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확대 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들어간 저도 (2월) 25일 저녁에 청와대 내에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았다."지난 15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문제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대통령은 "컴퓨터를 다시 작동하는 데 열흘이 걸렸다"며 "열흘이 지나도 정상적으로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전 정권의 업무인계 소홀로 새 청와대 전산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업무마비 상황에 처할 뻔했다는 것이다.
앞서 이명박 정부 인사들은 노무현 정부가 인사파일과 문서·자료를 모두 기록보관소에 이관하는 바람에 장관 검증 등에 차질을 빚었다는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이에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이명박 정부 인수위에서 자료 협조를 거부했다"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번엔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내 전산시스템의 문제를 직접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1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다"며 전 정권의 '비협조'를 타박했다.
대통령이 비밀번호 몰라 컴퓨터 쓰지 못했다?이 대통령의 발언만 놓고 보면, 청와대 업무처리 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발해 특허 등록까지 받은 이지원은 문서의 기안에서부터 중간단계의 책임자와 대통령 등 모든 관계자의 견해가 온라인상에 남고 기록화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청와대 업무 대부분은 전자결재로 처리되는데, 이지원 접속이 안 되면 청와대 직원들은 물론 국가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조차 업무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해석에 따라선, 전임 정권이 후임 정권을 '골탕먹이기' 위해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7일 이런 해석을 뒤집는 기사가 떴다. 이 대통령이 열흘 넘게 청와대 컴퓨터를 쓰지 못한 진짜 이유가 집무실에 있는 컴퓨터의 비밀번호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컷뉴스>는 이날 오후 "MB가 청와대 컴퓨터 못쓴 이유는? '비번을 몰라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열흘간 정상적으로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것은 '이지원' 문제가 아닌, 일반적인 '로그인'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언론은 또 청와대 한 핵심 관계자의 말을 인용, "대통령 집무실의 컴퓨터에 '락(Lock)'이 걸려있는데, 그동안 비밀번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는 '이지원'과는 별개의 외부 시스템 문제"라며 "나중에 대통령에게 '패스워드'가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부연했다.
청와대 내 모든 컴퓨터는 보안상 '부팅'과 함께 화면보호기가 작동되는데, 'CTRL+ALT+DEL' 키를 동시에 누른 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정상 화면에 '진입'할 수 있다고 한다. 청와대 일반 직원들도 출범 초기에 '이지원 교육'을 따로 받아, 대부분 이를 숙지하고 있는데, 정작 '최종 결재권자'인 대통령에게 이같은 사용법과 비밀번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컷뉴스>는 다시 청와대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 "15일 대통령의 지적이 있은 뒤 부속실에서 사용법과 패스워드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보도 사실이면 전 정권 억울하게 모함한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