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집권당의 낡은 계파정치, 언제까지?

[유창선 칼럼] 한나라당의 공천갈등 봉합, 담합공천의 전주곡

등록 2008.02.05 09:07수정 2008.02.0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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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형 전력자의 공천 신청을 받기로 한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수용키로 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 참석하기전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박근혜 의원은 손에 다보스리포트 '힘의 이동'을 들고 있었다. ⓒ 이종호

벌금형 전력자의 공천 신청을 받기로 한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수용키로 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 참석하기전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박근혜 의원은 손에 다보스리포트 '힘의 이동'을 들고 있었다. ⓒ 이종호

분당 위기로 치닫던 한나라당의 공천갈등이 일단 봉합됐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공천신청 불허 기준을 명시한 당규 해석과 관련하여 벌금형 해당자는 공천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결정은 문제의 당규 조항을 탄력적으로 해석하기로 한 최고위원회의 결의사항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특정인 구제 위한 자의적 당규 해석

 

강재섭 대표가 이 방안을 수용한데 이어 박근혜 전 대표도 수용의사를 밝힘에 따라 한나라당내 '친 이명박-친 박근혜'간 갈등은 파국의 위기를 넘겼다.

 

한때 분당위기가 거론되던 한나라당으로서는 일단 안도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번 결정으로 계파간의 갈등을 수습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명분면에서는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되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특정인의 공천을 위해 공당의 당규가 자의적으로 해석되었다는 점이다. 논란이 된 한나라당 공직후보자 추천규정 3조 2항의 내용은 이렇게 되어있다.

 

"…… 각급 공천심사위원회는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위반으로 최종심에서 형이 확정된 경우, 공직후보자 추천신청의 자격을 불허한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는 이 조항의 적용범위를 금고 이상의 형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조항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벌금형 해당자는 공천신청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할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아마 공천탈락자가 불복해서 이 조항 해석과 관련된 소송이라도 낼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김무성 최고위원이라는 특정인에게 공천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자의적인 당규해석이 당론이 되어버린 한나라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사정이 다급해도 그렇지, 당규 해석이라는 것이 어디 자기들 마음대로 '결의'하면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당의 입장에서 꼭 김무성 최고위원을 구제해야겠다고 판단했다면 차라리 정식절차를 거쳐 당규를 개정하는 것이 옳았다. 당규에 대한 억지 해석을 요구한 당 지도부는 물론이고 부당한 외압을 받아들인 공천심사위도 모양이 우습게 돼버렸다.

 

계파정치 속에 싹트는 담합공천의 우려

 

이러한 방식의 문제해결을 정치력에 의한 해결이라고 평가해줄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은 공당으로서 지켜야할 원칙과 상식을 저버린 담합의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한번 흔들린 원칙은 다시 흔들리게 되어 있다. 이번 과정은 한나라당의 공천문제가 철저히 계파간의 문제가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친이'-'친박'으로 대별되는 계파정치의 논리는 다른 무엇에 앞서는 위치에 있었다. 계파간의 합의에 따라서는 공당의 당규조차도 무용지물이 되거나 '엿장수 마음대로' 할 수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미 '친박' 측에서 공천보장 희망자 명단을 '친이' 측에 전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간에,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아마도 물갈이의 대상자는 자기 계파가 쳐놓은 보호막에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할 것이다. 공천탈락의 위기에 직면한 사람은 자기 계파의 수장에게로 달려갈 것이다. 계파에 확실하게 줄서는 것이야말로 공천을 따는 지름길이 되고 있다.

 

계파의 힘은 다른 무엇에 우선한다. 그것이 지금 부인할 수 없는 한나라당의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물갈이'로 상징되는 개혁공천이 가능할까, 객관적이고 공정한 공천이 가능할까. 시작하기 전부터 의문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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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갈등으로 당무를 거부했던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이종호

공천갈등으로 당무를 거부했던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이종호

 

구시대적 계파정치 언제까지 계속하나

 

단지 공천문제를 넘어서서 한나라당의 계파정치는 지켜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단계로 들어선지 오래이다. 때만 되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계파간의 갈등은 이제 국민들에게 커다란 피로감을 안겨주고 있다.

 

더구나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은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이 계파간의 대결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한나라당은 고개를 떨구어야 마땅하다.

 

한나라당 계파정치의 내용을 뜯어보면 철저한 인물중심의 논리만이 있다. 지난해 후보경선 과정에서도 그러했지만, 이번 공천갈등의 과정을 돌아보면 인물중심 계파정치의 논리 이외에 아무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

 

'친박'은 '일'만 생기면 모이고 결의하고 '탈당불사'를 외친다. 그런데 거기서 '친박'과 '친이' 사이에 어떤 의미 있는 노선과 정책의 입장차이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서로의 노선과 정책이 다르다면 그것을 가지고 경쟁하고 대결하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사람 챙기기, 계파의 세 과시, 그리고 그에 대한 반격… 순전히 그런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전형적인 구시대적 계파정치의 모습이다. 거기에는 비전도 노선도 정책도 없다. 오직 '보스'와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2007년에 집권하게 된 한나라당 계파정치의 실상이다. 우리는 새로운 집권당의 낡은 계파정치를 언제까지 인내하며 지켜보아야 하는가.

2008.02.05 09:07 ⓒ 2008 OhmyNews
#한나라당 #계파정치 #공천갈등 #이명박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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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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