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석의 진보세력, 무엇을 할 것인가?

신자유주의에 장악당한 의회, 돌파구는 '운동'뿐

등록 2008.04.11 09:46수정 2008.04.1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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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영세 대표 등 민노당 지도부가 9일 오후 영등포당사에서 4개 방송의 출구조사 결과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천영세 대표 등 민노당 지도부가 9일 오후 영등포당사에서 4개 방송의 출구조사 결과발표를 지켜보고 있다.연합뉴스 김병만
천영세 대표 등 민노당 지도부가 9일 오후 영등포당사에서 4개 방송의 출구조사 결과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김병만

 

신자유주의 세력이 독점한 의회, 반신자유주의 의제 형성 어려울 듯

 

한나라당이 행정권력과 의회권력, 지방권력까지 천하통일을 했다고 분노할 이유는 없다. 이미 예측했던 결과다. 한나라당은 153석을 얻어 당초 "과반만 안겨달라"며 엄살을 떨었던 목표를 달성했지만 내심 아쉬워하고 있다. 그러나 친박연대(14석)와 자유선진당(18석), 친박 성향의 무소속 의원(11석 내외)까지 합치면 범보수진영은 개헌 저지선에 근접하는 의석을 확보했다.

 

한나라당 내부의 친박, 친이 간의 갈등이 이번 총선을 관통했듯이, 불안정한 과반의석을 획득한 이명박계열이 보수대연합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계열이 빠질 경우 123석 정도로 정국 주도권을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친박연대는 어떤 형태로든 한나라당 내부의 박근혜 계열과 공동보조를 맞출 것이며 자유선진당도 독자적인 원내교섭단체가 어렵기 때문에 무소속 영입이나 한나라당과의 연정 등 다양한 시도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구도는 200석 가까이 차지하는 신자유주의적 범보수세력이 의회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한 가운데, 통합민주당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이 이들에 대한 저항세력을 자임하는 구도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보여준다. 

 

구사일생한 통합민주당의 경우 오히려 상황은 나은 편이다. 통합민주당은 그들의 '전공'인 '저항'의 대변자로서의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에 있기 때문이다. 의회체계 내에서 갈등이 부각될수록 통합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정책기조에 반대하는 이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자임할 수 있다. 1997년부터 두 차례의 선거패배가 보수세력으로 하여금 시민사회를 조직할 수 있게 해줬듯이, 통합민주당으로서는 정권 박탈의 위로금을 받게 된 셈이다.

 

설령 공천파동의 갈등이 그대로 이어져 보수진영 내 새로운 분열이 표출되더라도 반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진보세력에게 유리할 것은 없다. 오히려 전통적 반북주의를 바탕으로 한 보수세력과 신자유주의적 보수세력의 갈등이 지배적 대립구도로 자리 잡게 되면 반신자유주의적 가치뿐만 아니라 민주·개혁적 의제도 완전히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이런 대립구도에서는 남북관계나 민주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갈등이 부각될 수 있을 뿐, 한국 정치·경제구조를 규정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흐름은 제도적 방식으로는 제어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저항을 주도하는 가운데 '한반도 운하'와 같은 초계급적 이슈만이 제기된다면, 반신자유주의 형성을 위한 의제 형성은 쉽지 않아 진다. 

 

돌파구는 대중이 직접참여로 이루어지는 운동정치

 

반신자유주의 운동세력은 이제 '운동'의 활성화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한때 진보세력 내부 논쟁의 중심을 이루었던 정당이냐 운동이냐의 논박은 이제 별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 운동정치냐 의회정치냐의 불필요한 논쟁보다 어떻게 운동정치를 정상화하고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인가로 논점이 이동되어야 한다. 

 

사회적 불만과 요구가 제도적 시스템으로 해결하기 어려워진 조건에서 반신자유주의 운동세력에게 부여된 선택지는 많지 않다. 대중운동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5석을 확보한 민주노동당의 활동방식도 '운동정당'적 성격의 강화일 수밖에 없다. 기존의 엘리트 중심의 전통적 정치행위와는 다른, 대중의 아래로부터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직접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치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보수언론은 한나라당의 과반의석 획득으로 87년 체제가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런 측면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집권하기 이전의 체제, 즉 97년 이전의 87년 체제로 회귀해버린 측면이 강하다. 억압적 국가권력과 저항적 시민사회라는 대립구도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세력의 의회독점이 자동적으로 시민사회의 진보적 힘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낙관론이다. 우리처럼 경제위기 이후 심화된 사회적 양극화를 경험한 여러 나라의 경우 급진적인 세력이 집권한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저소득층의 보수정당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더 강화되면서 운동 또한 소멸해버린 사례가 적지 않다.

