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총선 서울 노원병 지역에 출마한 홍정욱 한나라당 후보가 9일 저녁 자신의 선거사무실에서 당선을 확인한 뒤 지지자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학
언론에 두 번째 뒤통수를 맞다
어쨌거나 그런 첨예한 각축을 염두에 둔 듯 <KBS 스페셜>은 총선 다큐를 기획하고 있다며 상계동 거주 주민인 내게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특정 정당 당원으로 활동하지 않는 서민 노동자를 대상으로 달동네 거주자, 특히 노원 병 사람의 후보 지지 성향을 알아보려는 의도라고 하기에 인터뷰를 허락했다.
잠깐 스치는 길거리 인터뷰는 아니어서, 3월 21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가장 첨예한 쟁점인 '뉴타운'과 '교육 문제'에 대해 상계동에 거주하는 서민중 한명인 나의 의견을 인터뷰하는 형식이었고 총선이 끝나는 주일인 13일(일) 밤 8시에 방영된다고 하였다.
잡급 노동자인 나는 새벽 무가지 배포 도우미와 노동부 사회적 일자리인 방과 후 방문학습
도우미를 하는 생계형 가장이다. 지하철 역 근처의 신문 아르바이트 광경, 집안 모습, 저소득층 아이를 가르치는 현장까지 촬영해야 한다기에 학생 집에 미리 양해를 구했고 비교적 자세하게 인터뷰와 촬영이 병행되었다. 하지만 내 촬영분은 결국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KBS는 사전 후보자들 지지 조사를 통해 진보신당 공동대표인 노회찬씨 당선을 염두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것 같다. '어떤 패배-노회찬과 상계동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1시간동안 방영된 방송에서는 노회찬의 패배 원인이 집값이 올라가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의중을 읽어내지 못해서라는 쪽에 치중되다 보니 뉴타운의 허구성, 삶터에서 밀려날 걱정을 하는 사람의 시각은 다루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내게 또 하나의 아쉬움을 남긴, 총선이 내게 날린 두번째 직격탄이다.
내가 노회찬과 진보신당을 지지했던 이유나는 사실 정치에 그다지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내가 노회찬을 지지했던 이유는 시민기자로 취재 활동을 하며 장애인 행사, 호주제 폐지 등 국민의 민의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노회찬 의원의 모습을 늘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총선에 한나라당 후보들이 내세운 두 가지 공약의 허구성을 인식하고 있는 나로서는 노회찬씨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에서는 주거와 교육 낙후지역인 상계동에 두 가지 공약을 내세웠다.
첫 번째는 '뉴타운 정책을 통해 집값을 강남 수준으로 높여주겠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상계동을 최고의 교육 도시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두 정책은 출발점에서부터 나와 같은 서민이 대부분인 달동네 주민을 위한 것은 아니다.
'주택정책'은 집값이 약한 강북의 집값을 강남 수준으로 올려 투기와 빈부 차이를 부추기는 그런 정책이 아니라 집을 철저한 주거 개념으로 바꾸려는 것을 기본으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주택이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의 공약이 실천에 옮겨진다고 해도 수 십년 살아온 양지마을 사람들이나 당고개 주변의 8평짜리 무허가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 몇 푼을 손에 쥔 채 더 열악한 주거 지역을 찾아 외곽지대로 밀려 나가게 될 것이다. 나처럼 15평 연립에 사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이고.
'교육 정책'은 또 어떤가? 사실 상계동만큼 개발이 가져 온 양극화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다. 당고개역에서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와 무허가 판자촌이 공존하고 강북의 강남이라는 교육열을 자랑하는 중계동을 기점으로 학교 교육 외의 시간에는 고아처럼 그대로 방치되는 아이들과, 아직도 고아원이 남아있는 동네가 바로 상계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내세운 교육 도시화라는 것이 특목고, 자율형 고등학교, 외국어 고등학교 같은 귀족학교를 상계동에 더 많이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던가? 그 공약 역시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달동네의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두 정책 모두 낙후된 노원을 강남의 아류로 만들어 있는 사람들의 입맛을 맞춰주겠다는 이야기니, 모두를 위해 삶의 질과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뉴타운 지역으로 지정된 후 공시지가가 올랐다는 이유로 의료보험 수가를 비롯, 세금이 올랐던 것을 사람들은 잊었는가 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젊고 능력과 패기가 있으며 자본의 논리를 알고 그 자본의 수혜를 넉넉히 받은 홍정욱 개인이 지닌 행운이나 그가 지닌 능력을 폄훼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러나 사회화되지 않은 개인의 특출한 능력, 노동자와 평등한 방법으로 파이를 나눌 생각이 전혀 없는 자본가적 사고, 사회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의 거대 자본은 서민인 내겐 그림에 떡이 될 수밖에 없음을 난 경험상 알고 있다. 가난을 겪어 보지 않은 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도 굶주려보지 않은 이는 10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으로 하루하루 삶을 이어가는 이들의 고통을 절대 알 수 없다.
평범한 서민이었던 나만해도 가장 아래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기 전까지도 내가 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구성하는 노동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정체성과 노동자의 배고픔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노동자의 배고픔을 알아 '80'에 속한 노동자와 함께 세상을 바꿔나갈 여지가 보이는 노회찬을 지지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