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회에 오염된 미술계 회복하길 바란다

삼성 그림창고, 여인네들의 사치인가? 비자금 세탁소인가?

등록 2008.03.04 10:21수정 2008.03.0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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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모 일간지에 의하면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 검사팀은 지난달 에버랜드 '그림창고' 압수수색에서 발견한 미술품 수천 점 대부분이 삼성문화재단의 미술품 보유 목록에 없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고 한다.

 

이 보도에 따르면 미술책이나 국내외 저명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그것도 수천점이나 되는 고가의 미술품들은 졸지에 실종된 '미아'에서 이제 보호자 잃은 '고아'가 된 셈이다.

 

특검은 한 점 포장하는데 30분 이상 소요된다는 세계적인 명화의 '주인 찾기'로 이어질 수사를 진행 중인 상황. 그런데, 미술사에 남을 만한 이 값나가는 그림의 주인은 왜 작품들을 버리고(?) 행방을 감추었을까.   

 

서미 갤러리 홍송원 관장이 이번 사건으로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후 시간이 갈수록 수사의 행방은 묘연해지고 있고 이 사건의 중간발표는 국민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추리게임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 점잖던 삼성문화재단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시작으로 삼성가와 특검의 숨바꼭질 놀이터로 변경됐다. 이 대목에서 뉴스를 시청하는 이들은 '미술판이 부자집 자식들의 놀이터'란 천박한 유행어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삼성가와 서미갤러리 그리고 술래인 특검이 벌인 '행복한 눈물'이라는 한바탕 숨바꼭질은 아이들이 보기에도 썰렁했다. 관련 진술자들의 '있네' '없네' '보고 싶다' '여기 있다'로 이어진 '행복한 눈물 숨바꼭질'은 그 어떤 전시회보다 화려한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공개되었고 그 자리에서 감정가의 '좋긴 좋더라!'라는 감탄의 미화(迷畵)확인 조사는 아쉽게 마무리 되었다.

 

왜냐하면 주인 잘못만나 도피 생활한 명화는 드디어 공개 되서 행복했고 그 과정에 정작 확인되어야 할 '너 그동안 어디 있었니?'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숨바꼭질에서 찾은 용인 에버랜드의 창고 속 그림들과 ‘행복한 눈물’의 행방을 확인하고 나니 이제 그림 주인이 실종되었단다. 한마디로 '숨바꼭질'에 이어 이제 국민을 대상으로 ‘수건돌리기’를 할 참인가. 수건에는 숨바꼭질에서 찾은 삼성 그림 창고 작품들의 주인이름이 적혀있으니 ‘수건돌리기’ 치고는 꽤나 사람을 긴장시킨다.    

 

여인네들의 사치인가, 비자금 세탁소인가?

 

이제까지 삼성 내부 고발자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 의해 지속적으로 제기된 삼성에 대한 여러 의혹들은 최근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비자금과 불법 계승에 대한 폭로로 삼성 공화국의 규모만큼이나 광범위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 김 변호사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어떤 표현을 듣고 한 여성예술가로서 무심코 지나칠 수 없어 잠시 화면을 정지시켰었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비자금으로 구입한 미술품에 대해서 이번 사건의 전체 덩어리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는 표정으로 '애초에 그림부분에 대해선 밝히고 싶지 않았어요. 여인네들의 사치정도로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아서...'

 

특검에 의해 밝혀지겠지만 에버랜드 창고 속 그림이 만약 삼성 재벌가 여인들이 거액의 비자금으로 구입한 것이라면, 또 그것을 여인네들의 사치라고 한다면 본 필자, 듣는 여인으로서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미술품이 자본주의 그물망에 걸린 품목치고는 최상품 대우를 받는 현재의 시스템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첫 번째는 ‘여인네 사치’의 스케일에, 두 번째는 미술품에 대한 세금을 매길 경우 미술시장에 한바탕 꺼질 거품 때문에, 세 번째는 문화 권력자의 추락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때문이다. 

 

그리고 미술품 또한 스스로 황당해 한다. 이는 글로벌한 미술시장에서 귀족 대우를 받고 있는 명화들의 굴욕 사건으로 자본주의 시장에서 자본가 스스로 ‘자본주의 모독’이라는 패러독스를 연출한 경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의 굴욕이야 서민들의 분노만큼 진하겠는가.

 

살림살이 어려워도 세금 꼬박꼬박 내고 사는 선량한 서민들이 받는 충격과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다. 휴일 날 모처럼의 문화생활을 즐기려 아이들 손잡고 미술관을 찾아 유명 미술작품들을 대할 때 느끼는 명화고유의 아우라는 마약처럼 검은 돈에 사고 팔린 사건으로 가려질 것이다.

