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를 줄이고 관객을 이용한 웃음 폭탄
어설픈 각본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어설픈 각본이라는 것은 잘 짜인 각본에서 정해진 대로 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과거에는 잘 짜인 각본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회적인 풍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풍자를 통해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기 위해서는 그만큼 각본이 탄탄해야 하며 적절한 상황 묘사를 통해 풍자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늘근 도둑 이야기>는 사회적인 풍자를 통한 조소보다는 관객들과 신명나게 웃음 한바탕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특별하게 잘 짜인 각본보다는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 등으로 웃음을 이끌어내려 했다. 연극은 출발부터 범상치 않게 시작한다. 도둑들이 미술관에 몰래 들어왔다는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서 조명을 모두 꺼버리고 그들의 손전등 빛으로만 조명을 대신하고 두 명의 도둑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점차 조명이 켜지고 관객들에 얼굴을 본 도둑들은 관객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수많은 관객들을 보고 이야기한다. “몬 놈의 인물화를 이렇게 집중적으로다가 그렸을까?”라고 말하자 관객들의 얼굴은 그림 속의 인물이 되어버리고 하나같이 못생긴 사람들이 그려진 그림으로 둔갑한다.
가령 관객들이 “앤디워홀의 마릴린 먼로? 워디가 마릴린 먼로여?”라고 하거나 “막스 에른스트,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이여!” 등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관객들을 그림으로 이용한다.
혹은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면서 관객들로부터 웃음을 유발하거나 할 때 큰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즉석에서 애드립을 통해 다시금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등 연극은 관객과의 소통을 제일 우선시하고 있다.
그 덕분에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고 관객들은 연극에 쉽게 몰입을 할 수 있다. 이처럼 무언가 도둑질을 하기엔 어설퍼 보이는 모습을 한 늙은 도둑과 더 늙은 도둑의 모습은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다.
90분 내내 관객들은 웃을 수 있고 덕분에 각박해진 삶 속에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연극은 시종일관 웃음과 익살스러운 해학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준다.
가벼운 코미디극으로 끝을 맺지 않는 연극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웃음만을 주거나 하지 않는다. 그들이 내뱉는 대사를 잘 들어보면 요즘 시대상황을 이용한 부분들이 많다. 미술관에 들어가 개가 잠든다는 시간인 2시까지 기다리다 허탕을 치고 경찰에게 잡혀온 그들.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늙은 도둑에게 고향이 어딘지를 물어보는 대목에서 그는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의 접경지역인 지리산이라며 물이 끊겼을 때 정부에서 이제 곧 대운하를 팔 예정이니 그곳에서 물을 길어 마시라고 답변했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단선적인 웃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해학을 가미해 익살스러움을 더하고, 가벼운 코미디극으로 끝을 맺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해학이 깊이 있게 반영되지 않고 사이사이에 표현되어지다 보니 관객들이 쉽게 그 부분에 대해 눈치를 채기는 어렵다.
다만 그러한 부분이 조금은 아쉽지만 큰 웃음과 즐거움이 대신하고 있어 <늘근 도둑 이야기>는 여전히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듯하다. 특히 이번 연극은 <화려한 휴가>를 연출했던 김지훈의 데뷔작이어서 더욱더 주목을 받고 있다.
풍자의 통쾌한 맛은 없지만 시종일관 웃고 갈 수 있는 <늘근 도둑 이야기>가 연극계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미술관 털러 간 어수룩한 늙은 도둑들의 이야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