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에 떠있는 배는 누구의 배인가?

[역사소설 소현세자 19] 삼배를 싣고 압록강을 건너는 배

등록 2008.03.19 10:50수정 2008.03.1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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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압록강. 압록강 물빛이 푸르다.

압록강. 압록강 물빛이 푸르다. ⓒ 이정근


도르곤에게 조선 철군을 명하고 먼저 한성을 출발한 홍타이지는 심양으로 귀환 중 철산반도에 진을 쳤다. 가도(椵島)를 공격하기 위해서다. 가도는 명나라의 요충이다. 북경을 노리고 있는 홍타이지에게 가도는 목에 가시였다. 가도에 명나라 수군을 놔두고 만리장성을 넘기에는 전략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강화도를 공격한 청나라 수군이 철산 앞바다에 도착했다. 포로들을 이용하여 용산강에서 선박을 건조한 경중명과 공유덕이 병선을 이끌고 합류했다. 조선군도 출정했다. 평화롭기만 하던 어촌 마을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가도를 공취할 때 조선은 배 50척을 보낼 것.’

조선 국왕이 청나라 황제에게 무릎 끓고 받아들인 강화조약 다섯째 조항이 멍애가 되었다. 조선에서는 병력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인조는 신천군수 이숭원과 영변부사 이준에게 황해도의 전선을 거느리고 참전하라 명했다. 명나라의 전략요충 가도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평안감사 남선이 입궐하여 임금을 배알했다.

“청나라 사람들이 가도를 공격하려고 하는데 군사를 지원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일이지만 섬에 있는 명나라 군에게 모르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못할 일입니다. 신이 듣건대 본도의 연해에 사는 사람 중에 가도의 사람과 서로 아는 자가 많다고 하니 그들로 하여금 섬에 이 사실을 흘려 공격을 알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a 홍타이지.  심양 북릉공원에 있는 홍타이지 동상

홍타이지. 심양 북릉공원에 있는 홍타이지 동상 ⓒ 이정근


“통보한다면 정말 좋겠다만 일이 만약 누설되면 화를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차마 통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조는 대신들을 불러들였다.

“청나라의 공격을 가도에 비밀리에 통고하려고 하는데 어떻겠는가?”


“통고하면 청나라가 알게 될 것 입니다.”

영의정 김류와 좌의정 홍서봉이 반대했다.

“가도의 일을 생각하면 망극하다.”

존주의 대상 명나라가 공격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알려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서로 버티고 있는 지가 이미 오래 되었으니 곧 결전의 전투가 있을 것입니다.”

김류가 강 건너 등불처럼 바라보자고 했다.

“주사(舟師)로 서로 맞서고 있다 하니 우리가 더욱 난처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국의 전투에도 죽음을 각오하고 임하지 않았는데 어찌 청나라 병사를 위하여 선봉이 될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병사에게 먼저 들어가게 한다면 반드시 한 사람도 살아 돌아 올 수 없을 것이니 더욱 애처롭고 슬프다.”

청나라는 남한산성 공략과 같은 전술을 구사했다. 홍타이지는 마부달(馬夫達)에게 가도를 포위하여 항복을 받아내라 명하고 심양으로 떠났다. 청나라 장수 마부달은 가도를 포위하고 항복을 요구했다. 명나라 수군 도독 심세괴(沈世魁)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마부달이 병선 70여 척을 이끌고 가도를 공격했다. 명나라 장수 심세괴는 부하장졸 1만여 명과 함께 전멸했다.

a 압록강. 강 건너 백사장이 위화도이고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것이 의주 백마산성이다.

압록강. 강 건너 백사장이 위화도이고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것이 의주 백마산성이다. ⓒ 이정근


압록강 물빛이 눈부시게 푸르다. 강빈은 뱃전에 부서지는 포말에서 하얗게 웃고 있는 얼굴을 발견했다. 석철이었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혼례를 올리고 9년 만에 낳은 첫아들이었다. 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 현재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가슴이 미어졌다. 흐르는 것은 눈물뿐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강빈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연실이었다. 세자빈 간택에 거명되었다는 경외로움 때문에 어디에서도 혼담이 들어오지 않았던 여인이다. 들어온다 하더라도 배제되었다는 모멸감이 어떠한 혼사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게 혼기를 놓친 연실이에게 병자호란은 악몽이었다.

