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건강하지 못해서 미안타"

아내와 함께 위내시경 검사를 받고 왔습니다

등록 2008.02.28 16:54수정 2008.02.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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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오늘 아침은 금식 하셔야 해요."

"나는 천하없어도 아침 밥 먹어야 하는 거 잘 알면서 왜 그래? 집에 쌀이라도 떨어졌어?"

 

"당신이 늘 속이 거북해서 힘들어 하셨잖아요. 그리고 칫솔질 할 때마다 구역질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병원에 예약을 해두었거든요."

"왜 시키지 않은 일을 해. 나랑 상의라도 하고 예약을 하던지. 언제는 혼자 살 때가 편했다며?"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아무리 투덜대도 아내는 나보다 논리적이고 힘센 여자라는 사실을. 때마침 2년 동안 진행되던 현장의 1차계약분이 마무리 되었다. 이천 냉동창고 화재의 여파로 까다롭고 힘들었던 소방검사까지 지난 2월초에 받고나니 다음 공사가 시작될 때까지 조금 여유가 생겼다. 아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평소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 갈 엄두도 못 내었던 내가 변명도 못하게 위시경 검사 예약을 해놓은 것이다.

 

아내는 내가 도망이라도 갈 까봐 연애시절이나 하던 팔짱을 끼고 나를 호위한다.

 

"이 사람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 과부될까봐 겁이 난 모양이네."

내가 짓궂게 놀려도 아내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팔에 힘을 준다.

 

새벽 밥 먹고 나가는 나에게 아내는 누룽지를 많이 끓여주었다. 일어나자마자 대충 세수하고 현장으로 가기 전에 속이 쓰려 맨밥을 몇 숟가락 뜨다 말고 나가는 나를 위해 아내가 머리를 쓴 것이다.

 

고소하고 걸쭉한 누룽지탕을 만들기 위해 짠돌이 아내는 찬밥을 누룽지로 만드는 기계까지 구입했다. 건축이나 목수, 철근, 설비같은 타 공정이 끝나야 우리 전기공사팀이 투입된다. 그러다보니 빠듯한 공정을 맞추기 위해 우리직원들은 야근을 밥 먹듯이 해야 했고, 저녁식사는 대충 자장면에 군만두 그리고 입가심으로 소중 한 병을 상시 복용하다보니 내속이 속이 아니었다.

 

내 막내 동생뻘도 안 되는 건축기사에게 전기배관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을 했다.

 

"우리 작업일정에는 전기공정이 없다는 거 아시면서 그러세요. 이 일 한두 번 하시는 것도 아니면서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철근하고 목수들 작업이 끝나면 눈치껏 알아서 작업 마무리 지셔야지요. 좌우간 내일 레미콘 차가 새벽부터 오니까 밤새서라도 끝내셔야 합니다."

 

이럴 때, 나는 "야, 다 철수해"라는 말이 목까지 치민다. 혈기가 넘칠 때는 몇 번 일손을 던져 놓고 현장사무실로 달려가 대판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아쉬운 게 많은 약자 '을'에게는 일감이 없는 요즘 선택권이 별로 없다. 그저 참는 수밖에.

 

타워 크레인기사에게 사정해서 투광기 램프를 살리고 배관을 마무리하면 밤 11시는 보통이다. 주 5일 근무, 주당 40시간 근무는 우리 같은 현장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주 7일 근무, 주당 70시간을 넘게 근무하고 한 달에 두 번 쉬면 그나마 감지덕지다.

 

중학교 수학선생을 하는 내 여동생이 지난겨울 방학 때 우리집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

 

"오빠는 무슨 돈을 벌려고 그렇게 쉬지도 않고 일해."

나와 아내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피식 웃었다.

 

나는 '요즘 세상은 일 많이 하고 땀 많이 흘릴수록 수입은 반비례하는 거야. 너는 배울 만큼 배운 선생님이면서 아직도 그런 세상의 이치도 모르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날 여동생네 식구들과 같이 콩나물이 아귀 위에 산처럼 쌓인 맵디매운 아귀찜을 먹었다. 계산은 아내가 화장실 가는 척하고 카드로 하는 눈치다. 나는 그 매운 아귀찜을 먹은 다음부터 속이 쓰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속이 밴댕이 속알머리같은 40대 중반의 남자는 아내에게 많이 미안했고 고마웠다. 그 후로 조금만 매운 음식을 먹으면 속이 아리고 쓰리더니 나중에는 위장에 통증이 오면 몸이 튀김새우처럼 꺽어져서 찬물을 먹고 한동안 그 아픔이 스스로 진정되기까지 참아야 했다. 일을 핑계로 병원가는 것도 차일피일 미루다 진통제로 살살 고통을 달래가며 버텨왔는데 이번 설명절에 고향에 가면서 사단이 났다.

 

휴게소에서 볼일을 보고 시동을 켜려는데 진통이 오는 것이었다. 그 때야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 챈 아내는 나를 미련 곰퉁이같은 사람이라며 등을 문질러 주었다. 겨우겨우 시골집에 도착해서 아내는 어머니에게 이른다고 위협을 한다. 나는 한 번만 살려달라고 두 손으로 눈치껏 빌었다. 결국 아내의 말대로 만사를 제쳐놓고 위 내시경 검사를 하기로 약속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간단한 문진을 한다. 위시경은 먼저 8시간동안 금식을 해서 위를 비운 다음 두 종류의 물약을 먹는다. 하나는 삼키고 하나는 입에 머금고 있다가 뱉어야 한다. 그리고 가스가 생기지 말라고 엉덩이 주사도 한 방 맞는다.

