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을 잡는데 큰 공을 세우신 상추장수 할머니. 고희를 바라보고 계시지만, 수줍음은 늙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이기 전에 여성이기 때문이겠지요
조종안
계획을 실천하려고 며칠을 빠지지 않고 장엘 다녔습니다. 오늘도 다녀왔는데 구포 장은 장날이 아니어도 활기가 넘치고 부산 사투리가 귀를 따갑게 합니다. 그만큼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되겠네요.
시장을 구경하다 엊그제 상추를 많이 담아주셨던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마침 상추와 쑥갓 등을 길가에 펼쳐놓고 담배를 피우고 계시더군요. 두어 번 사다 먹은 것도 인연이라고 반가워하며 다가가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알면서도 물었지요.
"처넌이요 처넌. 상치가 맛있다 아이가 언능 사가시기요" 하시기에 웃으며 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면서 "엊그제 할머니에게 상추를 사먹었는데 싱싱하고 맛이 좋아 오늘 또 왔으니 많이 주셔야 합니다" 했다.
엊그제도 사갔는데 맛이 좋아 또 찾아왔다고 하자, 할머니는 기분이 좋은지 상추와 쑥갓을 한주먹 더 집어주며 "마이 묵고 건강하이소"라고 하시더라고요.
"할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아주머니와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그분도 손이 크고 말씀도 재미있게 잘하셨거든요. 마음이 넉넉하고 화끈하신 할머니와 맛있는 상추를 사진으로 찍어서 식구들에게 자랑해야겠네요. 그러니 폼을 멋있게 한 번 잡아보세요.""야!! 쪼고라진 할매를 사진 찍겠다카는 냥반은 첨 안보능가…. 찍을라카믄 기왕에 예쁘게 찍어 보이소."할머니는 잘 찍으라고 하시면서도 수줍은지 멋쩍게 웃으시더라고요. 대화를 좀 더 나누고 싶었지만, 손님이 오는 바람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2∼3일에 1천원씩 매상을 올려주겠지만 할머니는 확실한 단골을 하나 잡았고, 대화 상대가 없는 저는 할머니 친구를 한 분 사귀게 되었습니다. 심상치 않은 남북관계와 여야관계도 할머니와 저의 경우처럼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