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살 돈이 넉넉하지 않으니...

[헌책방 나들이 146] 서울 신촌 <글벗서점>

등록 2008.02.25 11:16수정 2008.02.2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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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꽂이 빽빽하게 꽂힌 책꽂이가 있고, 살그머니 빈자리가 생기는 책꽂이가 있습니다. 복판에 있는 야트막한 책꽂이 위에는 차곡차곡 책탑이 생깁니다.

책꽂이 빽빽하게 꽂힌 책꽂이가 있고, 살그머니 빈자리가 생기는 책꽂이가 있습니다. 복판에 있는 야트막한 책꽂이 위에는 차곡차곡 책탑이 생깁니다. ⓒ 최종규

▲ 책꽂이 빽빽하게 꽂힌 책꽂이가 있고, 살그머니 빈자리가 생기는 책꽂이가 있습니다. 복판에 있는 야트막한 책꽂이 위에는 차곡차곡 책탑이 생깁니다. ⓒ 최종규

 

(1) 서울에 있는 헌책방

 

서울로 헌책방 나들이를 옵니다. 서울에는 헌책방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헌책방 숫자가 줄어든다고 해도, 서울에는 헌책방이 곳곳에 남아 있으며 새로 문을 열기도 합니다.

 

서울은 땅값도 비쌉니다. 그렇지만 서울에는 사람이 많습니다. 인천만 해도 서울과 견주어 땅값이 무척 싸지만, 헌책방이든 다른 가게이든 가게삯을 적게 낸다고 해서 잘 버틸 수 있지는 않아요. 가게삯이 낮아도 가게로 찾아오는 사람이 적으면 더 나쁘거든요.

 

서울에는 책을 보려는 사람이 다른 데보다 많을 뿐 아니라, 한 번 읽힌 뒤 버려지는 책도 훨씬 많습니다. 책이 어떻게 ‘한 번 읽히고 버려지느냐’고 묻는 분이 있으시지만, 아무리 책을 좋아하고 아끼는 분이라 해도 자기가 읽은 모든 책을 간수하고 있기는 어렵습니다. 논문을 쓰든 책 만드는 일을 하든 도서관을 꾸릴 생각이든, 아니면 헌책방이라도 열 생각이 아니라면 집구석에 넘쳐나는 책을 모두 모셔 놓을 수 없습니다.

 

돈이라도 많아 넓은 집에 산다면 책을 안 버려도 됩니다. 그러나 몇 천 권이나 몇 만 권에 이르는 책을 나르며 집옮김을 해 본 분이라면, 애틋하게 읽은 책이라 해도 기꺼이 내놓습니다. 책을 내놓거나 버린다고 해서 쓰레기가 되지 않아요. 헌책방으로 들어가서 또 다른 사람한테 읽힙니다. 헌책방에서 팔린 책도 누군가한테 읽힌 뒤 다시 헌책방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또 읽힙니다.

 

헌책방이 도서관 노릇을 한달까요. 판이 끊어지고 시중에서는 찾기 어려운 책이니, 이만한 책에 따른 대가를 얼마쯤 치르고 책을 ‘빌려’ 가서 읽다가 내놓고,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책을 헌책방에서 알아보고 읽다가 다시 내놓습니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며 헌책방 문화가 차곡차곡 쌓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세상에 책을 읽는 사람 줄어든다’고 해도, 서울은 그럭저럭 사람이 많고 책도 많아서 헌책방 장사를 고만고만하게 꾸릴 수 있어요. 생각을 틔우고 머리를 좀더 기울이면 헌책을 팔면서 짭짤하게 돈을 모을 수도 있고요.

 

a 문가 큰길가 1층에 자리한 곳이라 달삯을 제법 많이 내야 하지만, 그만큼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자리에 있기에, 책손도 많고 드나드는 책도 많습니다.

