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한테 바치는 한 해 천만원

[책읽기가 즐겁다 53] ‘시험공부’와 ‘대학졸업장’에서 벗어난다면

등록 2008.02.27 10:40수정 2008.02.27 10:40
0
원고료로 응원
a

빨래 햇볕 잘 드는 창가에 빨래를 널어 놓은 다음, 어느 만큼 물이 마르면 방으로 옮겨놓습니다. ⓒ 최종규

▲ 빨래 햇볕 잘 드는 창가에 빨래를 널어 놓은 다음, 어느 만큼 물이 마르면 방으로 옮겨놓습니다. ⓒ 최종규

 

방 한쪽에서 똑 똑 똑 하는 소리가 납니다. 아침에 몸을 씻으며 빨았던 바지 몇 벌을 벽에 걸어 놓았더니 물이 떨어지는 소리입니다. 바닥에는 걸레를 대 놓습니다. 요즈음은 빨래를 마당에 내다 널면 꽁꽁 얼어붙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은 불을 적게 때고 바깥바람이 잘 들어와서 잠자는 방을 빼놓고는 영 도 밑으로 육 도나 팔 도까지도 떨어집니다. 그래서 마루에 널어도 빨래가 얼어붙어, 잠자는 방 벽에 못을 잔뜩 박아 놓고 겨울 빨래를 널어 놓습니다.

 

세탁기를 안 쓰고 탈수기도 없으니 빨래마다 물이 방울 지어 떨어집니다. 제 아무리 힘껏 비틀어 물을 짜내어도 방울이 집니다. 세탁기를 안 쓰니 겨울 손빨래를 마치면 손이 차갑게 얼어붙습니다. 동무와 피붙이 들은 뭐 하러 사서 고생이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손빨래를 하면 아무 옷이나 막 입지 않게 되는걸요. 물을 한결 적게 쓰고 옷을 좀 더 아끼게 되는데요.

 

 

a

겉그림 사진기자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 <제3의 눈>. 아쉽게 지금은 판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 최종규

▲ 겉그림 사진기자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 <제3의 눈>. 아쉽게 지금은 판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 최종규
사진기자 삶을 다룬 만화책 <제 3의 눈>(닉스미디어, 2001)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여섯 권을 내리 읽어냅니다. 판이 끊어져 뒤엣권은 더 찾아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부하가 소신을 가지고 한 잘못이라면 상사가 덮어주는 것이 좋지 않을는지. 그래서 상사가 있는 거니까.(6권 114쪽)”, “그냥 상황에 맞춰 셔터를 누를 뿐. K대 대학원에서 저널리즘 과정을 졸업한 재원인 너와 논쟁으로 이길 순 없겠지. 반박할 맘도 강요할 맘도 없어. 단지 방해는 하지 마.(6권 132쪽)”, “그런 건 상관없다니까. 정사원과 계약사원, 남자 여자를 따지는 게 아니야. 우리 포토저널리스트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책임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지.(6권 88쪽)” 같은 대목을 만날 때마다 한동안 책에 눈을 박고 깊이 생각에 잠깁니다.

 

문득, 대학교 한 해 학비가 1천만 원에 이르는 요즈음, 이 나라에서 대학생으로 공부하는 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누구한테 얼마만큼 배우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또한, 대학교에 가려고 밤잠 새벽잠 쫓아가며 형광등 불빛에 눈이 벌개진 아이들은 대학교에 나아가 무엇을 왜 배우고 싶어하는지 궁금해집니다.

 

그 돈, 한 해 천만원이면 네 해면 사천만원. 이 돈을 대학교 과정을 밟는 데에만 써야 할까 궁금해집니다. 큰마음 먹고 3백만원짜리 좋은 자전거 장만해서 7백만원은 잠값으로 쓰며 한 해 동안 전국 나들이를 해 볼 수 있겠지요. 또는, 시골에 논밭 조금 마련해서 손수 먹을거리를 일구어 내는 땀맛을 느껴 볼 수 있어요.

 

사진기 한 대 장만한 다음, 자기 식구들부터 동네 삶터와 모습을 차곡차곡 담는 가운데 세상을 배울 수 있고요. 태양광 전지판을 집에 달고 지구자원 덜 쓰도록 마음을 기울일 수 있어요. 성노예로 시달린 할머님 돕는 일에, 우토로 사람들 돕는 일에, 어두운 곳에서 야무지게 일하는 조그마한 시민단체 돕는 일에 써 볼 수 있습니다.

 

요새 책값이 많이 오르기는 했지만, 천만 원이면 새책 천 권 안팎을 장만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헌책은 거의 오천 권 가까이 장만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아예 책방 하나 차려도 좋고요.

 

a

아이들과 우리 어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새벽부터 늦은밤까지 시험공부에만 매달리도록 하는 일은, 아이한테나 어른한테나 서로서로 나쁜 영향을 끼치지 싶습니다. 아무리 시험공부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하루쯤, 시읽는잔치에 나들이를 가며 시도 듣고 시도 읊고 책 한 권 뒤적여 볼 수 있는 너그러움도 배워 나갈 수 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 최종규

▲ 아이들과 우리 어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새벽부터 늦은밤까지 시험공부에만 매달리도록 하는 일은, 아이한테나 어른한테나 서로서로 나쁜 영향을 끼치지 싶습니다. 아무리 시험공부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하루쯤, 시읽는잔치에 나들이를 가며 시도 듣고 시도 읊고 책 한 권 뒤적여 볼 수 있는 너그러움도 배워 나갈 수 있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 최종규
 
a

아이들과 우리 어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 손이 꽁꽁 얼어붙는 추운 겨울에도 자전거 나들이를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홀로 해 보도록 떠나보낼 수 있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전국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눈이 덮인 국립공원 한 곳을 자전거 타고 낑낑 올라가며 드넓게 펼쳐진 땅을 바라보는 일 하나로도, 시험공부에 지친 아이들 마음을 확 터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최종규

▲ 아이들과 우리 어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 손이 꽁꽁 얼어붙는 추운 겨울에도 자전거 나들이를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홀로 해 보도록 떠나보낼 수 있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전국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눈이 덮인 국립공원 한 곳을 자전거 타고 낑낑 올라가며 드넓게 펼쳐진 땅을 바라보는 일 하나로도, 시험공부에 지친 아이들 마음을 확 터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시민사회신문>에 함께 싣습니다.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책 + 헌책방 + 우리 말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2008.02.27 10:40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민사회신문>에 함께 싣습니다.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책 + 헌책방 + 우리 말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책이 있는 삶 #책읽기 #등록금 #사교육 #등록금 천만 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문자, 여론조작 의혹으로 불똥? 이준석 "댓글팀 용어 신기"
  2. 2 섭지코지 한가운데 들어선 건물... 주민들이 잃어버린 풍경
  3. 3 '급발진'처럼 보였던 아버지의 교통사고, 알고 보니
  4. 4 '우천시' '중식' '심심한 사과' 논란, 문해력만 문제일까요?
  5. 5 월급 37만원, 이게 감사한 일이 되는 대한민국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