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환갑 선물로 책을 내준다네요~

등록 2008.02.18 15:57수정 2008.02.1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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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족한 글의 애독자이자 조언자이기도 한 남편이 어느 날 귀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다름아닌 기사를 열심히 써 모으면 환갑 선물로 책을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아주 근사하고도 기발한 생각에 아이처럼 좋아했다.


이제 뚜렷한 목표가 생긴 것이다. 내가 쓴 기사가 어디에 배치되느냐에 민감해질 필요도 없이 소신껏 글을 쓰면 되는 것이다. 며칠 전 인기 동영상에서 본 약 3만 개의 빈 병으로 15년 째 집을 짓고 계시다는 할아버지처럼 빈병을 모으듯 기사를 모아 색다른 무엇인가를 만들어 보려는 것이다.

빈병 하나로 본다면 쓰레기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모여 건축 자재로 쓰여져 훌륭한 집이 만들어지고 인간을 보호해 주는 주거공간으로 거듭 났을 때의 가치는 확연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새로운 뭔가를 창조하기 위해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삶은 풍요로워진다. 더욱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혼자만이 느끼는 희열은 남모를 특별함이 있다.   

필자가 아주 어렸을 적,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선 학생들에게 기념이 될 만한 것을 남겨 주시려고 1년 동안의 학교생활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집’이란 걸 만들어 겨울방학이 끝나고 봄방학을 하던 날, 성적표와 함께 반 학생 모두에게 하나씩 들려 주셨다.

거기엔 그림, 작문, 받아쓰기를 비롯해 빨간 색연필로 채점이 되어 있는 시험지, 일기장 그리고 색종이를 접어 만든 공작까지. 제법 두툼한 것이 막 8살이 된 꼬마 애가 들기엔 좀 버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사랑과 정성으로 만들어 주신 선생님의 마음과는 달리 그땐 신기할 것도 없고, 중하게도 여겨지질 않아 헌 책들과 함께 노끈으로 묶어 눈길도 닿지 않는 다락 구석진 곳에 던져 놓다시피 하고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세월이 한참 흘러 중학생이 된 어느 날, 혼자 집을 보다가 다락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품집. 재생지로 만든 두꺼운 겉표지엔 녹색의 새싹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것은 예전과 다른 느낌으로 나의 눈길을 끌었다.   

끈을 풀고 꺼내어 들쳐보니 거기엔 국민학교 1년생의 서툰 학교생활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앞부분 몇 장은 작심을 한듯 반듯 반듯하게 쓰여 있고 나머진 제멋대로 흘려써 있었다. 마치 서툰 영어실력으로 영작을 하듯 어설프게 꿰어 맞춘 문장에 그림을 곁들인 일기장을 넘기며 미소 짓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혼자 집 보기를 유난히도 싫어했던 난 해묵은 나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잔잔한 감동과 재미에 푸~욱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까지 다락방에 머물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이렇듯 과거의 흔적은 자신의 일상이 기록된 것일지라도 지난날을 회상케 하는 묘미가 있어 읽는 재미 또한 베스트셀러 못잖다.

아마도 지금까지 쓴 기사들도 먼 훗날 다시 읽어보면 새로운 감회에 젖게 될 것이다. 비록 전문작가가 쓴 글만큼 세련되지도 남에게 감동을 주지도 못하지만 거기엔 나름대로 열정이 스며있고 고뇌한 흔적도 있다.

처음 시민기자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 글감을 찾아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5월의 어느 날, 청량리역에서 태백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혼자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원고 끝맺음을 못하고 퇴고를 반복하느라 무덥던 여름밤 새벽 늦은 시각까지 씨름을 하던 때도 있었다. 

그 때 쓴 글을 읽으면 철길 옆에 즐비하게 피어 있던 하얀 찔레꽃과 봄의 농촌 풍경이 아직도 기억 속에 아름다운 영상으로 남아 보이는 듯 떠오르곤 한다. 이렇듯 글 속엔 과거의 시간들이 살아 숨 쉬고 있기에 먼~ 훗날 세월의 흔적으로 주름진 얼굴의 노인이 되었을 때 책장을 넘기며 지난 날을 회상할 수 있는 추억거리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작품집 #다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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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52세 주부입니다. 아직은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여러분께 내놓기가 쑥스럽지만 좀 더 갈고 닦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는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사는이야기나 인물 여행정보에 대한 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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