문가 큰길가 1층에 자리한 곳이라 달삯을 제법 많이 내야 하지만, 그만큼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자리에 있기에, 책손도 많고 드나드는 책도 많습니다. ⓒ 최종규

▲ 문가 큰길가 1층에 자리한 곳이라 달삯을 제법 많이 내야 하지만, 그만큼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자리에 있기에, 책손도 많고 드나드는 책도 많습니다. ⓒ 최종규

 

(2) 좀 배워야지

 

헌책방마다 장사하는 품새가 다릅니다. 어느 곳은 책 한 권마다 깃들어 있는 값어치를 한껏 북돋우며 ‘꽉 짜인 값’을 받습니다. 어느 곳은 책마다 깃들어 있는 값어치를 일부러 모른 체 하며 ‘퍽 느슨한 값’을 받습니다.

 

책에 배인 땀과 손때를 느끼도록 하는 헌책방이 있는 한편, 값싸게 더 많은 좋은 책을 더 널리 읽도록 하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책에 깃든 값어치를 톡톡히 치르며 사드는 헌책방에서는, 이곳대로 책 값어치를 살갗으로 느끼면서 만나는 즐거움입니다. 값싸게 더 많은 책을 사드는 헌책방에서는, 주머니 짐을 덜 느끼면서 더 넓은 갈래 책을 만나는 기쁨입니다.

 

책읽기에도, 빨리 읽기와 느긋하게 읽기가 있듯이, 한 번 슥 읽기와 여러 차례 곱씹어 읽기가 있듯이, 헌책 하나 장만하는 데에도 여러 길이 있습니다. 값싸게 책을 살 수 있다고 해서 가장 좋은 헌책방이 아닙니다. 조금 값을 더 치른다고 해서 얄궂은 헌책방이 아닙니다. 값싸게 파는 만큼 책갈래 나눔이 엉기고, 우리가 바라는 책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값을 더 치르는 만큼, 헌책방 임자가 책갈래를 한결 꼼꼼히 나누고, 우리가 바라는 책을 찾기가 더욱 수월합니다. 헌책방 일꾼 품삯이, 손때가, 세월과 땀방울이 ‘헌책 한 권 값’에 배이는 셈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몇몇 헌책방 일꾼은, 당신이 들이는 땀과 품이 꽤 많으면서도 퍽 눅은 값으로 팔고들 있으시니.

 

이분들이 우리한테 베푸는 고마움을 고이 느끼면 좋을 텐데, 우리들 얕고 꾀죄죄한 책손들은 ‘다른 헌책방도 이 헌책방처럼 더 많이 베풀어 달라’고 바랍니다. 끌끌끌. 자기한테 고맙고 반가운 책을 얻어 가는 마당에, 이 기쁨에 웃돈을 얹어서 돌려드릴 마음은 조금도 꿈꾸지 못하고, 자기 배속만 더 채우려고들 하니, 원 참, 끌끌끌.

 

a 어떤 책을 헌책방 나들이를 하든, 새책방 나들이를 하든, 우리 주머니 형편에 알맞게 책을 고릅니다. 우리 마음에 밥이 되는 책을 하나둘 헤아리면서.

어떤 책을 헌책방 나들이를 하든, 새책방 나들이를 하든, 우리 주머니 형편에 알맞게 책을 고릅니다. 우리 마음에 밥이 되는 책을 하나둘 헤아리면서. ⓒ 최종규

▲ 어떤 책을 헌책방 나들이를 하든, 새책방 나들이를 하든, 우리 주머니 형편에 알맞게 책을 고릅니다. 우리 마음에 밥이 되는 책을 하나둘 헤아리면서. ⓒ 최종규

창천동과 동교동을 가로지르는 큰길가 한켠 1층 잘 보이는 자리에 있는 헌책방 <글벗서점>을 찾아갑니다. 문가에 가방을 내려놓고 사진기는 한쪽 어깨에 둘러메고 책을 살펴봅니다.

 

<발터 니그/정경석 옮김-프리드리히 니체>(분도출판사,1973)라는 책이 보입니다. <박정만-잠자는 돌>(고려원,1979)이 보입니다. 시모음입니다. 박정만 시인 책은, 우리 형이 고등학생 때부터 즐겨읽어서 저는 중학생 때부터 가까이했습니다.

