전문가인 ‘난순네 엄니’를 데리고 가셨는데, 입담이 좋은 ‘난순네 엄니’의 실감나는 영화이야기에 감격하고 슬퍼했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아버지는 얼굴이 넓은 ‘난순네 엄니’에게 ‘박노식 누님’이라는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는 차가운 광목 이불호청에 살을 비벼댔습니다. 그러다 온기가 느껴지면 형제들끼리 이불전쟁이 벌어집니다. 그래도 측간에 갈 때는 추위에 떨면서도 촛불을 들고 기다려주는 동지가 되었지요.

코흘리개 시절의 애틋한 추억들이 오래된 흑백필름처럼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돌아가는 것을 어떻게 나이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습니까. 계절을 가리지 않고 식객들이 끊이지 않았으니 이런저런 추억이 많을 수밖에요

그렇다고 마냥 좋은 추억만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동상에 걸린 손목에 메주콩 주머니를 묶고, 두붓물에 몇 시간씩 발을 담그던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긋지긋합니다. 가려움증이 심할 때 소나무 껍질처럼 갈라진 손등을 긁어대느라 홍역을 치렀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여자 손처럼 곱답니다.

형제가 싸우면 아버지는 매를 드는 게 아니라 등을 맞대게 하고 광목 끈으로 묶어 메주 포대가 있는 윗목에 앉혀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아랫목에서 꼭 맛있는 걸 드시지요. 약을 올렸던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네 탓이라며 꼬집고 싸우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웃고 맙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고단수 벌칙이었지요.

지금도 부모님 제삿날 형제들이 모이면 첫째와 둘째 누님이 묶이었고, 작은 누님과 형이 묶이는 상대가 됐다며 풋풋한 정이 넘치던 옛날을 회상하며 웃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혼이 50년 넘게 서린 집이니 옛날의 겨울밤 분위기가 더욱 실감나게 살아날 수밖에요.

시세에 웃돈을 더 얹혀주겠다는 중개인들의 회유와 편리한 아파트의 유혹을 뿌리치고 부모가 물려준 집을 55년 째 지켜오며 형제들에게 마음의 풍요를 제공해주는 형님께 고개 속여 감사할 따름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보이(http://www.newsboy.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보이(http://www.newsboy.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겨울밤 #메밀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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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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