 

사전작업이 모두 끝나면 위시경 검사실로 들어간다. 담당 의사선생님이 내 입에 플라스틱 깔대기를 물고 있게 한 다음 간호사는 모로 누워서 있도록 자세를 잡아준다. 드디어 입에 내시경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굵기는 어른새끼 손가락 정도이고 맨 앞에는 외눈박이 올빼미 눈같은 카메라렌즈가 달려있다.

 

목구멍을 넘어갈 때 불에 달군 쇠를 삼킨 것처럼 심한 헛구역질이 난다. 다 큰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기구가 목을 넘어 식도를 지나갈 때 숨이 막혀오고 기분이 질식할 듯이 거북하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자리를 피해 도망치고 싶어진다. 드디어 위에 도달한 내시경은 위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다가 이상한 부위를 발견하면 그 곳에 머리를 박는다. 그 다음 내시경의 관 내부를 통과한 철심에 달린 집게가 조직의 일부를 떼어가지고 밖으로 나온다. 이제 끝이 보인다.

 

검사시간은 보통 10분에서 15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이물질이 내 몸을 지나다니는 거부반응으로 긴장을 풀려고 하면 할수록 목에 힘이 들어가고 얼굴은 벌개지고 눈이 충혈된다.

 

의사선생님은 신속하게 내시경기구를 내 몸에서 쑥 빼어낸다. 아! 드디어 내 목과 입은 자유를 얻는다. 나는 검사 중간중간에 컴퓨터 모니터에 비친 내 위속을 힐끔 올려다본다.

 

"안 보셔도 됩니다. 조금 있다가 다 설명해 드릴게요"라고 해도 자신의 속사정을 보는 경험은 누가 뭐래도 흥미롭다. "수고하셨습니다." 친절한 의사선생님은 조금 정신이 나가있는 나에게 힘드시면 수면내시경을 하시지 그랬냐고 한다. 어느새 컴퓨터 모니터로 본 나의 위 구석구석이 인화되어 내 눈 앞에 놓여 있다.

 

"여기 보세요. 위에서 소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빨간 점들이 보이시죠. 여기를 확대해 보았습니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지요? 조금 의심스러워서 조직을 떼어내다 보니 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오니까 그 때 다시 오세요. 제 소견으로 심각할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조금 의심스러워서 검사하는 거니까 그동안 염증은 약으로 다스려 보지요. 미리부터 염려마세요. 조직검사결과가 나오면 그 때 상의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무슨 의미일까. 나의 생각은 저만치 달려간다. 의사 앞에 환자는 항상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의 한 마디에 심장이 오그라들고 그의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고간다. 내 옷을 들고 길고 지루한 남편의 위 검사를 지켜보는 아내의 표정은 담담하다.

 

"여보, 내 속이 생각보다 지저분하네. 심보도 나쁘고 건강하지 못해서 미안타."

"당신 건강 제가 미리미리 챙기지 못해 죄송해요. 하지만 차라리 저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결과가 아무 이상이 없다면 당장 걱정거리는 없겠지만 당신은 다시 무리하고 몸을 돌보지 않을 거잖아요. 이 기회에 다시 태어났다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추스르세요."

 

고맙다. 항상 고맙고 예쁜 나의 아내에게 나는 왜 그렇게 함부로 대하고 대화 한 번 따듯하게 못 나누었을까? 약국에 들러 약을 한 보따리 타왔다. 속으로 약의 효능이 조금 의심스럽다. 하지만 약자(환자)는 약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 나는 생전처음 하루 세 번 먹는 위장약을 타가지고 집에 오면서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아내는 이제 자기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댄다. 내가 측은해 보여서 일까.

 

우리 40대 남자들은 바쁘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암일까 걱정되어 건강검진하러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친구 어머니 팔순 잔치에서 만나 같이 웃고 떠들던 친구녀석이 멀쩡하게 잘 있다가 대장암 말기진단을 받고 고생하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받았다.

 

아직 어린 두 자식들이 아버지 장례식장에 사람이 많이 와서 신이 났는지 이리뛰고 저리뛰고 다니는 것이 어찌 눈에 밟히든지 눈물이 나 혼났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60대는 배운 사람이나 안 배운 사람이나 똑 같아지고, 70대는 가진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비슷해지고, 80대는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하지만 40대나 50대도 안전지대는 아닌 것 같다. 아내와 나는 건강하게 오래 같이 살고 싶다. 그러나 우리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 대해서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괜히 치료한다고 집 날리고 몸 고생하지 말고 사는 날 까지 못했던 것 정리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허락하는 한 맛있는 것도 먹고 갈 수 있도록 한다. 시신은 대학병원에 기증해서 의학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하고 화장한 다음 수목장으로 한다.' - 위 내용은 공증을 받아두고 우리부부가 한 날 한 시에 세상을 떠나지 않으면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된다. 이상.

덧붙이는 글 | 문화방송 여성시대에  소개되었습니다.

2008.02.28 16:54ⓒ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문화방송 여성시대에  소개되었습니다.
#건강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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