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채이 작품에서 작가는 당시 영국 의료계 현실과 일부 의사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혜원 출판사
<성채>라는 책은 그 당시 폭발적인 관심과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왜? 작가 자신도 의사였기 때문에 그 당시 의료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었고, 문제점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었다고 한다. <성채>의 주인공앤드루 맨슨은 불합리한 의료 구조, 돈맛에 길들여져 의사라는 직무를 자각하지 못하는 의사들에게 날카롭게 비판을 퍼붓는다. 그러면서 의사란 의료 제도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강렬한 의문을 남긴다. 무엇보다
"의사만이 옳다는 생각은 곧 과학적인 진보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라는 말로 의사들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특권 의식, 또 자신들만의 성을 단단히 쌓아 다른 사람은 침범하기 힘들게 만들어 놓은 데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을 현대 사회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들도 새겨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앤드루 맨슨이 '의사만이 옳다'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한 말 속에는 불합리한 의료 시스템이나 의사들의 자질 문제 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그 아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만이 옳다는 생각은 곧 과학적인 진보의 죽음을 의미합니다.물론 70년 전과 지금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의료 기술도 발전하고 시스템도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의료 기술이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지금의 의료 기술만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들이 아무리 말려도 그런 병에 걸린 이들은 현대 의료 기술이 아닌 다른 힘을 빌릴 생각을 종종 갖게 된다. 초기에 발견하면 잡을 수 있다는 암, 물론 잡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내가 정작 어머니를 암으로 떠나 보내고 나서 놀랐던 사실은 재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재발하는 경우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었다. 어머니께서 암에 걸린 직후 대학교 한 후배가 2년 후에 재발하실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이 그렇게 딱 맞아 들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의사들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살고 싶은 본인의 의지를 따라오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경우에 있던 이들이 병원에서 치료 받아 완치하지 못한 것을 보면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살겠다는 의지가 강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인간인 이상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굿이나 초자연적 힘에 기대려고 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때문에 사이비 사기꾼들에게 당하는 이들도 많이 생기는 것이고.
그런 지경에 이르면 의사들은 그것을 누구 탓이라고 할까? 물론 다른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사기를 친 사람과 의사 말을 안 듣고 그런 말을 믿은 환자 탓이 크겠다. 그렇지만 의사에게는 과연 문제가 없을까? 환자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보고도 마음이 흔들렸을까? 그것은 환자가 의사에 대해 품고 있는 신뢰가 강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그 신뢰는 왜 그리도 단단하고 견고하지 못한 것일까?
대학교 시절 좋아하던 한 교수님도 병에 걸리셔서 한 동안 정말 힘들어하셨는데 다시 몸이 좋아져 물어보니 혼자서 책을 파고 들며 연구하셨다고 한다. 병원에 가봐야 잠깐 얼굴 보는 게 다고 궁금한 걸 물어봐도 제대로 된 대답을 얻기 힘들었다는 거다. 그래서 직접 자기 병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고 가려 먹을 음식, 먹어야 할 음식 등을 챙겨가며 건강을 회복했다는 거다.
물론 모든 경우가 다 이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의사 말이 다 옳다'는 데 대해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자신의 병에 대해 성심성의껏 봐주지 않는다는 그런 오해가 병원을 백화점 쇼핑하듯이 돌아다니는 이들이 있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의 상황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