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하 교수
최봉실
가르치기만 하지 기르지는 않는 교육 우리의 대화는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짚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교육이라는 것은 교(敎)와 육(育)으로, ‘교’는 가르치는 것이고 ‘육’은 기르는 것인데, 한국 교육의 가장 근본적 문제는 가르침만 있고 기름이 없다는 점입니다. 정보를 제공해도 아이들을 사람으로 세우는 일을 소홀히 합니다. 대학 교정에서 침을 뱉고 뒷사람 상관없이 문을 닫아버리고 교내에서 비에 젖은 우산을 흔들기 예사입니다. 인간되게 하는 기름은 없고 정보를 쏟아 붓는 ‘교’만 있는, 이런 문화가 잘못된 것입니다. 너무 성공 지향적이고, 기술자를 만들어 점수를 잘 받는 것만 지향하게 하는 교육입니다. 잘 섞여 살아가는 것을 돕는 교육은 없습니다.”
이 교수는 영어교육이 영어교육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사회 분위기, 사회 구조가 정책을 통해 어떤 성과를 내기 어렵게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문화가 지배적이며, 각종 시험에서 교사가 낀 부정행위가 일어나는 것은 근본적인 정의감이 사회 전체적으로 크게 떨어진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옳고 그르냐는 분별하지 않고 ‘원하는 걸 이루느냐 마느냐’에만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교육은 영어교육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더 폭넓은 사회 전체 가치관의 문제, 정의감의 문제, 함께 사는 소양의 문제를 아울러 짚어야 할 문제라고 꼬집었으며,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직접 학생들에게 '섞여 사는 훈련'을 강조하며, 지식인으로서 사회 평등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학생들과 함께 고민한다고 했다.
영어가 강조될 때 우려스러운 점은 바로 이 교수가 지적한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영어말고도 중요한 것이 많은데, 사회가 경쟁을 우선시 하며 영어만을 중요하게 여길 때,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는 중요한 가치들이 상실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자신의 강의에서 직접 실천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조기몰입교육을 하고 영어공용화 수준의 영어실력을 국가가 키워내야 한다고도 적극 주장한다.
다음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 이전에 공부할 때와 지금 영어공부할 때의 장단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과거에는 특별한 요령보다는 무조건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교육적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반면 영어 자료 자체가 부족했지요. 그에 비해 요즘은 영어 자료가 많아 쉽고 다양하게 좋은 학습자원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많은 학습 자료가 오히려 적절한 활용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의사소통 중심’이라는 개념을 잘못 적용하여 학습자의 학습 영역이 매우 피상적인 구술능력에 국한되고, 시험 위주의 교육으로 오히려 폭넓은 영어자료 해독력이 뒤떨어지게 되었습니다."
- 한국의 영어 실력의 취약함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이 공부하는 데 실전 능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실력이 떨어진다는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적극적 노출, 즉, 주의 깊게 듣기, 주의 깊게 말하기, 주의 깊게 쓰기, 주의 깊게 읽기 등이 전적으로 부족하고, 영어 학습이 ‘문제 풀기 기술 향상’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문법 필요없다는 생각은 잘못"- 의사소통 개념이 잘못 적용되었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지요?"6차 교육부터 그렇게 가고 있지만, 현재 개정 7차 과정의 패러다임은 ‘의사소통중심 교육’으로 가자고 되어 있지요. 의사소통이 안 되면 외국어 배우고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개념을 잘못 적용했다는 말입니다. 실제 외국 학자들이 한국 교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논문에서도 한국 교사들이 이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의사소통능력’의 학술적 개념은, 첫째, 문법적인 능력(언어학적 지식), 둘째, 사회언어학적 능력(담화 활용적 능력), 즉, 해도 되는 말인지, 적절한 상황인지를 판단하는 능력, 셋째, 담화적인 능력, 즉, 어떤 주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고, 그만 하고 싶어 할 때는 어떻게 주제를 종결해야 하는지를 알고 엉뚱한 소리 안 할 수 있는 능력, 넷째, 전략적인 능력, 즉, 같은 말을 해도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능력, 이 네 가지 개념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말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제일 중요한 언어학적 능력, 즉 문장의 적절성(규칙상의 적합성 문제)을 전혀 안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의사소통교육에서 문법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이해입니다. 나머지 세 가지가 더해져야 한다는 건데, 제일 중요한 것을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실제적인 언어자료 접근성은 떨어지고, 아주 깊이 있는 얘기는 아무것도 못하고 말만 하는 결과가 돼버린 것입니다. 껍데기만 만들어 놓은 것이죠. 내 후임으로 오신 연수평가원장은 의사소통 개념을 잘못 이해해 ‘노래방 효과’를 만들어 냈다고 했습니다. 가사 나오면 잘하는 것 같지만, 반주 꺼지고 자막 안 나오면 노래 못한다는 것이죠.