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이 대치동의 한 입시학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박상규
"새벽 강의? 애들 잡을 일 있나. 학원 교습 시간을 자율화하지 말고, 차라리 학교 야간 자율학습을 자율화 하라. 그럼 학생들이 학교 마친 뒤 학원에서 공부하고 일찍 잠 잘 수 있지 않나. 왜 학생들의 자율적 선택권을 학교가 가로막나."
강남 대치동에서 제법 큰 입시학원인 D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조모 원장의 태도는 단호했다. 조 원장은 "자율화의 대상은 학원 교습 시간이 아니라,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이라고 주장했다. "학생들의 체력에 한계가 있는 한, 교습 시간 연장도 한계가 있다"는 게 조 원장의 말이다.
대치동 학원가에 다시 눈길이 쏠리고 있다. 사실 '다시 쏠린다'기 보다는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 이후 대치동 학원가는 늘 뉴스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서울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가 일을 냈다. 이들은 밤 10시로 제한된 학원의 심야 교습 시간 규제안을 없애기로 12일 결정했다.
"자율학습 없애고 학원에서 공부 시켜라"이 소식을 접한 강남 대치동 학원가는 대체로 비판적 견해를 보이면서도 '표정 관리'에 들어간 모양새다. <오마이뉴스>는 13일 오전과 오후 강남 학원가를 찾았다. 개학을 했기 때문에 학원가는 대체로 평온했다. 여러 학원 문을 두드렸지만 인터뷰에 응한 학원은 많지 않았다.
입을 연 입시학원 원장들은 대부분 "24시간 교습시간 자율화를 해도 크게 바뀌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장들은 대체로 "자율이 허용되면 새벽 교습 시간을 마련해 학생들을 모집할 것"이라며 "학생들이 불쌍하지만 우리도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냐"고 말했다.
학원 원장들은 입을 모아 "강제로 진행되는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금지와 학원비 자율화"를 국가에 요구했다. 야간자율학습이 존재하는 한 교습시간이 자율화 돼도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강남 대치동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길포성 원장의 말을 들어보자.
"야간자율학습? 사실 이거 학생들 상대로 사기 치는 것 아닌가. 솔직히 '야간 강제타율학습'이 정확한 표현 아닌가. 새정부 들어섰다고 서울시의원들이 철학도 없이 알아서 바짝 엎드린 것 같은데, 잘 못 짚었다. 야간자율학습 놔두고 교습 시간만 풀면 학생들만 피해본다."
위에서 언급된 조모 원장은 "야간 자율학습을 없애는 게 학교와 학원을 살리는 길"이라고 못 박았다. 조 원장은 "자율학습을 없애면 학교 공부를 마친 학생들이 부족한 과목 보충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학원을 선택할 것 아니냐"며 "왜 학교가 학생들을 강제로 잡아 두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조 원장은 "우리 학원들의 요구대로 된다면 학원들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이것은 곧바로 학생들의 학력 증진으로 연결된다"며 "그렇게 되면 결국 국가경쟁력에 강화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조 원장은 "강남교육청에서는 학원 교습비 상한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것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강남교육청은 학원 '수강료 기준액'을 제시하며 학원 교습비 상한제를 실시하고 있다. 강남교육청이 제시한 기준액에 따르면 입시학원의 경우 단과반은 월21회 교습 7만 9200원, 종합반은 주34시간 교습 약 32만원을 넘으면 안 된다. 이를 어길 경우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이런 교육청의 정책에 학원장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학원비 완전 자율화는 학원장들의 숙원이다.
길포성 원장은 "교육청이 제시한 기준액 대로 학원을 운영하라는 것은 결국, 강남 대치동 학원들은 모두 합천 해인사 옆이나, 강원도 태백산 밑으로 이사가라는 말"이라며 "학원의 사정과 강사의 수준을 비롯해 교육 환경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학원비는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