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인들의 대가족 형태 - 그들의 소풍에 동참한 날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세상구경(이란 편)

등록 2008.03.22 14:05수정 2008.04.0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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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 김성국


시라즈(Shiraz) 페르세폴리스에서의 짧은 만남이 한때 세계의 반이라 불리었던 도시 이스파한(Isfahan)에서도 이어지게 될 줄이야……. 페르세폴리스의 발굴 작업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던 아가씨 미나. 그녀가 자신이 태어나 자란 도시인 이스파한에 오면 전화하라고 적어준 전화번호를 받았을 때만 해도, 과연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는 기회가 주어질 것인가 하는 막연한 기대감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휴가 일정이 공교롭게도 우리가 이스파한에 머무는 기간과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며 "인연"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게 된다. 

그 후 한 주간은 미나와 그녀 가족들의 뜨거운 환대에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고고학을 전공한 미나와 이스파한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녀의 지인들이 보여준 이스파한은 분명 달랐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우린 무척이나 운이 좋았다.


오늘은 미나와 그녀의 동생인 후세인을 만나면, 원래부터 관심이 있었던 이맘 모스크에 가자고 할 예정이었는데, 그들은 우릴 만나자 마자,  두 이모의 가족들이 함께 가는 소풍에 우리를 초대했다.

이스파한에 머무르는 동안, 자얀대(Zayandeh) 강을 따라 자전거 하이킹을 즐길 때면 어김없이 보아왔던 이란인들의 가족 나들이. 언제나 멀찌감치 떨어져서 부러움 섞인 눈으로 관망만 했었는데, 오늘은 우리도 이들 이란인 가족들의 소풍에 정식으로 초대를 받았다. 어머니, 아버지, 막내 동생과 한명의 남자 사촌과는 구면이었지만, 함께 한 사람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저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

이모 두 분과 두 분의 이모부, 그리고 각각 이모들의 네 형제와 두 자매. 거기에다 국이랑 영아, 미나의 가족까지 모두 합치면, 자그마치 열일곱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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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네 가족들과 함께, 이란 이스파한. ⓒ 김성국


교육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은 미나네 가족들은 아이들이 거의 모두 대학을 다니거나, 대학을 나온 인텔리들이다. 게다가 해외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았고, 궁금한 사항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가 끊임없이 주고받는 얘기들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야기 중간, 영아가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미나의 아버지에게 선물로 드리자, 온 식구들이 돌려보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 돈 속의 인물은 누구이며, 지폐 안에 그려진 집이 한국의 전통 집인지?"


단지 천 원짜리 한 장을 받아 쥐고, 얼마나  좋아하고 즐거워들 하는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오히려 우리가 더 신이 나서 설명을 해주게 되었다. 그리고 비록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얼마나 우리가 우리 것에 대해 무관심했었는지 여실히 절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 여지껏 살면서 단 한 번도 천 원짜리 지폐 속, 이황 선생 옆의 향료통 같이 생긴 게 무얼까 궁금해 한 적이 없었는데…….'

그냥 이황 선생은 우리나라 유교의 대가 중 한 분이며 그 향료통 같이 생긴 것은 제사 의식에 사용하는 그릇이라고 답을 하긴 했는데, 영 확신이 서질 않는 것이었다. 차라리 '100원 짜리를 보여주고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우리나라의 구국 영웅인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에 대해 얘기할 걸 그랬나보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자유스럽지 못한 사회적인 분위기 탓인지, 이들의 외국에 대한 관심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외국에 나가는데 많은 제한을 받는 이들에게 우리처럼 자유롭게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극동 아시아의 두 젊은 커플은, 그 존재 이유만으로도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곳 이란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회사들 중 하나로 알려진 삼성과 엘지, 한국의 태권도와 핸드볼,  88올림픽, 월드컵, 한국전쟁, 한국과 주변국의 관계, 경제적 상황, 우리의 여행얘기 등을, 식구들의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사실 궁금해 하는 사람의 수가, 우리보다 저쪽이 많았기 때문에 우린 주로 대답을 하는 편이었고. 국이를 주축으로는 남자들이 모여 앉고, 영아를 주축으로는 여자들이 모여 앉았다. 후세인과 미나의 통역으로 얘기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그 가운데 12살짜리 막내, 나르기스는 영아의 옆에 바싹 붙어 앉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영아를 뚫어지게 신기한 듯 쳐다보며 눈을 떼지 못한다. 덕분에 영아는 이 조그맣고 귀여운 아가씨를 동생 삼겠다며 하루 종일 옆에 끼고 다녔다.

오늘도 이들, 미나 가족들과의 소풍을 통해 이란인들의 대가족 형태를 실감 한 시간이었다. 우리나라도 대가족 제도가 남아 있다고 하기엔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이들의 가족 결속력은 대단해 보였다. 오늘 미나와 후세인이 만난 엄마 측의 식구들만 줄잡아 20명. 이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만나는 식구들이다. 아버지 쪽 친척들까지 한 자리에 모였다 하면 90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얼마 후 어른들은 먼저 떠나고, 젊은 사람들만 남아, 함께 강변을 산책하다 찻집에 들어갔다. 역시, 여행자끼리만 다니는 것은 언제나 한계가 있는 법이다. 현지인들과 동행하니, 멋진 곳이 줄을 잇는다. 다리 아래의 찻집은 이미 와본 적이 있는 곳이었지만, 이렇게 멋진 안쪽 공간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시원하게 뚫린 창문으론 자얀대 강이 내려다보이고, 고급스런 붉은색 페르시안 카펫이 깔려 있는 고풍스러운 방에 우리는 둘러앉았다. 사촌 중 나이가 제일 많은 미나가 차를 주욱 돌리는 사이, 물 담배(Qalyan,Nargileh)를 가지고 온,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한다는 모즈타바가 내게 담배를 권했다. 내가 파이프를 입에 대자, 모두들 일제히 시선이 내 쪽으로 쏠린다. 이윽고 내가 익숙하게 빨아서 뿜어내자, 모두들 탄성을 내뱉는다(이정도 쯤이야 기본이지). 젊은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 분위기가 한층 더 밝은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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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얀대 강변의 찻집 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 김성국


우리가 모두의 이름을 알려 달라고 하자, 미나가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적어 주었다. 그리고 이어진 출석체크. 영아가 하나하나 사촌들의 특징을 이름 옆에 기록하며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 될 때마다 손을 들어 올리며, 네, 네 하고 대답을 했다. 모두들 깔깔깔 넘어갔다.