 

롤러스케이트 타고 지뢰밭에서 구경하는 불꽃놀이

 

이번 사건을 두고 어느 미술시장 관계자는 미술시장의 ‘신용 회복’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낸다. 그들은 삼성측에서 자금의 출처와 구입과정을 하루 빨리 밝힘으로써 미술시장의 신속한 신용회복을 바라고 있다. 이는 미술시장에 이어질 도미노 현상을 막자는 현실적인 주장으로 들린다. 그러나 더 이상 지체 않고 미술품 구입 자금의 출처가 밝혀짐으로써 국내외 미술시장의 신용 회복과 안정을 찾아갈지 모르지만 필자는 이번 사건이 몰고 올 사회적인, 그리고 미술계 내부에서의 ‘계층 간 불신조장’이란 파장 또한 심각하다고 본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미술지존’이라 불리는 홍라희 관장의 특검 소환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미술 관계자들은 ‘롤러스케이트 타고 지뢰밭에서 불꽃놀이 구경하는 모양새’를 방불케 한다. 지금까지 연이어 미술계를 통해 터진 사회문제들은 우리 사회가 인맥으로 얼마나 끈끈하게 얽혀져 있는지를 새삼 증명했고 그 결과 떨어진 불꽃의 파편이 어디로 튈지, 혹은 불꽃놀이 구경하다 중심을 못 잡고 발을 헛디뎌 지뢰를 건드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크고 작은 미술관에 소속된 큐레이터들은 소위 밥그릇을 결정하는 블랙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이 오를까 숨죽이고 있고 비평가들의 목소리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니 전시를 하기 위해 큐레이터나 비평가를 거쳐야 하는 예술가들은 어떠하겠는가.

 

재벌가 여인들이 미술관 관장직과 심지어 교수직까지 넘나드는 한국 미술계에서, 하물며 미술계 지존이 세금을 피해 불법 비자금으로 사 들인 수천 점의 미술품을 창고에 숨겨놓았다면, 이는 문화권력층의 카리스마가 불신의 나락으로 추락할 뿐 아니라 홍 관장은 본의 아니게 피라미드식 ’계층 간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는 결정적인 구도를 잡는데 기여한 셈이 된다. 따라서 문화 권력자의 태도에 요구되는 이 같은 책임감엔 도덕성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문화 권력의 카리스마가 그린 또 하나의 그림자

 

특검의 수사가 진행되는 중에 미술인들의 공식적인 반응은 어떤가. 삼성 미술창고 사건과 관련해 실명으로 언론과 인터뷰한 미술관계자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젊은 여성 한 명뿐이고 또 한사람의 실명자는 '미술계를 기름으로 얼룩진 오염지로 보지 말라'는, 오해받아 마땅한 발언을 했다. 미술계가 오염된 것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숨기는 것이 미술계를 위한 일일까? 그래서 오염된 것을 계속 덮어 두다 부패한 나머지 벌레가 우글거리는 소굴로 방치해야 할까? 아니면 오염의 심각성을 자각하고 자정적인 노력을 해서 미술시장으로 이어지는 신용을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까.

 

이런 류의 사건이 반드시 미술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미술계 내에 복잡하게 얽힌 인맥과 자정적 해결을 못하는 무능함을 인정하고 특검과 김용철 변호사 및 천주교정의사제구현단 그리고 참여연대같은 시민단체에 도움을 청해서라도 오염된 미술계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최근 몇 년 동안 줄이어 터진 낯 뜨거운 한국 고서협회 회장의 이중섭 위작 사건과 지겹게 연명해 온 미술대전 비리의  주역들, 입시 부정 담당자였던 자칭 한국 최고의 미술대학 교수들 그리고 가짜 학력과 정 재계 로비로 젊은 나이에 교수와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직까지 섭렵했던 전 성곡 미술관 학예실장이던 신정아, 삼성 불법 비자금 사건으로 특검에 소환을 앞두고 있는 리움 미술관의 홍라희 관장까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과시해야 할 문화 권력자들이 굵직한 사고를 치고 있다는 점이 미술관람자들을 주목하게 한다. 이에 비하면 문화선진국에서 가끔 발생하는 ‘미술관 도난 사건’이나 ‘습격사건’은 얼마나 상식적인 범죄인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는 '불신병'  

 

필자를 더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이번 사건도 결국 특검이 밝혀내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미술계는 하나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일종의 ‘불치성 불신병’ 이다. 이 질병의 원인은 문화 권력자는 귀를 덮고 미술 비평가는 입을 막고 작가들은 눈을 가리고 예술 활동을 한 결과며 우리 사회가 모두 시장경제와 신 자유주의로 잠식당했다고는 하지만 더욱이 ‘예술이 영혼마저 자본에 저당 잡힌 결과’ 이기도 하다.

 

바로 이것이 한국 예술계 문화 권력층의 카리스마가 부지불식간에 그려낸 또 하나의 그림자다. 만약 삼성 재벌가가 비자금이 아닌 사유재산으로 수천 점의 미술품을 구입했다면 그동안 정계와 법조계에 포진된 삼성맨들이 앞 다투어 삼성의 결백을 증명함으로써 세계 일류 기업답게 최첨단의 스피드로 사건은 마무리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수사가 지연되는 작금의 상황을 두고 국민들은 어떤 추리를 하게 될까?

 

추리 이전에 국민들의 정서는 이제야 말로 삼성공화국 문제가 터질 때가 되었다는 시선과 감히 삼성 문제가 여기까지 파헤쳐질 줄 몰랐다며 아직도 실감 못하는 어색한 반응으로 갈린다. 근면한 국민들은 특검을 술래로 '숨바꼭질'과 '수건돌리기'로 이어지는 놀이를 더 이상 지켜보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

 

그리고 미술계를 통해 연이어 터져 나오는 이 같은 불미스런 사건들로 피해를 보고 있는 진지하고 선량한 미술인들은 ‘에버랜드 그림창고에서 발견된 수천 점의 소유자가 누구인가’를 밝히는 수사가 어떻게 일단락되는가를 예사롭지 않게 지켜보고 있다.       

2008.03.04 10:21 ⓒ 2008 OhmyNews
#삼성 비자금 #삼성 미술창고 #미술계의 지존 #문화권력 #홍라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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