 

이번 시모음은 처음 보는 책인가, 아니면 그때 읽었던가. 헷갈립니다. 그래, 헷갈린다면 안 읽은 셈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지. 제대로 떠오르지 않으니 한 번 더 읽어 볼 만하지 않나? 아니, 알쏭달쏭 모르겠으니 찬찬히 읽고 제대로 알아야지.

 

<미우라 아야꼬/백승인 옮김-빛과 사랑을 찾아서>(종로서적,1975)라는 책을 봅니다. 일본 그림책 <指田和子(글),鈴木びんこ(그림)-あの日をわすれない はるかのひまわり>(PHP硏究所, 2005)라는 책을 봅니다. 글을 읽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림만 넘겨봅니다. 그래도, 그림 하나로 기쁨을 얻으니, 이 책 하나 집어들 만합니다. <さとう わきこ-ちょっといれて>(偕成社,1987)도 보고, <존 번연/정정숙 옮김-천로역정>(세종문화사,1977)도 봅니다. <천로역정>은 그동안 여러 가지 판으로 나왔다고 하던데. 김태준 님이 쓴 <비교문학산고>(1985)에 이 이야기가 나오지. 그러고 보니 <비교문학산고>는 앞머리만 조금 읽고, 아직 끝을 못 냈구나. 그래, 이 책부터 좀 읽어야지. 읽고 좀 배워야지.

 

일본에서 엮어낸 <Keizo Kanki-Goya>(講談社,1969), <Goedon Sager-Hawaii>(講談社,1969), <Walter Paper-Michelangelo>(講談社,1968)가 보입니다. 일본은 책도 참 잘 만드는구나. 벌써 옛날에도 이만한 책을 엮어냈으니. 우리는 참말 뭘 하고 있지? 기껏해야 일본하고 축구를 할 때 이기느니 지느니에 목이나 매달고 있고. 언제까지 고만한 좁은 우물에 갇힌 채 바보처럼 살 생각이야.

 

<발해사연구 (5)>(연변대학출판사,1994)을 보다가, 옆에 꽂힌 <발해사연구(7)>(연변대학출판사,1996)을 봅니다. 이런 책은 남녘 출판사에서 펴내도 거의 팔리거나 읽히지 못하려나. 아니, 이런 책을 내려는 출판사부터 없으려나.

 

(3) 할아버지 손님

 

a 골마루 한켠 헌책방을 지키는 아주머니 두 분은 셈대 둘레에서 낮밥과 저녁을 드십니다.

골마루 한켠 헌책방을 지키는 아주머니 두 분은 셈대 둘레에서 낮밥과 저녁을 드십니다. ⓒ 최종규

▲ 골마루 한켠 헌책방을 지키는 아주머니 두 분은 셈대 둘레에서 낮밥과 저녁을 드십니다. ⓒ 최종규
“오늘도 안녕하셨습니까?” 하는 인사를 건네면서 들어오는 할아버지 손님. 할아버지 손님은 ‘오늘도 청계천 들렀다가’ 오는 길이라며 <글벗서점> 아주머니와 몇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눕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그 나이가 되어도 책을 가까이에 두시는군요. 여태껏 얼마나 많은 책을 만지고 보고 선물하고 집에 모셔 놓았을까요.

 

예전에 왔을 때는 돈이 없어서 사지 못했던 <栗田貞多男-ゼフィルスの林>(クレオ,1993)을 또 봅니다. 안 팔리고 있군요. 반가우면서 서운합니다. 기쁘면서 슬픕니다.

 

이 나비 사진책은, 나비가 팔랑거리며 날아가는 움직임을 하나하나 잡아채면서 그림으로 따로 넣어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살아가는 나비 스물다섯 가지’ 생김새를 알 모습, 어느 나라 어느 잎사귀에 알을 붙이는지, 애벌레는 어떠한지, 어른나비로 크면 어떤 모습인지를 한 자리에 그러모아 서로 견줄 수 있도록 보여줍니다.

