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산>에서 연쇄살인의 배후로 지목되어 체포된 홍국영.
MBC
노비가 잔심부름만 하는 존재라는 편견은 버려!<이산>의 최근 방영분에서 숙종시대 살주계를 모티브로 미스터리 수사극을 구성한 것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노비와 주인의 관계를 너무 고전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노비' 하면 흔히 양반 집에서 잔심부름이나 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산>에 등장한 호조판서 같은 악독한 주인을 만나면 혹독한 고생을 하다가 경우에 따라서는 탈출하거나 복수를 시도하는 존재 정도로 노비는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광범위한 노비계층이 존재했다는 점, 어떤 때에는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가 노비였다고 하는 연구도 있다는 점, 또 미야지마 히로시(전 동경대 교수)의 <양반>에 나온 것처럼, 한 가문에 700명 정도의 노비가 소속된 경우도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노비의 숫자가 그처럼 많았고 한 가문에 노비가 700명씩 소속된 경우도 있었다는 것은, 노비들이 단순히 마당이나 쓸면서 잔심부름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생산에 참여한 계층이었음을 보여준다.
현대인들은 양반 가문(家門)의 가(家)를 현대의 '가정'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전통시대의 가(家)는 하나의 경제 단위로서 기능하는 곳이었다. 그 가(家)는 주인의 가족을 포함해서 많은 수의 생산 담당자(주로 노비)들이 함께 사는 경제 단위였다.
일본의 씨(氏)가 사회·경제 단위였듯이, 한국의 가(家)도 그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노비들이 소속된 가(家)라는 곳은 주인집 가족이 사는 곳이 아니라 상당한 규모의 생산조직이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역사인식이다.
웬만한 양반 관료보다 더 나은 생활하기도노비들이 경제 단위인 가(家)에 소속되어 집단으로 생산을 담당했다는 것은, 다소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현대의 회사원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현대인들이 회사(社)에 소속되어 생산을 담당하듯이, 과거의 노비들도 지주의 가(家)에 소속되어 그렇게 했던 것이다.
노비 숫자가 700명씩이나 되는 가(家)에서는 '이사급'이나 '부장급' 같은 고위층 노비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 노비들은 웬만한 양반 관료보다도 훨씬 더 괜찮았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회사에서 이사로 근무하는 '고위층 노비'가 구멍가게를 하는 자영업자나 웬만한 공무원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물론 현대의 회사원들은 자유계약에 기초해서 또 신체의 예속이 없는 상태에서 노동을 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노비와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법으로 자유를 보장받았다 해서 현실에서도 반드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아니, 조선시대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노비였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억압적인 상황 속에서 정말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게 말이 되는가? 그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현대 회사원들의 삶도 먼 훗날 사람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억압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아마 그들도 "아니 대한민국 시대의 회사원들은 저런 억압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아마 회사원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또 요즘 며느리들은 "옛날 며느리들은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하지만, 옛날 며느리들도 그 나름대로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아마 몇 십 년 뒤의 며느리들이 요즘 며느리들을 두고 "어떻게 저렇게 살았을까?"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는 과거 조상들이 겪은 고통을 과대평가하는 한편 현재 우리가 겪는 고통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억압받는 생산계층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기 시대의 고통을 과소평가하게 될 것이다. 그런 '착각'이 없다면, 부조리한 생산관계는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노비와 주인의 관계는 노동자 대 사용자의 관계와 비슷 아무튼 조선시대의 노비들이 현대의 회사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은, 주인(사장님)에 대한 그들의 원한이 단순히 사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주인이 내 누이를 겁탈했기 때문이라는 등등의 사적 원한을 넘어서는 공적 원한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노비와 주인의 관계가 생산관계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에, 주인에 대한 노비의 원한 역시 결국 그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그런 원한은 노비의 생활 혹은 생산조건이 지나치게 열악하거나 또는 생산의 결과물을 주인이 독식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요즘 말로 하면 노동조건이 너무 열악하거나 혹은 임금이 지나치게 낮을 경우에 주인에 대한 노비의 분노가 폭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지주에 대한 노비들의 분노는 결국 악덕 기업주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와 같은 것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 분노가 균형을 잃고 과도하게 분출된 경우가 살주계와 같은 조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극에서 노비를 단순히 잔심부름꾼 정도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것은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생산의 주요 주체 중 하나였다는 점을 간과한 데에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사극에서는 자유 농민과 함께 예속 노비의 경제 상황에 대해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덧붙여 미국의 저명한 한국사 학자인 제임스 팔레(워싱턴대학 한국학 명예교수)처럼 조선사회를 노예제 사회라고 파악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노비와 노예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학문적 접근법'은 결과적으로 한국민들의 자주성 혹은 주체성을 은연중에 부정하려는 제국주의적 세뇌를 위한 '정치적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는 제임스 팔레처럼 조선시대의 노비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한편, 노비와 주인의 관계를 노동자 대 사용자의 관계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조선시대의 생산관계에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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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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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는 '주인을 죽이는 노비들의 모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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