 

제도정치 내에서 진보적 대안이 실현될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엘리트주의적 대리정치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안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대중은 정치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며, 대안적 정치권력 형성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보다 정치적 냉소주의의 포로가 된다. 

 

상층 중심의 논쟁에서 벗어나 대중실천으로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진보세력이 원외에서 집단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는 진보세력의 주체적 역량에 크게 의존한다. 현재 진보진영은 분열의 상처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잠시 봉합한 정도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진보신당이 원내진출에 실패함으로써 총선 이후 예고된 대중단체의 연쇄분열 사태는 지연될 수 있겠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곧 이어 진행될 민주노동당의 당직선거 국면에서 잠재된 갈등의 씨앗이 표출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재발할 수 있는 갈등을 새로운 동력으로 전환하는 방법은 상층 간부 중심의 논쟁에서 벗어나 뚜렷한 목표를 가진 대중실천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중실천을 통해 이미 합의된 정체성이라도 확인하면서 현재의 조건을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층 간부들 사이의 분열이 대중운동 자체를 분열시킨 사례는 우리 민중운동사에서 셀 수 없이 많다. 그나마 민주노동당이 내부 분열에도 불구하고 일반 당원들까지 완전히 반으로 쪼개지지 않은 것은 일반 당원들과 괴리된 상층중심의 논의 때문이었다는 웃지 못 할 역설적 평가도 가능하다.

 

만일 총선 이후 진보세력의 정치 방식 또한 과거 상층 중심의 논쟁구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운동 강화를 통한 진보적 헤게모니 형성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운동이 활성화될 조건이 무르익었다는 것이 자동적인 운동실천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진보는 신자유주의적 정치·경제적 경향을 가진 세력이 의회권력을 독점한 상황에서 운동정치의 활성화를 위한 과제를 안게 되었다. 전통적 운동영역의 활성화라는 측면 이외에 몇 가지만 더 살펴보자.

 

구체적인 지역 조직화와 2년 후 지방선거

 

18대 총선은 46%라는 역대 최저의 투표율을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이 자신의 삶과 괴리된 제도정치에 얼마나 염증을 내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우리 국민이 100명이라면 46명이 투표했다. 당선자의 평균 득표율이 40%가 조금 넘는다고 할 때 18~20명 정도 사람들의 선택만으로 의회권력이 창출됐다. 20%도 안 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지우지한 것이다. 

 

그러나 역대 최저의 투표율 때문에 지역에서 조직적 기반이 튼실한 보수정치세력의 승리가 가능했다고 핑계 삼는 것은 어떤 발전적 의미도 부여하지 못한다. 지역 조직을 장악한 보수정치를 탓할 것이 아니라 왜 진보세력은 지역을 제대로 조직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중앙정치에 국한된 운동이 아니라 지역을 구체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주민자치의 조직화 전망이 필요하다.

 

 지난 기간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 선거 투표율
지난 기간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 선거 투표율 새사연
지난 기간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 선거 투표율 ⓒ 새사연

 

진보세력은 아래로부터의 지역 조직화를 통해 지금부터 2년 후 지방선거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 그동안 진보정당은 지역에서의 주민조직화에 대한 별다른 활로를 찾지 못했다. 주민자치의 필요성만 공유했을 뿐 실제 제대로 지역을 조직한 사례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런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경향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투표율 속에서 조직표를 기반으로 한 보수정당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주민과 지역 조직화는 '정치세력화'를 꿈꾸는 진보세력에겐 당위적 과제가 아니라 사활적 문제다.

 

거주지와 근무지가 분리되어 있는 우리 현실에서 일상적인 지역 조직화 방안은 자영업자와 부녀회, 지역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지역에 존재하는 노동조합은 그동안 일상적 정치활동을 전개하며 관계를 맺어 왔지만 지역 여론을 움직이는 자영업자와 부녀회 등을 효과적으로 조직한 사례는 전무한 형편이다. 