미술을 공부한다는, 미남자 모즈타바가 *코란(Quran, 이슬람 경전)을 읊는 듯 시를 읊어대자 이번엔, 모두들 뒤로 자지러졌다. 이유인즉슨, 경건한 코란의 리듬에다가 가사를 붙이기를, "오늘 아침에는 빵과 계란을 먹었고. 집을 나오는데, 강아지 한마리가 신경이 거슬리는 것 아니겠어, 그래서 발로 차 주었더니 깨갱 하고 도망을 가더군……." 이런 식이었다고 한다. 유머도 많고 웃음도 많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나중에 이란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이를 재우기 위해 자장가를 부른다거나,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대답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면, 이런 식으로 코란 리듬에 가사를 제멋대로 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코란을 읽는다는 것과 듣는다는 것이 익숙한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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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파한의 다리들은 그 아름다운 자태로 유명하다. ⓒ 김성국


에스파한의 중심을 가로 지르는 자얀대 강에 비친, 방 안은 강물에 반사된 햇빛으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고, 같은 동양에 속한 젊은이들이라기엔 너무나 다른 모습의 젊은이들이 만나 만들어 내는, 아름답고 순수한 분위기에 잠시 행복감이 밀려왔다. 게다가 마치 한 식구라는 결연한 의식이라도 치르듯, 한 대의 물 담배를 돌려가며 피워대니 분위기는 어느새 고조 되었다.

그윽한 사과향의 담배 연기는 방안에 가득했다. 그들은 한국의 젊은이들은 만나면 보통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느냐고 물어왔다. 딱히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글쎄. 술 마시고 노래방 가서 노래하고 춤추고, 때로는 영화도 보러가고, 차도 마시고, 요즘은 컴퓨터 게임도 많이 하러 가는 것 같다는 내 대답에 그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눈을 빛냈다.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 비하면, 이란은 그나마 자유로운 편이어서 도시에서는 음주도 가능하고 여성들도 개방적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제약이 많다고 한다. 특히 여자일 경우, 외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에 79년 호메이니에 의해 주도된 이슬람 혁명이후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해외로 도피, 해외에서 연예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잠시 후 때가 되었다는 듯, 문을 두드리는 주인장. 이곳 이란에서는 보통 찻집에 들어가면 20~30분쯤 있으면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즉 제한 시간이 있다는 말이다. 저녁에는 또  삼촌 집을 방문한다는 이들은 우리를 배려해서, 차 탈 사람의 인원 배치를 새로 하고, 괜찮다는 우리를 굳이 차에 태워서 호텔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이별은 언제나 아쉬운 법. 얼굴을 부비며 이란식의 인사를 나누던 영아와 미나는 못내 아쉬운지, 어느새 둘 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이란 사람들,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 우리도 훗날, 어딘가 정착하면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이렇게 따뜻한 정을 베풀 수 있겠지. 우리가 이들에게 배운 그대로 말이야…….'

우리는 여행을 통해 가슴이 넉넉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또한 그들을 통해 베푸는 법을 배웠고, 지금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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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파한의 바자르(전통시장)에서. 왼쪽부터 후세인, 미나 그리고 영아.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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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파한의 거리 풍경 사막 한가운데 있는 삭막한 도시일 거라는 우리의 생각이 무색할 만큼 이스파한은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였다.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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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파한의 거리 풍경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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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자르(전통시장) 풍경. 이란의 금속 공예품은 그 화려함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 옛날 실크로드의 대상들이 오고 가던 시절에도 시장을 방문하면 이런 공예품들이 그득했을 것이라니.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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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파한 바자르(전통시장) 풍경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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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 모스크, 이스파한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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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본 미나 레트, 이스파한 [ 미나 레트(Minaret): 이슬람 사원의 첨탑, 무슬림들은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를 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기도 시간이 되면 전 세계 13억의 무슬림들은 동시에 메카를 향해 기도를 시작한다. 그리고 사원에서 그 기도 시간을 알려 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미나렛이다. 지금이야 스피커를 통해 기도 시간을 알려 준다(아잔) 하지만, 과거에는 이 마나렛에 올라가 높은 곳에서 육성으로 기도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 김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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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 모스크 내부 전경. 모스크 내부의 벽에는 쿠란의 내용이 가득 적혀 있다. ⓒ 김성국

덧붙이는 글 |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구경 - 긴 여정(이란,인도/네팔,터키편)- 은 작자의 홈페이지(http://www.bikeworldtravel.com/)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그리고 SLR CLUB(http://www.slrclub.com/)에서 연재가 이루어 집니다. 오마뉴스는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덧붙이는 글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구경 - 긴 여정(이란,인도/네팔,터키편)- 은 작자의 홈페이지(http://www.bikeworldtravel.com/)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그리고 SLR CLUB(http://www.slrclub.com/)에서 연재가 이루어 집니다. 오마뉴스는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이란 #자전거여행 #이스파한 #이맘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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