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외부적인 메커니즘 때문에 잘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실속은 없는, 실력 향상은 없는 것이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그럴 듯하지만 데이터 독해 능력은 떨어지고, 깊은 얘기는 나눌 수 없는 허울뿐인 결과가 초래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논문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 문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오독할 수 있는 위험이 있지 않습니까?"말은 제대로 하는 게 기본입니다. 제대로 안 해도 좋으니 ‘입만 벌려라’고 하는 것, 입만 벌리게 하는 능력으로 의사소통개념을 잘못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실속 없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 시험 위주 교육으로 폭넓은 해독능력이 떨어졌다고 하셨는데, 시험 위주 교육이 미친 영향을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 주십시오. "한국 사람들은 테스트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10년 동안 외국어연수평가원장을 지냈습니다. 10여 년 동안 평가 업무를 해 온 셈입니다. 한국 학생들은 실제 유창성, 언어 숙련도보다는 테스트 기술자가 되었버렸습니다. 지문이 나왔을 때 독해 문제를 접하면 어떻게 해독할 것인가, 주로 사용되는 수사 구조 등은 무엇인가 하는 언어의 본질적 문제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답 찾는 기술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영어학습을 위해 초중고등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자료는 거의 절대 다수가 문제집입니다. 문제를 어떻게 푸는가만 공부하고 있어요. 문제를 만들다보면 시험 문제는 거의 정형화될 수밖에 없는데, 문제 출제자가 생각하는 트릭을 반대로 짚어서 그 트릭에 빠지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생활에서 문제 푸는 언어 사용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습니까? 자연적인 상황에서 문제 푸는 것으로 소통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대화와 상호 관계를 통해 소통하고 정보를 얻는 것이고 그것이 언어 사용의 목표이지요. 우리가 지금 대화를 통해 소통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처럼 말입니다. 문제 푸는 것을 통해서 소통하고 정보를 얻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깊이 보는 것은 뒷전이고 모두 문제 푸는 연습만 하고 있으니 안 될 수밖에 없지요."
- 영어자료 해독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일반적인데요. 외교 분야에서도 그런 능력이 많이 취약한 상황인가요?"미 대사관에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국 외교관들과 많이 접촉했는데, 80년대 일이니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겠지만 많은 외교관들의 능력이 달렸습니다. 회의 끝나고 회의 자체 내용을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이는 아주 치명적인 일입니다. 다 알아듣고도 저 단어가 아닌 왜 그 단어를 썼을까를 고민하는 그 정도의 언어 능력이 필요한데 기본적인 것조차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무역 쪽에서 일하거나 유학 가서도, 외교에서도, 관광에서도, 모든 언어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영역에서 영어를 제대로 못하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얻지 못합니다. 모두 영어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제대로 잘 하는 사람은 뜻밖에 적습니다. 이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입니다.
각 국의 경쟁 상대가 결국 영어로 소통합니다. 거기서 제대로 성과를 내려면 버금가는 수준의 영어를 해야 그런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데, 지금의 영어구사력으로는 아시아의 허브도 어려워요. 중국인과 일본인이 한국말을 써주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두 나라만 모이면 반드시 영어를 씁니다. 국제 공용어이기 때문이죠. 어느 나라에서 학회가 있어도 그 나라 언어와 영어를 반드시 씁니다. 이런 환경에서 영어 경쟁력 없으면 어려워요. 한국어 버리자는 말이 아닙니다. 한국어도 잘 해야 합니다. 한국어도 막강한 언어이지요."
"싫다고 해도 시켜야 하는 게 교육철학"- 전문적으로 영어를 하는 사람의 영어실력이 더 갖춰질 필요가 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는데, 초중고등 학생의 경우에 영어노출시간을 늘리는 것이 필요할까요? 영어를 좋아하고 관심 있는 사람이 하려고 하면 노출시간을 늘리는 것이 맞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영어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이 자기 주체성을 잘 배려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영어노출시간을 늘리도록 공교육 차원에서 강제받는 게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요. "좋은 질문입니다. 그것은 교육철학의 문제입니다. 근본적인 교육의 전제는,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앎과 모름의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것이 교육이죠.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 수학을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도 그것을 하도록 설득하고 하게 하는 것은, 그것을 하게 되면 좋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시키는 것입니다.