 

선거 때만 되면 지역 현실을 벼락치기로 공부하고 다른 정당과 별 차별성 없는 정책 공약을 남발하는 식의 활동방식은 시급히 청산되어야 한다. 자기의 활동 공간인 지역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분석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전문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진보정당은 국가수준의 이슈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지역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높지 못했다.

 

또한, 지역의 연구를 통해 마련된 대안을 실현하는 방식도 주민을 관객으로 만든 채 무대 위에서 다른 정당과 경쟁하는 형태여서는 곤란하다. 다른 정당과 차별화된 진보적 대안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보수독점의 의회체계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다. 차별화된 대안을 주민에게 제대로 전달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당선 가능성에 대한 국민의 전략적 투표경향이나 정치 냉소주의, 촘촘하게 조직되어 있는 보수적 지역 네트워크를 이겨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주체가 '대리자로서의 정당'이 아닌 자기 자신임을 자각한다면 이런 장애는 의외로 쉽게 돌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선거처럼 지역 자영업자들에게 대형할인마트 영업시간 규제 공약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자영업자들이 스스로 영업시간 제한을 위한 운동을 펼칠 수 있도록 조직하는 방식이다.

 

주민 조직화가 전제될 때만이 총선과 대선에서도 진보세력의 필요성을 주민들에게 설득할 수 있다. 특히 2년 뒤 지방선거, 다시 2년 뒤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치일정은 아래로부터의 주민 조직화라는 정치운동의 지향과 부합한다. 각기 다른 지역 의제를 통해 주민이 주체로 서는 주민자치가 실현되고, 이것이 국가 수준의 문제의식과 결부될 때 진보세력의 든든한 지지기반이 형성될 수 있다.

 

내부 민주주의의 구현

 

주민조직화건 조직화된 세력의 연대건 최근 들어 핵심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내부 민주주의'의 문제다. 민주노동당의 분열로 진보의 고질적 병폐인 정파문제의 심각성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지만 내부 민주주의의 구현방안에 대한 별다른 대책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어떤 조직이라도 기층 성원을 바탕으로 한 대중투쟁 대신 상층 간부 중심의 협상과 논쟁만이 격렬해 진다면 상층에 의한 관료주의 확대와 정파활동 강화를 피할 수 없다. 기층 구성원 한 명을 설득하기보다 정파활동에 도움이 될 대의원 한 명을 확보하기 위해 더 노력하게 만드는 내부 구조는 일반 구성원들이 자기가 속한 조직의 활동에 점차 무관심해지도록 만드는 동시에 상층 권력 활동에 대한 냉소주의를 만연시킨다.  

 

일차적인 문제는 리더십의 부재다. 정파문제는 결코 정파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을 정파적 틀 속에 끼워 넣는 방식으로는 일반 구성원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기 어렵다.

 

좌파든 우파든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이 가장 큰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보는 한 내부민주주의는 정파 갈등에 희생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다. 더구나 적어도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스스로 특별하다고 자임했던 이들이 일반 구성원보다 별로 잘난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다. 대중의 열정은 이런 상황에 반복적으로 맞닥뜨리면서 냉소주의에 빠져 버렸다.

 

설령 지역에서 구체적 조직화에 성과가 있다 하더라도 내부민주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정치권력의 획득 문제와 연계되지는 못할 것이다. 당사자들이 특정 정치세력에 '이용된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민주주의의 핵심은 실질적인 조직운영의 결정권을 누구에게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다. 일반 구성원이 자기 문제를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제도적 경로를 보장하고 가장 큰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실험이 전개되어야 한다. 

 

진보가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18대 총선 결과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진보세력에게 새로운 활동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운동을 강화하는 형태며 아래로부터의 실질적인 조직화를 이뤄내는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18대 총선에서 진보정당이 17대 총선에 비해 몇 석이 줄었는가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진보세력의 활동방식이 가진 문제를 분명하게 확인시켜 줬다는 점에서 새로운 활동방식을 위한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다. 

 

이제 진보세력에게 의회활동 중심인가 대중실천 중심인가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진보세력에게는 지역과 대중을 더욱 조직하고 진보적 대안을 공유해 나가면서 2년 후 지방선거에서부터 차근차근 진보세력의 진정한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길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대안정책 웹사이트 이스트플랫폼(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글을 쓴 손우정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원입니다.

2008.04.11 09:46ⓒ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대안정책 웹사이트 이스트플랫폼(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글을 쓴 손우정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연구원입니다.
#18대 총선 #민주노동당 5석 #진보세력 #반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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