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안 통해도 결국 뜻은 통한다

[타이완 자전거 일주 ②] 퉁시아오에서 타이난까지

등록 2008.04.14 09:07수정 2008.04.1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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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도 흐리고 바람이 매우 심하였다. 서해안으로 좀 더 가까이 여행하기 위하여 1번 도로에서 61번 쾌속도로를 탔다. 타이완의 도로는 우리나라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고속공로(高速公路), 자동차 전용도로 같은 쾌속도로(快速道路), 국도 같은 성도(省道) 그리고 지방도 같은 현도(縣道)가 있다. 고속공로는 자전거 절대 출입금지이나 쾌속도로는 부분적으로 금지되어 있어 입구에서 출입이 가능한지 반드시 팻말을 확인해야 한다.

지금은 좀 한적한 도시라지만 100년 전 청나라 시대에 타이완 3대 무역항으로 손꼽히던 역사적인 도시 루강(鹿港)은 설날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매우 활발해 보였다. 타이완에서 가장 오래된 마쭈(媽祖)의 상이 있는 톈허우궁(天后宮) 주변에는 복을 빌러온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마쭈는 어부들의 수호신으로 바다의 여신, 또는 천국의 황후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AD960년에 태어난 마쭈는 어릴 때 꿈을 꾸면서 먼 바다에서 침몰된 배 안의 오빠들을 구했고, 28세에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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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허우궁의 내부 ⓒ 이규봉


톈허우궁 앞 도로는 폐쇄되어 임시 노점상들로 가득 찼다. 마치 중국 본토 대도시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자전거를 끌고 인파에 밀려서 나가다 보니 마침 용머리를 휘두르며 한 떼의 가장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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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축제에 빠지지 않는 용 ⓒ 이규봉


톈허우궁을 겨우 빠져 나와 낭만이 가득 풍기는 좁고 오래된 골목길이라는 주취샹(九曲巷)을 찾아 중산루(中山路)를 따라갔다. 민쭈루(民族路)와 만나는 시장 문턱 꽃가게 바로 옆에 두 사람이 비켜 갈 정도로 좁은 골목을 찾았다. 바닥에는 빨간 벽돌이 깔려 있고 매우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을 자전거를 끌고 옛 거리의 정취를 마음껏 맛보며 돌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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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벽돌의 옛 거리 주취샹 ⓒ 이규봉


루강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지체하였고 날씨도 좋지 않아 계획된 곳까지 갈 수 없었다. 여행책자를 보니 왕공(王功)이라는 조그만 마을에 홈스테이가 있었다. 왕공으로 들어서니 홈스테이는 마을에서도 해안가 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었다. 일부러 그곳까지 찾아갔으나 성수기가 아니어서인지 휴업 중이었다. 다시 마을로 되돌아가 숙박할 곳을 찾았으나 빈방이 없었다. 게다가 바람은 몹시 불고 날은 어두워져 갔다.

한 아주머니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도와주려고 무던 애를 썼다. 근처에 있는 파출소에 갔으나 말이 안 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조금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어린 딸에게 전화를 연결해 주어 겨우 방을 구한다는 말을 경찰에게 전할 수 있었다. 경찰은 어디다 전화를 하고는 약초물에 삶아 시커멓게 얼룩진 계란을 꺼내어 먹으라며 준다.


잠시 후 오토바이를 타고 온 한 아주머니를 뒤 따라가니 마치 우리나라의 넓은 마당이 있는 아주 깨끗한 여관 같은 집으로 들어간다. 말은 안 통하였지만 결국 뜻은 통하였다. 방에 난방 장치는 없어 추웠지만 한 시름 덜 수 있었다. 밤새도록 세찬 바람소리와 함께 폭죽 터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좀 추웠던지 다음 날 일찍 일어났다. 2월 중 타이완의 평균 기온은 14도에서 20도 정도라 고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추운 것 같다. 아침이라며 햄버거와 밀크티를 봉지에 담아준다. 타이완 대부분의 호텔이나 홈스테이는 숙박과 아침을 제공하는 B&B(Bed and Breakfast)이다. 처음 이틀은 현지식으로 아침을 먹다가 햄버거를 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타이완의 많은 사람들이 아침을 이런 식으로 사 먹는다는 것을 알고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17번 도로를 타고 내려갔다. 서부의 마을에는 대체로 도로 양쪽에 있는 집들의 모습이 거의 비슷하다. 직육면체의 멋대가리 없는 이층집이 삐쭉하니 도로 양쪽에 이어져 있는데 참 보기 싫다. 집은 하나같이 시멘트 색 그대로 침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폐가도 눈에 많이 뜨이는 것이 경제적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마을만 들어가면 어찌나 개들이 짖어대고 따라오는지 귀찮을 지경이다. 목줄을 건 개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지는 않았지만 짖으면서 쫒아오면 무작정 내빼는 수밖에 없다.

오늘은 우리를 힘들게 한 그 바람 덕을 보았다.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온 탓에 바람을 등지고 가니 힘들이지 않고 빨리 갈 수 있었다. 비록 예정된 곳보다 더 뒤에서 출발했지만 바람 덕분에 오늘 계획된 타이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의 주행거리는 135km였다.

타이난은 타이완 4대 도시 중 하나로 1600년 경 네덜란드인이 점거하여 행정의 중심지로 삼았던 곳이다. 명나라 정성공이 네덜란드인을 내쫓고 행정최고 기관을 둔 이후로 타이완의 행정중심지로 발전해왔다. 정성공은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에 비견할 만한 인물로 사당을 지어놓고 존경받고 있었다.

타이난 같은 도시의 사거리에는 대체로 좌회전 신호가 없다. 오직 직진만 있고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사람들은 사거리 어느 곳이든 건너간다. 거의 모든 도로 오른쪽에는 스쿠터를 위한 도로가 분리되어 있다. 스쿠터가 좌회전을 하려면 직진 신호에서 도로 중앙에 있는 대기구역에서 기다린 후, 다음 번 직진 신호가 올 때 가면 된다. 그러나 차는 눈치껏 비보호 좌회전을 한다. 비록 자전거를 위한 길은 아니지만 스쿠터 도로는 자전거 전용도로만큼 안전하게 도로를 달릴 수 있는 길이다.

도로 양측에 있는 상가 앞의 인도는 마치 상가의 소유인 것 같이 느껴진다. 상점마다 그 앞의 인도에 깔린 블록의 모양이 다르고 심지어 높낮이도 다르다. 아예 물건을 진열해 놓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도로와 인도를 가리지 않고 다닌다.

설날이 아직 지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곳곳에 있는 궁(宮)에서는 향을 피우고 부적을 태우며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띤다. 공자 신위를 모시고 있는 쿵쯔먀오(孔子廟)에서는 예식도 올리고 식당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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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무사귀환을 바라며 쓴 부적(오른쪽) ⓒ 이규봉


#루강 #주취샹 #타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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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한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역사가 담긴 자전거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 <체게바를 따라 무작정 쿠바횡단>, <장준하 구국장정6천리 따라 자전거기행> 출간.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의장, 전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장, 현 배재대 명예교수, 피리와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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