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햇수로는 5년이고 만으론 4년이나 흘렀다. 2004년, 당시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다. 이제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직 앳된 얼굴들이 정말로 투명하고 싱그러운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 그게 내 이름표였다.
입학식을 마치고 처음 얼굴을 마주한 아이들은 아직 젖살이 덜 빠진 뽀얀 얼굴의 여학생들도 있었고, 제법 어른 티가 나도록 수염자리가 까만 남학생들도 있었다. 이 아이들과 짧게는 1년, 길면 3년을 함께 해야 하는 운명이 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새 학년이 시작되는 3월은 학생이나 교사나 모두 정신이 없다. 후루룩하고 물 한 사발 들이켜는 사이에 3월은 가버리고 만다. 그리고 맞이하는 4월. 겨우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제대로 불러줄 수 있게 될 무렵인 바로 그 4월의 첫 날이 만우절이라니. 거짓말을 마음껏 해도 좋은 날이라니.
만우절이 되면 교사들은 약간의 긴장을 하고 교실엘 들어가게 된다. 아이들의 짓궂은 ‘만우절놀이’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기왕에 겪어본 이력이 있어 아이들의 '만우절놀이' 수준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여유를 부릴 수는 없다.
그날도 녀석들이 무슨 놀이를 준비하고 있으려나 긴장하며 교실로 향했다. 마침 담임을 맡고 있던 반의 수업이었다.(사진의 기록을 보면 2004년 4월 1일 10시 37분이다) 그런데… 교실에 들어선 순간, 교실에는 아무도, 아무 것도 없었다. 교실에 있어야할 교탁이며 아이들의 책상과 의자가 몽땅 사라졌다. 당연히(?) 아이들도 없었다.
만우절 놀이치곤 좀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을 직감한 나는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막 교실을 나서려는 순간 한 녀석이 달려와 아이들이 다른 곳에 있다며 나를 안내했다.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학교 운동장! 맙소사, 아이들은 운동장 한쪽에 교실을 차려놓았다. 교실에서 사라진 교탁이며 책상과 의자, 그리고 40여 명의 아이들 모두가 거기에 얌전하게(?)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꾸중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의 기발한 장난에 함께 하는 것이 즐거울 따름이었다. 수업내용은 '나의 소원' 발표하기. 마침 교과서에서 김구 선생의 글 '나의 소원'을 배우던 때라 아이들에게도 같은 제목으로 자신의 미래를 글로 써 오게 했는데 마침 이 날 발표를 하게 된 것이다.
종혁이는 10억의 돈을 벌고 싶다고 했고, 상우는 CEO가 되고 싶다고 했다. 종환이는 좋은 선생님이 돼서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도 했다. (종혁이는 지금 대학생이고, 상우는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청소년공부방에서 수학 선생님 노릇을 하며 나를 돕고 있다. '싸나이'임을 늘 자랑하던 종환이는 얼마 전 귀신 잡는 해병대원이 됐다.)
나는 아이들이 차례대로 나와서 발표를 하는 동안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에 담았다. 아이들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만우절 날의 운동장 수업 발표회. 그 시간을 기록해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날 찍은 사진과 동영상은 3년 후 아이들이 졸업할 무렵 CD에 담아서 전해주었다.
이 아이들과 3년을 꼬박 함께 보냈다. 이제는 졸업생 제자가 돼서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만우절놀이부터 시작해서 함께 지낸 3년 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이 이야깃거리로 재생되곤 한다. 그 즐거움의 끝에는 막연하고 아득한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20대 88만원 세대인 아이들의 한숨도 진하게 섞여나온다. 그럴 때면 저들의 선생이라는 자리가 몹시도 아프다.
오래 전 이들과의 만우절놀이가 그러했듯, 이들이 불안해하는 88만원 짜리 미래도 만우절의 한바탕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사진 한 장으로 웃으며 돌아보는 과거의 추억처럼 내 제자들의 미래도 웃음과 희망으로 환하게 열렸으면 정말 좋겠다.
2008.04.01 09:21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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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책상이 운동장에... 4년전 만우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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