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회식고된 일을 끝낸 뒤의 맛있는 식사는 고단함을 일거에 해소시킨다. 야근을 계속하거나 철야를 하면 가끔씩 근처 소문난 식당에서 전체회식으로 직원들을 위로한다.
고의숙
중국에서의 공장 운영이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물가상승, 위안화 절상, 신노동법 등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부분이 인력난이 몰고 온 직원들의 이직 문제다.
특히나 봉제공장은 이직이 한층 더 심각하다. 농촌에서 처음 나온 새내기를 정성들여 가르쳐 놓으면 떠나버리는 통에 ‘봉제공장은 사회학교’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이니 말해 무엇 하랴. 그러나 최근엔 이 말조차 무색하다. 서툴지만 그래도 인력난의 물꼬를 터주던 농촌에서 유입되는 인력이 급감한 탓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동종업체간 인력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고, 근로자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주저 없이 직장을 옮겨버린다. 우리 공장도 이런 환경에서 예외일 수 없어 언제나 직원들 이직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조그만 변화에도 빨리 대처하지 않으면 애써 가르쳐 놓은 기능공을 한순간에 잃게 된다.
무더기 이직의 신호탄은 사년 전 이맘때 쯤 시작됐나 보다. 한창 성수기로 야근은 물론 철야까지 밥 먹듯 하던 때였다. 월급을 지급한 다음날 절반이 넘는 직원이 말없이 가버렸다. 일 년여 전 공장이 부도를 맞아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을 때도 꿈쩍 않고 남아있던 직원들까지 떠나버린 것이다. 그동안에도 이만큼의 야근은 늘 했다면서 갑자기 무더기로 움직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한다.
문득 ‘일은 고되고 먹는 것은 부실해서?’라는 좀 터무니없는 생각이 스쳤다. 막 중국에 왔을 때라서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내게 제일 안쓰럽게 보인 것은 일의 강도에 비해 먹는 것이 너무 부실하다는 것이었다. 감자 몇 점 들어있는 기름이 둥둥 뜨는 멀건 탕이 아니면 소시지 한 개에 밀가루 빵 하나가 전부인 그들의 식사가 자꾸 마음이 쓰였더랬다.
“저걸 먹고 그 힘든 일을 어찌 하나.”
걱정하는 내게 동생은 이 정도가 근로자 평균 식사라며 저도 안쓰러운 마음에 제 주머니를 털어 구내식당에 고기랑 계란을 사다 주기도 하지만 식당 주인이 떼먹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고 한다. 그걸 또 간섭하면 다른 일을 문제 삼으니 함부로 말도 못한다며 관행처럼 자행되는 건물주들의 횡포에 어쩔 수 없이 식당을 임대 준 속내를 이야기했다.
한국의 투자기업들이 봇물처럼 밀려오자 공장건물을 임대하면서 건물주들은 임대료만으론 욕심에 안 찼던지 자신들이 이런저런 부대 수익을 챙기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경비원도 자신의 친인척을 세우도록 강요하고 식당과 매점 운영권도 자신들이 갖겠다고 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재활용쓰레기까지 챙기려는 사람들까지 있었다고 한다.
초창기 한국기업들이 중국 실정을 잘 모르는데다 건물주는 대부분 실권을 쥐고 있는 촌장이나 고위층 간부가 많아서 어차피 그들 비위를 거스르면 기업하기 힘들기 때문에 웬만한 것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다 보니 관행처럼 굳어진 것이란다.
나가버린 직원들이 끝내 돌아오지 않자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친구들이 가버린 이유와 불만을 적어 내도록 했다. 설마 했는데 첫 번째 이유가 ‘식사가 너무 부실해서’란다. 건물 주인을 불러 현재 임대하고 있는 식당 주인을 내 보내 줄 것을 종용했다. 사실 그 권한은 우리에게 있지만 건물주의 친척인 관계로 함부로 건드릴 수없는 속사정 때문이다.
불만사항이 적힌 쪽지와 텅비어버린 공장을 보고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챘는지 건물 주인이 식당 업자를 내보내준다고 약속을 했다. 다른 임대 업자를 들인다고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참에 우리가 직영하기로 하고, 주방관리를 30년 주부 경력만 믿고 내가 맡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