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의 의미를 이제사 깨닫다

"여보, 맞지 않는 사람끼리 만나서 사느라 이리 고생이래요!"

등록 2008.02.18 11:03수정 2008.02.1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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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은 별로 안 추울 거라더니, 제대로 춥다. 겨울이 '겨울'같으면 풍년이 든다 했는데…. 풍년도 들어야겠지만 수험생 아들이 나름의 수확을 거두었으면 하는 것이 2008년 우리집의 가장 간절한 바람이다.

 

답답한 마음에, 며칠 전 아들녀석 인등이나 달까 하고 절에 찾아갔었다. 가족 4명의 생년월일을 댔더니 스님이 "왜 결혼했어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아이가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되니 그리 고생이지! 서로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래서 아들녀석 때문에 걱정이라고 했더니 업이 커서 그렇다며 부모의 업 때문에 아이들까지 힘들어지는 것이라 했다. 업을 닦으려면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공을 많이 드리란다.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봤다.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나의 최선이 혹시 상대방에게 해가 되진 않았는지,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반성해본다. 틈나는 대로 절을 찾아 스님한테 법문도 듣고 좋은 얘기도 많이 들어야 할 듯했다.

 

오늘(16일)도 바람은 매서웠지만 집에 가족이 다 있어봐야 답답할 것 같기도 하고 게임하는 아들녀석 보며 도닦을 일이 더 힘들 것 같아 남편하고 외출을 했다.

 

'오늘은 현등사엘 한 번 가볼까? 가서 절밥 공양도 하고 부처님한테 세배도 드릴겸!'

 

11시 넘어 출발했다. 절밥 공양시간은 보통 12시 쯤 하던데 시간이 좀 안 될 것 같기도 하지만 하여튼 가보기로 했다. 도로에는 놀토가 아니어선지 차가 별로 없었다. 신나게 열심히 갔다. 37번 도로에서 현리로 들어가는 길은 심하게 굽고 턱도 많은데 우리의 김 기사는 속도를 많이 냈다. 공양시간에 맞출려고 마음이 급했나?

 

"여보 천천히 갑시다. 공양시간 늦어서 못해도 할 수 없지. 안전운행합시다."

 

현등사에 도착하니 1시쯤 되었다. 일주문에서 절까지 올라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경사는 심하고. 가다 보니 챙겨간 카메라를 차에 두고 내린 것이 생각났다. 사진찍지 말라는 신의 뜻인가보다. 다시 가서 가져올까 하다가 그냥 올라갔다. 올라가는데 끝이 없다. 분명 몇 년 전에 와봤는데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양쪽 계곡물은 아주 두껍게 꽝꽝 얼어 올겨울이 녹록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바람도 심하고 몹시 추운 날인데도 등에선 땀이 나 속옷이 촉촉히 젖는다. 30여 분 지나자 절이 보인다.

 

절에 들어서니 등산객들도 많이 보인다. 신발이 여러 켤레 보이는 곳에 등산화도 있길래 공양간인가 싶어 문을 열고 물었다.

 

"지금 혹시 공양이 가능한가요?"

"공양이 끝나 찬밥 밖에 없는데."

 

"괜찮아요, 두사람예요."

"들어오세요."

 

염치불구하고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밥을 전자렌지에 데워주시며 국과 반찬통까지 열어주시고는 덜어 먹을 큰 접시를 주신다. 배도 고프고 워낙 절밥을 좋아하는 지라 맛있게 먹고 설거지를 했다.

 

부처님한테 절부터 하고 공양을 했어야 하는데, 염치없이 거꾸로 한 것이다.

 

'부처님도 이해하시겠지.'

 

공양미를 사는데 공양간에 계셨던 보살님이 웃으신다. 민망하긴 했지만 극락전에 공양미를 올리고 남편과 나란히 서서 108배를 올렸다. 남편은 몇 번을 남기고 힘들어 하는데 이왕 하는 김에 108배를 마치자고 했다.

 

그동안 남편사업 풀리지 않은 것, 딸아이 대학입학이 잘 안풀린 것, 수험생 아들녀석 정신 못차리고 있는 것 등이 다 우리 부부의 업이 커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는 나혼자만이 아니라 남편도 같이 힘을 보태 겸손한 마음으로 절을 하면서 업을 닦아나가길 바랐다.

 

혼자보단 둘이서 공을 들이면 좀 더 집안이 편안해지고 가족들 마음도 평안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지성이면 하늘도 감동한다는데, 우리 내외가 겸손하게 공을 들이고 지성을 들이면 우리 아이들도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아들놈 때문만이 아니라도, 이제 살아온 세월보다 적게 남은 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베풀며 어떤 일에 애를 태우거나 노심초사하지 않고 물흐르듯이 살아가야겠다.

 

인생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 아닌가? 어리석은 중생이 나이 50이 다 되어서야 이제 인생을 아는 모양이다.

2008.02.18 11:03ⓒ 2008 OhmyNews
#운악산 #현등사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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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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