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25)

― ‘1200톤의 항생제의 행방’, ‘다른 사람의 미래의 가능성’ 다듬기

등록 2008.04.07 19:04수정 2008.04.0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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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100매 분량의 장문의 특집기사

 

.. 영동 현지로 내려가 꼼꼼히 취재를 하고 200자 원고지 100매 분량의 장문의 특집기사를 써서 사건을 알렸다 ..  《정구도-노근리는 살아 있다》(백산서당,2003) 75쪽

 

 “꼼꼼히 취재를 하고”라는 말이 좋습니다. 다른 분들은 으레 “구체적(具體的)으로 취재를 하고”로 쓰거든요. “영동 현지(現地)로 내려가”처럼 적어도 되지만 “영동으로 내려가”라고만 적어도 괜찮습니다.

 

 ┌ 100매 분량의 장문의 특집기사

 │

 │→ 100매로 긴 특집기사

 │→ 100매 길이로 특집기사

 │→ 100매나 되는 긴 특집기사

 └ …

 

 길이가 원고지로 100매입니다. 여기서는 ‘100매’라고만 하면 길이가 얼마쯤인지 드러납니다. 그러니 ‘분량(分量)’은 덜어도 되는 말입니다. 굳이 무언가 쓰고 싶다면 ‘길이’라는 말을 넣어 줍니다.

 

 다음으로 ‘장문의’ 살피기. ‘긴 글’을 뜻하는 한자말 ‘長文’은 말 그대로 ‘길다’로 나타내면 넉넉합니다. “장문의 기사”가 있고 “단문의 기사”가 있을까요. “긴 기사”와 “짧은 기사”라 하면 됩니다. 글길이를 말할 때에도 “장문의 글”이나 “단문의 글”이 아니라 “긴 글”이나 “짧은 글”로 적으면 됩니다.

 

 

ㄴ. 1200톤의 항생제의 행방

 

.. 양식업 등에서 쓰이는 연간 1200톤의 항생제의 행방을 추적했습니다 ..  《고와카 준이치/생협전국연합회 옮김-항생제 중독》(시금치,2005) 8쪽

 

 ‘행방(行方)’은 “간 곳”을 뜻합니다. 그래서 “항생제의 행방”이라면 “항생제가 간 곳”을 뜻해요. “양식업 등(等)에서”는 “양식업 들에서”나 “양식업 같은 데에서”로 다듬고, ‘연간(年間)’은 ‘해마다’로 다듬으며, ‘추적(追跡)했습니다’는 ‘좇았습니다’나 ‘살펴보았습니다’로 다듬습니다.

 

 ┌ 1200톤의 항생제의 행방을

 │

 │→ 1200톤이나 되는 항생제가 어디로 갔는지

 │→ 항생제 1200톤이 어디로 갔는지

 │→ 항생제 1200톤이 간 곳을

 └ …

 

 차근차근 생각해 보면 됩니다. 한 번 쓴 글을 가만히 되짚어 보면 됩니다. 생각없이 말하거나 글쓰지만 말고,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주면 됩니다.

 

 보기글을 통째로 다시 써 봅니다. “양식업 같은 곳에서 해마다 쓰는 항생제 1200톤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았습니다.”

 

 

ㄷ. 다른 사람의 미래의 가능성

 

.. 산이든 몸이든 다른 무엇이든 이런 걸 마음 깊이 느끼고 나면, 우리가 무슨 일로 세상에 절망할 것이며 무슨 일로 다른 사람의 미래의 가능성에 냉소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게 됩니다 ..  《김곰치-발바닥 내 발바닥》(녹색평론사,2005) 188쪽

 

 ‘냉소(冷笑)’란 남을 비웃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미래의 가능성에 냉소해야 하는지”는 “미래의 가능성에 비웃음을 보내야 하는지”란 소리인데, 무슨 이야기인지 좀 엉뚱합니다. 글쓴이가 낱말을 잘못 골랐구나 싶어요.

 

 ┌ 다른 사람의 미래의 가능성에

 │

 │→ 다른 사람한테 열린 앞날에

 │→ 다른 사람 앞에 열린 꿈을(나날을)

 └ …

 

 “미래의 가능성”이라면 “앞날에 이룰 수 있는 것”이나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뜻할까요. “다른 사람한테 열린 앞날”이나 “다른 사람 앞에 열린 꿈”으로 다듬으면 어떨는지. 그러나, 이렇게 다듬어 보아도 썩 내키지 않습니다. 글쓴이가 처음부터 낱말을 두루뭉술하게 쓰지 말고 알맞게 잘 골라서 썼다면, 말투뿐 아니라 낱말도 알맞게 골라서 쓴다면 좋을 텐데. 토씨 ‘-의’를 겹쳐서 쓰고 말을 꼬니 골치아프네요. 차라리 보기글을 통째로 “무슨 일로 다른 사람 앞날에 희망이 없다고 비웃어야 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게 됩니다”쯤으로 고쳐쓰면 어떨까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2008.04.07 19:04ⓒ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토씨 ‘-의’ #우리말 #우리 말 #-의 #-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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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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