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초상.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소설가 김유정. 춘천 실레마을에 그를 기리는 문학촌이 있다.
김유정문학촌
어느 날 점순이가 자신의 닭과 '나'의 닭을 싸움시켜 놓고 청승맞게 호드기를 불고 있었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갔던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지게 작대기로 점순네 닭을 때려 죽인다. 위에 인용한 대목은 닭을 죽인 후부터 일어나는 상황이다.
점순이 '나'에게 닭이 죽은 것에 대해 눈감아 준다고 한다. 안심이 되는 순간 점순이 '나'의 어깨를 짚은 채 쓰러졌고, 둘은 한창 흐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혔다. 그리곤 화면은 생강나무꽃으로 클로즈업된다.
이들의 사랑은 격정적이진 않다. 풋풋한 풋사과 같은 사랑이다. 농촌에서 살아가는 처녀와 총각이 하룻밤의 사랑이 아닌 하루 낮의 꿈결 같은 사랑을 생강나무꽃이 흐드러진 곳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인 '나'는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라고 그 순간의 혼곤함을 표현한다.
사랑이 끝나고 점순이 '나'에게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말라고 하고, '나'는 그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요즘 사람들과 사랑하는 법이 다르다. 순수하고 에둘러 가는 이들의 사랑법이 그래서 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생강나무꽃은 사랑꽃이자 연애의 꽃이다. 봄 기운이 겨드랑이를 파고 드는 날 생강나무꽃을 따러 산으로 오르는 여인의 뒤태엔 봄바람이 가득 들었다. 따라 갈까, 말까 망설여지는 순간이다.
그런 이유로 생강나무꽃이 만들어내는 우리네 사랑이야기는 애절하거나 해학적이다. 단숨에 끝나버리는 휘황한 네온사인같은 사랑이 아닌 것이다.
봄날 생강나무꽃이 피어있는 산자락을 바라보던 나는 눈을 그윽하게 감고 소설속 주인공인 '나'가 되어 '점순이'의 '알싸하고도 향긋한' 향을 기억하다가 결국 한낮임에도 '땅이 꺼지는 듯 정신이 아찔해'지는 황홀함을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