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15일부터 시작되는 미국 방문의 최우선 과제로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비준 문제를 상정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오는 18∼19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한·미FTA의 연내 비준의지를 다짐하고, 이에 대한 긴밀한 협력체제 구축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 대통령은 13일 방미·방일 관련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5월 임시국회의 소집을 거듭 요구했고, 특히 첫 번째 시급히 다룰 현안과제로 한·미FTA 비준을 지목했다.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국내 지지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심지어 경제계에서는 이번 방미로 한·미FTA 비준의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방미로 한·미FTA 비준 문제가 진전될 것이라는 데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한·미FTA에 앞서 처리토록 돼 있는 미·콜롬비아FTA 이행법안(비준동의안)조차 야당인 민주당의 반대로 상정조차 못한 채 미 정국 갈등의 핵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등 유력한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FTA 자체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경쟁이라도 하듯 높이고 있다. 한·미FTA 비준 문제의 핵심은 한국 내 여론이나 국회 처리에 앞서 미국 내부에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들끼리 머리를 맞대봐야 뽀족한 수가 나올 리 없다. 양국에 걸쳐 의회와 행정부, 여야, 계층별 이해관계와 계산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있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에서 처리해야"... 책임은 누가 지나?
이 대통령은 휴일인 13일 오전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가 5월 중에 임시국회를 열어주기를 요청한다"며 "이미 여야 간에 처리하기로 합의된 법안은 18대 국회의 개원까지 기다릴 것 없이 17대 국회 임기 중에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5월 임시국회에서) 한·미FTA 비준안을 처리해서 미국 의회로 하여금 서둘러 FTA 비준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말해 17대 국회에서 한·미 FTA를 비준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는 한·미FTA에 대한 국내 반대여론을 의식해 "정부는 농민들에 대한 후속대책도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임채정 국회의장은 "한·미FTA 비준안의 경우 각 정당과 의원별로 의견이 제각각이고 국론도 아직 어느 한 방향으로 정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국의 정치 상황도 감안해야하는 만큼 5월 임시국회에서 성급히 처리할 사안은 아니다"라는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친박연대 소속 이규택 의원은 "막판에 처리를 해야 할 정도로 급박한 사안이었으면 3, 4월에 해야지 왜 이제 와서 하려고 하느냐"며 "여당이고 야당이고 한·미FTA 비준에 대해 반대 의견이 많고, 서비스 분야나 농민과 관련해 나온 대책도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나 청와대 입장은 확고했다. 14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한·미 FTA 비준 처리가 지연되면 상황이 어려워진다"며 한·미FTA 비준을 해야 된다 말아야 된다는 논란은 이미 끝났는데, 지금 또 무슨 논의를 할 것이 있느냐"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한·미FTA 비준을 처리하지 않기로 했다면 모르겠지만 (처리하기로 합의했다면) 미국 의회의 반대 기류가 강하기 때문에 우리가 선제적으로 하는 게 당연하다"며 "무슨 얘기만 나오면 정파적 이해로 접근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된 한·미FTA 비준동의안은 대선으로 인해 지난 2월에서야 소관 상임위인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상정됐다. 그러나 18대 총선을 의식한 의원들의 소극적 태도에 밀려 2월 임시국회 통과가 무산된 바 있다.
청와대는 17대 국회의 법적 임기인 5월 이내에 처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총선 이후 잔여임기중 국회가 열린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희박하다. 특히 한·미FTA 비준안의 경우 반대 여론이 높고, 논란의 소지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책임정치 차원에서 옳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낙선자가 절반이 넘는 17대 국회에서 비준안을 처리한다면 표결 이후 책임은 누가 지느냐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7대 국회에서 한·미FTA 비준안 처리를 마무리지어 달라고 하는 것은 '책임 떠넘기기'로 비쳐질 수도 있다. 18대 총선을 통해 다수당이 됐기 때문에 정부여당이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6월 개원국회에서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데도 굳이 민주당이 다수인 17대 국회에서 처리를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인상을 주게 된다.
대한민국 국회가 하면 미국 의회도 한다?
대한민국 국회가 한·미FTA 비준안을 처리하면 미국 의회도 한·미FTA 비준에 나설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선제적으로 처리하는 게 당연하다"는 청와대의 시각도 너무 '순진해' 보인다.
미국의 대선 일정상 한·미FTA 비준안을 연내 통과시키려면 의회가 휴회에 들어가는 9월 26일 이전까지 처리가 돼야 한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7일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의 동의 없이 미-콜롬비아FTA의 비준을 위한 이행법안 제출을 강행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선거의 해에 비준을 더이상 지연시키는 것은 표결도 하지 못한 채 의회가 폐회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과 같은 맥락인 셈이다.
그러나 의회 지도부와 합의하지 않고 이행법안을 의회에 넘긴 것은 전례가 없는 일로, 민주당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미 하원은 지난 10일 미·콜롬비아FTA 비준 동의안의 신속 처리를 거부했다. 이에 따라 미·콜롬비아FTA 비준은 미국 대선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고, 부시 행정부의 한·미FTA 비준 전략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하원의) 이번 조치로 미국 정부는 한국 및 파나마와의 FTA 합의안에 대해서도 의회 제출을 재고(think twice)'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난항을 겪고 있는 쇠고기 협상 또한 한·미FTA 비준안 처리 전망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민주당이 "쇠고기 수입 없이 FTA 없다"며 한·미FTA 비준안 처리를 쇠고기 협상과 연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8~19일로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간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FTA 비준안에 대한 논의가 어떤 식으로든 진전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회만 다그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13일 기자회견에서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방문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통령의 '착각'이 아니라면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얼마큼의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2008.04.14 18:00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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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착각'... FTA 문제, 국회 다그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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