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천만원 시대.'
몇몇 대학의 등록금이 일년에 천만원을 넘었답니다. 학기별로 반을 나눠도 500만원, 월로 쳐도 83만원에 달하는 거금입니다.
게다가 교재비, 지방학생의 경우 주거비, 교통비, 식비, 치열한 취업난 속에 증가하는 학원비까지 생각하면 작게 잡아도 월에 150만원 내지 200만원은 있어야 대학생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일수 찍듯 캠퍼스의 낭만도 월 150만원 찍고부터 시작인거죠.
운이 좋아 제법 돈 좀 있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처음부터 걱정을 접고, 열심히 낭만을 즐기면 되겠지요. 그러나 집에서 보조가 어려운 경우라면 답이 안 나오기 시작합니다. 불행히도 저는 후자였습니다. 거 정말 답 안나오더군요.
게다가 또 불행히도 사립대학을 다녔고, 또 불행히도 지방 학생이였습니다. 비용이 많이 드는 환상적인 조건을 두루 갖췄지요. 이보다 나쁠 순 없었지요. 지금도 가끔 후회를 합니다. 왜 조금이나 덜 비싼 국립을 가지 않았는지. 게다가 집안 형편은 나빠져 학비 보조는 기대도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아르바이트는 착취의 현장
가끔 하버드 등 외국 유수 대학 유학생들의 모습이 방송에서 방영됩니다. 카메라를 들이댄 까닭인지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유학생들은 그저 멋있게만 그려지지요. 그 중 간혹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다보니 수면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보람있다며 씩~ 웃어 보이는 모습은 제법 폼이 납니다.
"OO는 세상을 배워가는 중이다" 정도의 방송 멘트가 나지막히 깔리면 역경을 이겨내는 성공 스토리가 진행 중인 듯 보이죠.
그러나 제가 겪은 현실은 달랐습니다. 전 그들처럼 슈퍼맨이 아니어서인지 멋있지 않더군요. 그저 생활비를 벌고자 아르바이트 시장에 뛰어든 취업시장의 가장 하층부를 차지하는 저임금 노동자일 뿐이였습니다.
널린 게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학생들인지라 그다지 경쟁력도 없으며, 나이가 어려 그리 존중받지도 못하는 착취의 대상이 된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어리다는 것은 발언권부터 모든 것에서 불리함을 뜻하더군요.
처음 PC방 야간 근무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저는 돈 벌기 그렇게 어려운지 처음 느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야간 근무였으니 현행법상 야간 가산 수당으로 1.5배의 금액을 받아야 했으나 야간 수당은커녕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을 했습니다.
만약 사장님께 최저임금과 야간 수당을 요구했다면, "얘야. 일하기 싫으면 나오지 마라"는 친절한 대답을 들었을테지요.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니 밥 한끼도 편히 사먹기 힘들어졌습니다. 한끼 안먹으면 2시간 일 안해도 된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삶이 팍팍해졌습니다. 낭만은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고3때도 겪어보지 못한 수면 부족에 다크써클이 다 생겼습니다.
이후 아르바이트 시장에서 살아남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PC방 등 고등학생 또래 아이들이 많이 근무하는 업종은 레드오션이라는 점을 간파한 것이지요. 별 능력이 필요없고 그저 청소만 잘하고, 시키는 일만 잘하면 그만인 일들이지요. 레드오션은 최저 임금을 보장받을 수 없는 무법 천지이더군요.
게다가 간혹 언어 폭력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야, 너 그거 가져와...똑바로 해" 등 무시가 담긴 어투에서 부터 "너 이 OO, 농땡이 피우지마"등 이 보다 더한 욕설이 담긴 말들도 들었습니다.
그 때 어렴풋하게 배웠지요. 세상은 법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과 직위가 높은 사람들은 괄시, 폭언 등 언어 폭력을 자주 저지른다는 것을요. 비유하자면 정글의 약육강식이 생각나더군요. 약자에겐 너무나 잔인한 현실이더군요. 지금도 가끔 이런 업종의 장소를 들르게 되면 서 있는 아이들이 안쓰럽게 보입니다. 업무강도가 결코 낮은 것도 아니거든요.
