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8.04.13 12:13수정 2008.04.13 12:13
"내가 아주 쉬운 역사공부 하나 시켜 줄까?"
"그래 좋지, 말해봐?"
"자 그럼 잘 들어. 왕비를 중전이라고 하지, 왜 중전인지 알아?"
젊은 커플 중에서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농담 섞인 역사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지난 세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숱한 사연과 애환이 서려 있는 경복궁에도 봄이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봄꽃이 만발한 4월 12일 주말에 찾은 궁궐은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는 모습이었다. 내국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았다.
외국인들 중에는 특히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질문을 하는 등 호기심과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내국인들 중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모들과 시골에서 올라온 부모님을 모신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
가끔씩 친구들과 함께 찾은 사람들도 더러 보였는데 그들은 데이트 족들의 진한 애정표현을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었다. 어떤 커플은 남성이 벤치에 앉아 여자 친구를 자신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게 했다가 고궁지킴이로부터 지적을 받고 머쓱해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 젊은 커플은 궁궐 건물과 내부를 찬찬히 돌아보며 조선시대 역사공부를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대화가 재미있었다.
“자 보라고 이 강녕전이 바로 왕비의 처소잖아. 그런데 왕비를 중전이라고 불렀거든, 궁궐의 중간에 있어서 중전, 물론 앞 쪽에는 임금이이 정사를 돌보는 정전과 왕의 처소인 대전이 있지.”
“어, 정말 그러네.”
“그리고 후궁은 비빈들을 일컫는 호칭이잖아? 그들의 처소가 바로 중전보다 뒤쪽에 있기 때문이지. 그럼 다음 왕위를 이을 왕세자를 왜 동궁이라고 불렀겠어?
“처소가 동쪽에 있기 때문이잖아?”
“호호호 맞아 바로 그거야.”
정말 재미있는 역사공부였다. 다른 한쪽에서는 궁궐지킴이들이 학생들에게 조선의 역사와 궁궐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궁궐지킴이들의 안내를 받으며 배우는 역사공부는 사실 쉽고 재미가 있었다. 커플 여성도 궁궐지킴이의 설명을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건물 위 중앙에 하얀색으로 가로 놓인 저게 용마루라고 하거든, 그런데 그 밑으로 흘러내린 비슷한 모양 보이지. 저건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이번에는 남성이 여성친구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것도 그냥 용마루 아닌가?”
“내 그럴 줄 알았어. 용마루에서 바로 흘러내린 것은 내림마루야, 그리고 내림마루에서 추녀 끝까지 부분은 추녀마루고. 어때?”
“언제 그런 걸 배웠어, 놀랐는데.”
“하하하, 이건 상식이야, 상식, 그래도 이 정도는 돼야지”
앞쪽에서 걷는 이들 커플은 여간 재미있는 젊은이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궁궐지붕 처마마루에 얹혀 있는 잡상들이 주로 어떤 동물들인지, 또 그 숫자가 왜 건물에 따라 다른지도 흥미롭게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근정전 주변 회랑 옆에는 어린이들 20여명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고궁관광도 요즘은 옛날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옛날에는 그저 끼리끼리 둘러보는 관광이었다. 그러나 이날 경복궁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10여명 이상의 단체관람객들은 궁궐지킴이들의 안내와 설명을 들으며 실속 있는 관광을 하는 모습이었다.
궁궐 깊숙이 들어서자 건물의 처마와 처마 사이로 바라보는 풍경이며, 담장과 담장 사이로 바라보는 풍경도 운치가 넘쳐난다. 내부에서 밖으로 나오자 넓은 정원과 내부 화단에 피어난 아름다운 봄꽃들이 궁궐가득 봄 향기를 피우고 있었다.
청와대가 가까운 뒤쪽 끝까지 올라간 곳에 새로 지은 듯한 건물들이 나타난다. 고종임금이 대원군의 정치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세운 건청궁이었다. 이 건물들은 단청이 되지 않은 산뜻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건청궁이 바로 을미사면 당시 명성황후 민비가 일제가 보내 무뢰한들에게 시해를 당한 가슴쓰린 역사의 현장이었다.
조선 오백년의 역사와 더불어 격변기의 영광과 좌절의 역사를 간직한 경복궁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이 궁궐 가득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4.13 12:13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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