사회 통념상, 사회에서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대로 살아남아서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도록, 나란히 경쟁하게 해주기 위해, ‘칼은 위험하다,’ ‘불은 위험하다’고 가르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때로는 그 아이의 미래를 위해 이렇게 강제하는 게 필요할 수밖에 없는 교육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철학의 문제입니다. 공교육 체계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 하라는 얘기와 같지요.
영어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 통역 쓰면 된다고 하는 사람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교육은 ‘네가 이 다음에 생활해야 하는 세계는 영어를 활발하게 써야 하는 세계이고, 지금의 너의 목표는 그것이겠지만, 지금 생각으로 너의 목표를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할 세계에서는 영어가 필요하다’는 그런 생각을 정부, 학부모가 가지고 있다면, 싫다고 해도 시켜야 하는 게 교육철학이라는 말이지요.
영어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교육철학 측면에서는, 우리 시장이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영어가 필요하고 배워야 한다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 둘 모두 이중 언어 사용자입니다. 그 아이들이 살 세상이 어디일지 나는 단정짓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사는데 지장없게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언어 정체성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완벽한 한국인이자 완벽한 영어사용자입니다. 그 아이들은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큽니다. 전주 이가의 후손임을 떳떳이 말하고 한국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미국 문화를 숭배하지도 얕잡아보지도 않습니다.
스페인어(전 세계 2,3위권), 중국어도 가르치려합니다. 세계인을 기르고자 하는 것이죠. ‘한국 이외의 것은 다 나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초중고등 공교육 체계에서는 아이들의 장래 세계를 위해 과감히 투자해야 합니다. 그 부담을 부모가 지게 하지 말고 정부가 져 주어야 한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 일반적으로 영어를 강조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인성함양이나 더불어 살아감을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극도의 경쟁이 강조되는 경향이 큽니다. 기존의 사회 분위기를 보면 영어에 매몰되어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도록 이끌어줄 관계가 취약해 보입니다. 그런 관계와 장이 확보되지 않은 채, 영어공교육을 강화했을 때 우려되는 점이 있지 않을까요? "사회 분위기를 명확히 얘기할 순 없지만, 한국 문화가 위축되리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영어교육 강조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첫째, 위축되지 않으리라는 신념이 있습니다. 영어로만 하면 정체성이 상실되고 사대주의에 빠지고, 한국말 능력이 떨어지고, 영어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전 세계에 6700개의 언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2주에 하나씩 언어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1년에는 스물다섯 개의 언어가 사라지고 있어요. 언어 제국주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점에 있어 한국어가 염려될 문제는 아닙니다.
사라지고 있는 언어들은 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원어민들이 1천명이 안 되는 수준이에요. 밑에서 강하게 지원 안 해주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언어들입니다. 한국어는 불어보다도 한 순위 앞선 전 세계 13위권 언어입니다. 이런 언어가 사라지긴 현실적으로 어렵지요.
또한 영어로 몰입수업하자는 패러다임은 일제에 의해 진행된 수업이나, 인디언을 대상으로 진행된 수업처럼 완전히 모국어를 못쓰게 하는 수업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조기 몰입하면 2, 3학년에 이중언어구사자(바이링규얼)가 될 수 있습니다. 5, 6학년쯤 되면 한국어, 영어 반반씩 공부하게 합니다.
몰입교육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전 과목을 영어로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몰입교육의 핵심은 수업 내용이 영어, 우리말 반반씩 간다는 것에 있습니다. 몰입교육에도 굉장히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는 것이죠. 전 과목을 영어로만 진행한다는 것이 몰입교육의 다가 아닙니다. 취학 전 아동에게 실시하는 조기몰입이 있고, 약간 뒤로 지연해서 3,4학년 때 실시하는 지연몰입, 5,6학년이나 6,7학년에 실시하는 후기 몰입 등이 있으며, 전 과목을 진행할 수도 있고, 일부 과목에서만 진행할 수도 있고, 매우 다양합니다. 전 과목을 영어로만 하는 것이 실제 몰입교육의 다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