 

게다가, 같은 나비라 해도 ‘다 다른 고장’에서 잡은 모습도 함께 보여주면서, ‘같은 갈래’ 나비라 해도 생김새가 조금씩 다름을 함께 느끼게 해 주어요. 또한 ‘세계 여러 나라 나비’를 보여주는 자리도 마련해서, ‘한국과 일본 특산종’ 두 가지를 따로 보여주기도 하는군요. 책 끝에 붙인 ‘풀이’에서는 나비 움직임 거리가 어떻게 되는지를 한 시간 동안 지켜보면서 줄을 이어서 보여줍니다.

 

(4) 돈

 

이렁저렁 골마루를 누비며 사진도 찍고 책도 보노라니, 골라 놓은 책이 한 칸 두 칸 높아집니다. 조금 더 볼까 싶으나, 조금 더 보면 주머니가 텅 빌까 걱정스럽니다. 이제 그만 갈까 싶으나, 서울 나들이가 쉽지 않은 판에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습니다.

 

돈이 넉넉하지 않으니 더 많은 책을 볼 수 없습니다. 아니, 더 많은 책을 못 본다기보다 더 많은 책을 못 사지요. 책은 꼭 사서 읽어야만 하지 않으니까요. 다만, 책을 사서 읽으면, 빌려 읽을 때와 달리 ‘아무 때나 펼쳐서 마음 내키는 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읽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밑줄을 긋고 몇 글자 끄적끄적 적어 넣을 수 있습니다. 책 하나를 한두 해에 걸쳐서 읽어도 됩니다. 읽다 귀찮으면 그냥 책꽂이에 꽂아 놓고 잊어버려도 나쁘지 않습니다.

 

a 책읽기 책 하나 읽어 자기 마음을 알뜰히 다스리고 싶은 분들은, 없는 틈을 쪼개어 헌책방 나들이를 하고, 없는 살림을 쪼개어 책 하나 장만합니다.

책읽기 책 하나 읽어 자기 마음을 알뜰히 다스리고 싶은 분들은, 없는 틈을 쪼개어 헌책방 나들이를 하고, 없는 살림을 쪼개어 책 하나 장만합니다. ⓒ 최종규

▲ 책읽기 책 하나 읽어 자기 마음을 알뜰히 다스리고 싶은 분들은, 없는 틈을 쪼개어 헌책방 나들이를 하고, 없는 살림을 쪼개어 책 하나 장만합니다. ⓒ 최종규

 

돈이 넉넉하지 않으니 아무 책이나 함부로 고르지 못합니다. 문득, 나한테 돈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책 하나 사드는 자리에서도 조금 더 살피고 생각하고 알아본 다음 고르지 않았겠느냐, 눈길 가는 대로 모든 책을 장만할 수 있었다면 책 보는 눈길과 눈높이는 못 기르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난은 어둠이자 빛이기도 한가요. 가난은 눈물이면서 웃음이기도 한가요. 더 많이 배운 사람이 더 많이 품고 있는 지식을 더 많은 이웃하고 나누지 못하면서 살듯,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나라고 했다면, 외려 내 배만 잔뜩 불리는 쪽으로 기울어져서 엉터리로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주머니가 가벼운 채 살아왔기에, 허튼 데 돈을 안 쓰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주머니가 텅 비기도 하면서 살아왔기에,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반드시 장만하겠다는 마음으로 더욱 힘내어 일했는지 모릅니다. 주머니를 채우지 못하면서 살아왔기에, 주머니 헐렁한 동무나 선후배를 만날 때마다, 똑같이 먼지만 나는 내 주머니를 뒤집고 까내면서 다문 헌책 한두 권이라도 선물해 주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 - 서울 신촌 <글벗서점> / 02) 333-1382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헌책방 + 책 + 우리 말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2008.02.25 11:16ⓒ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 서울 신촌 <글벗서점> / 02) 333-1382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헌책방 + 책 + 우리 말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헌책방 #글벗서점 #서울 #신촌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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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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