피난 갈 수 없다는 아버지 때문에 집에 머물고 있던 연실이는 청나라 군사들의 습격을 받았다. 태어나고 자란 자신의 집에서 다섯 명의 군졸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혀라도 깨물어 죽고 싶은 마음에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죽음마저도 선택할 수 없었다. 삼전도 군막으로 끌려간 그녀는 홍타이지 채홍사의 망측한 심사를 통과하여 하룻밤 황제를 모시고 부하에게 하사되어 심양으로 끌려가는 몸이 되었다.

청나라가 조선을 침공하면서 놀란 것은 산수가 아름답고 여자가 예쁘다는 것과 노인을 공경한다는 것이었다. 흉측하게 받아들인 것은 긴 장죽을 입에 물고 콧구멍으로 연기를 내뿜는 것이었다. 임진왜란을 통하여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담배가 조선에는 점차 뿌리를 내려가고 있었고 청나라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a 배. 청나라는 조선의 배를 좋아했다.

배. 청나라는 조선의 배를 좋아했다. ⓒ 이정근


청나라 군사들이 전리품으로 눈독을 들이는 것은 여자들이었고 곶감과 배와 옷감이었다. 종루 시전 포목전에 있던 비단과 삼베를 수레에 실어냈고 설 대목을 노리고 배오개 창고에 그득히 쌓여있던 곶감과 배를 닥치는 대로 약탈했다.

특히 난생 처음 먹어보는 배(梨)는 인기품목이었다. 눈을 뭉쳐놓은 것 같은 사각사각 달콤한 맛에 매료되었다. 만주지방에서 생산되지 않은 배를 그들은 설리(雪梨)라 부르며 무척 좋아했다. 

청나라는 조선에서 철군하는 병력을 수송하기 위하여 압록강 도하작전에 선박을 대량 투입했다. 3천명 이상의 군졸과 수레를 실을 수 있는 대형 병선과 크고 작은 선박이었다. 소현세자와 강빈 그리고 연실이는 공교롭게도 한 배를 탔다. 세 사람이 함께 탔지만 생각은 각각 달랐다.

소현세자는 패망한 조국을 생각하고 있었다.

“부왕이 삼전도에서 항복했고 세자인 내가 압록강에서 배를 탔다. 이 배는 우리의 배가 아니라 청나라 배다. 내가 의도한 대로 이 배는 가지 않는다. 이 배가 가는 대로 나는 따라가야 한다. 그렇다면 조선의 미래는 없단 말인가?”

강빈은 생사를 알 수 없는 석철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보고 싶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라도 알고 싶다. 원손이 태어났다고 기뻐하시며 전하로부터 축복을 받았던 네가 지금 이 순간,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니 이 어미는 가슴이 미어진다. 제발 살아만 있어다오,”

연실이는 좀 더 다른 색깔의 처절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배는 세자를 태울 준비된 배였지만 세자는 다른 배를 탔고 내 배는 무뢰한들이 탄 다음 황제를 태웠다. 세자 하나만을 생각하며 고이 간직하고 싶은 배였는데 운명이 장난을 쳤다. 내 배는 누구의 배인가? 내가 태워주고 싶었던 세자는 타지 말아야 할 배를 타고 괴로워하고 있고 세자를 태운 배는 배에서 이탈한 배를 애타게 찾고 있다. 그리고 이 배에는 베와 배가 가득 실려 있고 우리는 그 배를 타고 함께 가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간택에 거명되었던 스물네 살 처자의 넋두리였다. 전란으로 만신창이가 된 여인의 울부짖음이었다. 죽지 못해 머리가 이상하게 되어버린 여자의 피를 토하는 절규였다.
#소현세자 #압록강 #홍타이지 #강빈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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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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