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의 이명박식 실용외교 죽이기?

이명박 구하려다가 망신준 <중앙일보>, 의도가 뭔가

등록 2008.04.15 08:28수정 2008.04.1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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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의 '대북 실용외교' 딜레마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실용외교'가 지지자들로부터 명분을 얻으려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이 '일방적인 대북 퍼주기'였다는 가설을 입증시켜야 한다. 전통적으로 친미 성향이 짙은 한나라당의 성향을 감안할 때, 햇볕정책이 '반미 정책'이었으며 '한미 관계'의 삐걱거림마저도 감행했다는 가설도 입증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 가설을 입증하려 할수록 이명박 정부는 딜레마에 빠진다는 사실을 깨달아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직접 '통미봉남'이라는 북한의 전통적인 대남 강경외교전략의 이름을 언급하며 "한미공조로써 대처하겠다"고 발언한 것 자체가, 그 딜레마를 의식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꼬인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시 한번 얽힐 뿐이다. 이명박 정부의 '한미공조 강화'가 북한의 '통미봉남'을 제압하려면, 미국 정부가 북한을 향해 강경노선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조건이 남는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도 선거로 선출되는 정치인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미국 유권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윈-윈 작전'의 실패 등, 외교정책의 오류도 부시 행정부의 지지율 곤두박질에 영향을 미쳤음을 기억하라. 그 이후부터, 부시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한국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립서비스'는 베풀고 있지만, 이명박 정권에게 '아프간 재파병'을 요구하면서, 어찌 됐든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는 지속하려 하고 있다. 이래서야 어디 '통미봉남' 전략을 무마시킬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으로부터는 '북핵 포기' 그 자체에 대한 전략이 부재됐다는 점으로부터 비롯되는 허를 지속적으로 찔리고 있으며, 미국은 한국을 향해 '아프간 재파병'과 같은 속내는 드러내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가 원하는 '대북 강경 기조'를 들어줄 리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이명박 정권이, 미국 유권자들보다 소중한 것은 당연히 아닐테니까.

 

<중앙>의 '대북 실용외교' 구하기 작전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 실용외교'가 지지자들로부터 명분을 얻으려면, "햇볕정책은 대북 퍼주기 정책이었다"는 가설과, "좌파 정권은 미국과의 대화와 공조를 무시해가면서 북한에 퍼주기를 감행했다"는 가설을 입증시켜야 한다.

 

북한의 지속적인 외곽때리기와, 어찌됐든 전진하는 미국과 북한의 대화 분위기 속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실용외교'는 당최 체면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중앙일보>가 흥미로운 기사를 특종보도했다. <중앙일보> 14일자 기사 <"미국, 한·미 합의했다던 2006 대북 구상 명시적으로 동의한 적 없다">를 참고해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2006년 9월 정상회담을 한 직후 한국 정부가 한·미 간에 합의됐다고 밝힌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common and broad approach)에 미국은 당시 명시적으로 동의한 바 없다고 빅터 차 전 백악관 아시아 담당 보좌관이 밝혔다.

정상회담 후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제안했던 이 방안을 놓고 한·미 간 협상 과정에 참여했던 차 전 보좌관은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한국의 제안을 경청하고(listen), 고려했지만(take into account) 명시적으로 동의한 바는 없다(no explicit agree)"고 말했다. (후략)"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걸 알려면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은, 북한의 미사일 실험 발사 후 북한을 6자회담의 틀로 끌어들이기 위한 '일괄타결식 협상방안'이며, 이속에는 마카오 BDA(Banco Delata Asia, 방코 델타 아시아)에 있는 북한 계좌 동결에 대한 조건부 해제, 북핵 위기 해소와 대북 에너지 제공, 북미 수교, 그리고 9·19 공동성명 이행안의 동시·일괄 타결이 포함돼 있다.

