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말이 정말 다 옳은가요?

<뉴 하트>를 보면서 느껴지는 묘한 불편함

등록 2008.02.02 12:54수정 2008.02.02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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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수없이 날아드는 함부로 과학적인 것이라고 선전해대는 광고책자 따위는 뜯어보지도 않습니다. 제 감정이 격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진정으로 자유로운 게 아닙니다. 의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엉터리이고 오로지 의사만이 옳다는 생각은 곧 과학적인 진보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건 과연 누가 한 말일까? 힌트를 원하나? 최근 매섭게 불고 있는 MBC 인기 의학 드라마 <뉴 하트> 주인공들과 직업이 같은 소설 속 인물이 한 말이다. 갑자기 이 인물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개인적으로 <뉴 하트>라는 드라마를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뉴 하트>는 보기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지나치게 의사를 절대적인 존재로 그리고 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병에 관한 한 의사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환자와 의사가 치료나 병 증세에 관한 다툼을 할 때 일방적으로 환자를 나쁜 쪽으로 그려낸다든지)는 것을 은연중에 강조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또 최근 드라마 속에서 병원에 입원해 있던 한 조직폭력배(의사라고들 하는데 한약을 내팽겨 친 것은 의사가 아니라 조직폭력배다)가 한약을 내팽겨 치면서 '이딴 거 먹지 말라' 고 했던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이를 두고 한의사와 의사 간의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다. 블로그가 활성화되다 보니 현역 의사와 현역 한의사들간의 인터넷 공방전도 한동안 불을 뿜었다.

사실 그 장면만 놓고 보면 의사가 직접 한약을 내팽겨 친 것도 아니고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한의원에서 받았다기보다 건강원 같은 곳에서 환자가 구입한 것 같았는데 막상 의사와 한의사간의 싸움이 일어나니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나 보다. 그저 의사와 한의사가 서로 자기 말만이 옳다고 주장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니 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최근, 아니 따지고 보면 예전에도 자주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의사, 한의사 선생님들과 의사들에게 관심 있는 많은 분들께 글 앞에서 저 멋진 대사를 읆조린 책에서 만나 볼 수 있는 또 한 명의 의사를 소개해드리고 싶다. 무언가 느끼시기를 바라면서.

진정한 의사의 모습을 그리고자 한 <성채>


이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바로 A. J. 크로닌이라는 의사이기도 했던 영국(스코틀랜드 출생) 작가가 쓴 <성채>라는 공간에서다. 이 작품은 1937년에 처음 발간되었다. 이 때를 기준으로 삼으면 지금부터 무려 70년 전의 이야기인 셈이다.

바로 그 70년 전의 한 의사가 '의사만이 옳다고 하면 과학적인 진보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외쳤다. 그렇다면 70년 전의 의사가 했던 말이기 때문에 지금은 새겨들을 가치가 없는 말일까?


a 성채 이 작품에서 작가는 당시 영국 의료계 현실과 일부 의사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성채 이 작품에서 작가는 당시 영국 의료계 현실과 일부 의사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 혜원 출판사

<성채>라는 책은 그 당시 폭발적인 관심과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왜? 작가 자신도 의사였기 때문에 그 당시 의료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었고, 문제점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었다고 한다. <성채>의 주인공앤드루 맨슨은 불합리한 의료 구조, 돈맛에 길들여져 의사라는 직무를 자각하지 못하는 의사들에게 날카롭게 비판을 퍼붓는다. 그러면서 의사란 의료 제도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강렬한 의문을 남긴다. 무엇보다

"의사만이 옳다는 생각은 곧 과학적인 진보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라는 말로 의사들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특권 의식, 또 자신들만의 성을 단단히 쌓아 다른 사람은 침범하기 힘들게 만들어 놓은 데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을 현대 사회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들도 새겨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앤드루 맨슨이 '의사만이 옳다'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한 말 속에는 불합리한 의료 시스템이나 의사들의 자질 문제 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그 아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만이 옳다는 생각은 곧 과학적인 진보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물론 70년 전과 지금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의료 기술도 발전하고 시스템도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의료 기술이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도 지금의 의료 기술만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들이 아무리 말려도 그런 병에 걸린 이들은 현대 의료 기술이 아닌 다른 힘을 빌릴 생각을 종종 갖게 된다. 초기에 발견하면 잡을 수 있다는 암, 물론 잡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내가 정작 어머니를 암으로 떠나 보내고 나서 놀랐던 사실은 재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재발하는 경우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었다. 어머니께서 암에 걸린 직후 대학교 한 후배가 2년 후에 재발하실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이 그렇게 딱 맞아 들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의사들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살고 싶은 본인의 의지를 따라오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경우에 있던 이들이 병원에서 치료 받아 완치하지 못한 것을 보면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살겠다는 의지가 강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인간인 이상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굿이나 초자연적 힘에 기대려고 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때문에 사이비 사기꾼들에게 당하는 이들도 많이 생기는 것이고.

그런 지경에 이르면 의사들은 그것을 누구 탓이라고 할까? 물론 다른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사기를 친 사람과 의사 말을 안 듣고 그런 말을 믿은 환자 탓이 크겠다. 그렇지만 의사에게는 과연 문제가 없을까? 환자가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보고도 마음이 흔들렸을까? 그것은 환자가 의사에 대해 품고 있는 신뢰가 강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그 신뢰는 왜 그리도 단단하고 견고하지 못한 것일까?

대학교 시절 좋아하던 한 교수님도 병에 걸리셔서 한 동안 정말 힘들어하셨는데 다시 몸이 좋아져 물어보니 혼자서 책을 파고 들며 연구하셨다고 한다. 병원에 가봐야 잠깐 얼굴 보는 게 다고 궁금한 걸 물어봐도 제대로 된 대답을 얻기 힘들었다는 거다. 그래서 직접 자기 병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고 가려 먹을 음식, 먹어야 할 음식 등을 챙겨가며 건강을 회복했다는 거다.

물론 모든 경우가 다 이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의사 말이 다 옳다'는 데 대해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자신의 병에 대해 성심성의껏 봐주지 않는다는 그런 오해가 병원을 백화점 쇼핑하듯이 돌아다니는 이들이 있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의 상황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a <뉴 하트> 최강국 최강국 같은 의사가 많다고 믿는다.

<뉴 하트> 최강국 최강국 같은 의사가 많다고 믿는다. ⓒ iMBC


환자가 의사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게 되기를

그리고 그것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 의사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두껍게 장벽을 쌓아놓고 환자보다 물질을 앞세우고 있다는 환자들의 뿌리깊은 그런 의심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환자보다 제약 회사의 이익을, 환자보다 돈을 더 중시하는 의사가 존재한다는 환자의 어리석은(?) 믿음이 결국 스스로 병을 제대로 치료할 기회를 놓치게 하거나 혼자서 자신의 병을 고치겠다고 매달리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최강국 교수처럼 열심히 일하는 의사 분들께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뉴 하트>에서 최강국 교수 입을 통해서 의사를 믿지 못하는 환자에 대한 푸념을 듣는 것이 사실 좀 불편하다. 여전히 나는 가끔 신문 기사를 장식하는 의사와 제약 회사간의 리베이트 기사를 보면서 정말 '의사말이 다 옳을까' 하는 의심을 떨쳐내기 힘들고, 처방전을 받아도 내가 무슨 약을 먹는지 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현실에서 병에 관한 한 의사 말이 절대적이니 따르라 라고 해도 어쩐지 찜찜한 마음을 던져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불편함이 없어지기를 기대한다. 난 우리나라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들이 최강국 교수와 같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니 믿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글루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글루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뉴 하트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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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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