그리곤 우여곡절 끝에 학원 보조강사 일과 물류 창고 일, 중소 경비업체 야간 근무 등 다양한 직종을 경험했습니다. 가끔 이직기간 중 근무날짜가 비게 되면 새벽 인력시장에서 노가다도 나갔죠. 그래도 노가다는 빡센 만큼 돈은 많이 줬습니다. 일 못한다고 욕도 많이 주시지만요.
그렇게 그렇게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거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닳아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저 어른들 말 잘 듣는 온순한 성격의 제가 자꾸 바뀌는 고용주의 말에 의심도 하게 됐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또 하급자에 대한 언어 폭력을 일삼는 상급자에게 분노하여 그들을 골탕 먹일 심산으로 이런저런 일들도 하였지요. 이른바 꼬장을 부리게 된 거지요. 간혹 십원짜리 욕도 하게 됐습니다. 속이 아주 시원하더군요. 하지만 심성은 거칠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슬퍼졌습니다.
졸업, 볼모에서 해방되다
그렇게 4년을 보냈습니다. 방학 중 바쁠 때는 시간을 쪼개 세 가지의 알바를 병행한 적도 있었으니 가히 전투적인 4년을 보낸 셈입니다. 그리하여 맞이한 대학 졸업 때는 아쉬움이란 단어는 생각도 나지 않더군요. 캠퍼스의 낭만은 양극화의 끝단에 선 제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졸업은 지긋지긋한 대학 생활의 끝, 아니 착취당한 시절의 끝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솔직히 볼모에서 해방된 기분이였습니다. 더 이상 정해 놓은 높은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낮은 임금의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아! 부모님은 졸업식(2005년 2월) 때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중단없이 무사히 대학을 마쳤으니까요. 정말 아이마냥 연신 싱글벙글이셨습니다. 그 모습에 학사모를 씌워드리는 순간 저는 살짝 눈물이 났었답니다.
졸업 후 월급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정규직이 주는 안정감, 그것은 아르바이트생이 가져보지 못한 기분입니다. 아르바이트생 시절과 비교해보면 제가 생산해내는 가치는 늘어났겠지만 상대적으로 낮아진 업무 강도와 가족이라는 느낌의 동료들 그리고 해고의 불안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 게다가 연봉도 훨씬 높아져 행복합니다.
가끔 직장에 불만도 생기지만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그저 감사합니다" 입니다. 그러고보니 요즘 다소 느슨해졌는데 내일은 고마운 줄 알고 좀 더 가열차게 일해야겠습니다. 하하.
매년 그렇듯 또 졸업과 입학 시즌이 다가왔습니다. 누군가는 입학하고, 또 누군가는 졸업을 하겠지요. 그런데 제가 겪었던 불합리한 현실들도 여전한 모양입니다. 그러한 현실들은 제겐 과거가 되었지만, 누군가에겐 현재이겠지요.
등록금은 지금이 너무 싸다는 듯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구요. 그로 인해 자식 등록금 대느라 높은 이율의 일수를 쓴다는 사연도 보도됩니다. 또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착취구조도 여전한 것 같구요.
우리는 늘상 이야기합니다. 약자는 배려의 대상이라고, 그리고 교육은 장사가 아니라구요. 그런데 현실은 약자는 착취의 대상이고, 교육은 일종의 장사가 아닐까요? 그것도 가격 인상에 둔감한 충성도 아~주 높은 고객을 보유한 일종의 장사.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에서 조금 올라왔다고 금세 잊어버린 생각들을 몇 자 적어봅니다. 당연해야 할 일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아가는 것, 그게 세상을 알아가는 거라는 생각에 씁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좋아지겠지요.
덧붙이는 글 | <오마이광장>의 기사쓰기 제안을 보고 글을 작성했습니다.
2008.02.27 19:26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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