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총선 유감

등록 2008.04.11 10:35수정 2008.04.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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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볼일이 있어서 시내에 나갔다 왔습니다. 여기 저기 많은 현수막들이 어지러이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차량 번호판을 떼 가겠다는 것, 학원 광고, 세일을 한다는 의류상가의 알림 등 각양각색의 현수막들이 거리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바로 걸린 듯한 것도 있었습니다. "성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총선 낙선 사례 현수막이었습니다.

 

낙선해서 마음이 많이 아플 텐데 재빠르게 움직여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마음이 참신하게 다가왔습니다. 시내 중심가에서는 선거 때 쓰던 차량을 이용해서 당선자가 감사 인사를 하고 다녔습니다. "시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머슴이 되겠습니다." 이런 내용을 녹음해서 크게 틀어대고 있었습니다.

 

이번 선거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정당 투표는 그렇다 하더라도 후보가 달랑 세 명밖에 나오지 않아 후보 선택에 큰 제약이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여당 1명에다 무소속, 그리고 군소정당 1명 이렇게만 출마한 것입니다. 그들의 성향을 볼 때 모두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라 진보적 정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후보자들을 선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개중에는 후보 투표는 기권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기권은 하지 않았습니다. 김천선관위 공명선거 홍보대사를 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것보다도 싫어하는 사람이 뽑히는 것을 막기 위해 투표를 한 경우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저는 몇 가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지역주의가 아직도 우리 선거에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호남의 나뉨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급조한 자유선진당이 충청도를 휩쓸므로써 지역주의에 충청도까지 가세하게 되었습니다. 인물을 보고 또 당의 정책을 보고 투표해야 하는 당위성이 지역주의로 인해 침해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은 성숙한 선거 문화가 지역주의의 심화로 후퇴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또 하나는 공천 갈등으로 당을 뛰쳐나와 급하게 당을 만들어 출마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위 "친박연대"라는 당명을 가지고 지역성과 보수성에 기대어 출마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친박(親朴)'은 친 박근혜를 일컫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계열의 사람들로 정치를 하다가 공천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당을 뛰쳐나와 급하게 만든 당입니다. 그런데 당명이 아주 전근대적입니다. 사람의 이름으로 당명을 정한 경우는 우리 나라뿐 아니라 외국에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대 정치사에서 3김(三金)이 장기간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는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만 3김이 퇴장하여 구습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합니다. 그것도 당사자(박근혜)는 참여하고 있지도 않은데 그 사람의 이름을 끌여붙여 당명을 정했다는 것은 3김의 폐해보다 더 심각한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한 가지 더 첨언하고 싶은 것은 저조한 투표율에 대한 것입니다. 전국 평균 투표율이 46 % 포인트라고 합니다. 투표에 절반 이상이 기권했다는 말입니다. 절반도 안 되는 사람들 중 또 일부(대개 50%를 넘지 않음)의 지지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결과는 대표성에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75% 이상의 유권자는 당선자에게 표를 주지 않은 것이 되니까 대표성에 문제가 없지 않지요?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게 된 것엔 많은 이유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1차로 정치하는 사람들의 잘못이 클 것입니다. 지역주의와 자연인의 이름까지 빌려 당명을 만들 정도의 저 수준의 정치 양태들이 국민들에게 좋지 않게 비춰진 게 사실일 것입니다. 또 국회의사당이 언제부턴가 싸움이 난무하는 곳으로 국민의 뇌리에 자리잡혀 있는 것도 정치 불신을 불렀왔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권자는 책임에서 자유롭습니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도가 그리고 풍토가 제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국민이 투표에 참여해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국민이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데 가볍게 처신할 간 큰 정치인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투표일을 휴일로 생각하는지 들로 산으로 놀러 가기에 바쁜 모습들이니, 이건 결코 성숙한 민주 시민의 모습은 아닙니다.

 

참여 없는 민주주의는 의사(疑似) 민주주의입니다. 그것은 소수의 전횡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군사 정권 시절엔 위정자들이 국민의 참여를 의도적으로 막았었지만 시민 의식의 신장으로 국민의 참여가 확대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지요.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나라(예를 들어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국민 투표율도 그렇게 높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나라와 우리가 같을 수 없습니다. 서구 선진국은 민주주의의 역사가 오래 되어 국민의 참여에 크게 영향 받지 않고도 제도적 장치가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궤도 이탈이 쉽지 않습니다.

 

4.9 국회의원 선거는 끝났습니다. 이번 선거를 거울 삼아 다음부터는 국민 각자가 나의 대리인을 뽑는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투표에 참여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지역의 국회의원으로는 오랜 행정 경험을 가진 분이 당선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여당에 소속된 신분이기는 하지만 지역의 여론을 중앙에 잘 전달하고 또 중앙의 문제를 지역으로 가져와서 잘 다듬어 중앙에 반영될 수 있도록 심부름꾼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구태와 구습을 따라가지 말고 정치 신인으로서의 참신성을 중앙에서 확산시켜 나가면서 윗물을 맑게 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2008.04.11 10:35 ⓒ 2008 OhmyNews
#4.9 총선 #지역주의 #투표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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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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