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원칙도 소신도 배짱도 없이 무기력

장관후보자 사퇴 파동은 정부와 여당의 정치수준을 보여줘

등록 2008.02.28 13:34수정 2008.02.2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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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하는 이명박 호의 장관후보 3명이 청문회도 해보기 전에 사퇴했다. 자진사퇴라고는 하나 사실상 내외의 압박에 의한 경질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이명박 정부와 여당이 된 한나라당의 정치수준을 단적으로 보여 준 첫 사례가 되었다.

청와대나 한나라당은 왜 이 사람을 이 부처의 각료 후보로 내정했는지 설명하나 없었다. 내정자 발표하고 국회에 청문회 요청한 게 전부다. 그러다가 여론이 악화되고 정치적 부담이 될 듯싶으니 이리저리 저울질 하다 적당한 형식을 취해 낙마시킨 꼴이다. 당사자들에게는 소명할 기회조차 보장해 주지 못했다. 소신도 철학도 정치적 판단력과 배짱도 결여한 무기력, 그 자체였다.

‘이러저러한 문제가 없진 않지만 이 사람은 새 정부에서 이 분야의 국정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말도 못할 인사라면, 도대체 이명박 대통령은 이들을 무슨 이유로 각료 후보에 내정한 것인가. 일부 언론에서 물 타기 하듯이 그저 아는 사람 쓰다 보니 그랬다는 것인가. 아니면 새내기 정부의 인사시스템에 부화가 걸려 그랬다는 변명 뒤에 숨겠다는 것인가. 

더 가관인 것은 한나라당이다. 논란이 되었던 후보자들의 사퇴를 대통령에게 건의했으니, 이제야 당-청 관계가 제 모습을 찾았다는 둥 멘트를 날리고 있다. 덩달아 일부 언론은 출범 직후 새 대통령에게 이렇게 직언한 경우가 없다느니 하면서 맞장구까지 쳐주는 관경이 가히 점입가경이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자신들이 참여정부 장관인선 기준으로 줄기차게 들이 댔던 것들을 잊고 있었다는 말인가. 안타깝게도 새 정부의 국무위원이 내정되는 단계에서 당대표를 비롯해 누구하나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당-청간 새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없었고, 이 과제의 수행을 총괄하는 국무위원의 조건과 자격에 대해서도 일체 의견을 나누지 않았다는 반증인 셈이다.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압도적 표차로 승리했기 때문에 기가 죽은 야당이 순순히 협조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더더구나 초딩 여당 수준의 순진한 발상이다. 정부나 여당이 정치적 소신도 철학도 배짱도 없는데, 정권 출범기라고 해서 어느 야당이 여당에 끌려가겠는가. 한국 정치가 그리 만만치 않다. 더구나 지금의 야당은 체질 그 자체가 전투적 야당체질인데다가 지난 수년간 권력의 중심부에서 정부와 여당의 메커니즘을 잘 아는 터라 초딩 여당에 결코 호락호락할 형편이 아니다.

지난 정부조직법 개정관련 여야의 줄다리기 과정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과 인수위는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명분으로 내세웠고, 지금의 통합민주당은 부처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그 결과 18부 4처였던 정부조직이 15부 2처로 줄어들었지만 한나라당과 인수위가 애초에 통폐합을 추진했던 통일부와 여성부는 살아났다.


당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왜 정부기능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일부 부처의 통폐합이 불가피한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대국민 브리핑 한 번 없었다. 자신들이 통폐합을 추진했다가 협상과정에서 살아난 부처들에 대해서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알뜰하고 유능한 정부’, ‘행정조직의 슬림화’ 등 구호로만 밀어붙였지, 통폐합 대상이 되었던 부처들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토대로 국민적 공감을 모으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새 정부나 한나라당은 말로는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지, 현실 정치에서 진정 국민을 섬기는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던 거다. 인수위 활동 과정에서도 그렇고, 이번 인선 파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최소한 국민적 관심이 큰 정권초기 국민들에게 뭘 하려고 하는지, 왜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하는지 정도는 언급해야 하는 게 국민을 섬기는 도리 아닐까.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도대체 무슨 꿍꿍인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을 계기로현실 정치의 벽이 높다는 걸 새삼 경험했을 것이다. 경제를 살기겠다는 의욕과 일에 대한 열정만으로 현실의 정치 벽을 넘을 수 없다. 혹여 이런 좌절로 인해 소수여당의 설움이 되살아나고 새 정부와 그 측근세력이 총선에서 다수의석을 확보에만 매진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경계되어야 한다.

‘정부+여당 대 야당’ 대립구도로는 일정기간 권력은 누릴지언정 정치로써는 성공하기 어렵다. 민주주의제도의 견제와 균형원리에 입각해 ‘정부 대 국회’ 구도로 재편되는 게 급선무다. 힘으로 하는 정치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하는 합리적인 정치가 선진정치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선진화 원년을 표방한 이상 확고한 국정철학과 역사의식을 갖고 소신 있는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 정치에선 실용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4월 총선을 준비하는 전국의 거의 모든 한나라당 예비후보자들의 선거 전략이 하나같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친소관계 따져 편승하는데 맞추어져 있다. ‘대통령의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민의 국회의원’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최근 며칠간 필자는 이곳 지면에서 왜 지금시기에 남주홍 교수가 통일부 장관으로 적합한가에 대해 주장했었다. 그리고 남 교수의 ‘대북관’ 논란을 계기로 새 정부의 대북정책이 공론의 장에서 논쟁되고 소통되고 공유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남 교수는 2년 전부터 이명박 후보의 통일외교안보분야 최측근으로 새 정부의 통일안보정책 전반을 기획한 인사였기 때문이다. 다음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내정을 계기로 다시금 논의가 싹틀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명박 #한나라당 #정관 후보자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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