 

<중앙일보>가 보도한 미 정부 관계자의 핵심은 그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에 대해, 한국은 한미 양국이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미국은 '명시적으로 동의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이 마음대로 '동의하지 않은 사항'을 합의로써 발표했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중앙일보>는 '빅터 차'라는 전직 백악관 아시아 담당 보좌관의 증언을 통해 "한미공조를 통해 구성됐다는 노무현 정권의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은, 사실은 미국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한미공조'에 명분을 주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명박식 실용 외교 구하기' 차원에서 구성된 기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왜곡'까지 가하나

 

그런데, 여기서 <중앙일보>가 게재한 '빅터 차'의 증언의 신빙성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해봐야 할 자료들이 있다.

 

먼저 봐야 할 것은 미 백악관 홈페이지에 게재된,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관한 기자회견(http://www.whitehouse.gov/news/releases/2006/09/20060914-5.html )이다. 여기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PRESIDENT ROH: (As translated.) As for the question about the common and broad approach being talked about between our two countries for the re-start of the six-party talks, I must tell you that we are at the working level of consulting very closely on this issue, but we have not yet reached a conclusion and this issue is very complex, so I would be hesitant and it would be difficult for me to answer the question at the moment.

(우리 두 나라 사이에서 6자 회담 재개를 위해 논의되는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에 대해, 우리가 이 이슈에 대해 바짝 접근하여 연구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아주 복잡한 이 사안에 대한 결론에 도달하진 못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그런 식으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이게 무슨 '합의'인가. 설마, 백악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인터뷰 구문을 '조작'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문제의 송민순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은 어떻게 인터뷰했을까?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복잡하고, 진행중인 상황이기 때문에 세부적인 것을 말할 수 없다. 전반적인 모양을 말하면 이 회담의 재개와 작년 9월 19일 6자회담 공동성명의 진전을 위해, 이 회담에 참석하는 각측이 취해야 하고 또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 그리고 틀을 어떻게 짤 것인가 하는 데 대한 협의와 작업이 진행중이다. 내주 중 한·미 6자회담 수석대표 간에 좀 더 세부적인 협의를 거쳐서 이 문제를 완성해 나가는 협의 과정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공동의 포괄적인 조치라는 게 북한을 회담에 끌어내기 위한 조치인가, 아니면 북한이 회담에 나오고 난 다음에 북한이 누릴 수 있는 것에 대한 것인가.

'두 가지 다 포함되는 것이다. 회담의 재개와 그 다음에 재개됐을 때 작년 9월 19일 공동성명의 이행 방안을 진전시키기 위한 두 가지의 목표를 함께 담고 있다.'"

 

"협의와 작업이 진행중"이라고 했지, '합의'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인터뷰의 출처가 어디냐고? 같은 보수성향의 신문 <문화일보> 2006년 9월 15일자 기사 <한·미 정상회담 / 송민순 안보실장 문답 "對北제재 논의도 된적 없다">에 게재된 인터뷰다.

 

도대체 의도가 뭘까? 이 질문은 <중앙일보>에도 던질 수 있는 것이며, '빅터 차'가 정말로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빅터 차'에게도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해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이런 사안에 대해 왜 무리를 둔 것일까?

 

빅터 차, 오히려 '이명박 정부' 망신줬다

 

<중앙일보>의 해당 기사를 잘 뜯어보면, 오히려 이명박 정부를 망신주고 있다. <중앙일보> 해당 기사에서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할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다.

 

"차 전 보좌관은 '한국은 그럼에도 정상회담 직후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에 양국이 동의했다고 발표했지만 미국은 이를 공개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았다'며 '그 이유는 한국과 좋은 동맹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고, 또 다른 이유는 그걸 공개적으로 부인할 경우 더 많은 논쟁이 야기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좋은 동맹관계 유지'를 바란 것은 오히려 미국이었으며, 그래서 '동의'라는 표현으로 앞서나간 노무현 정부임에도 미국은 공개적으로 부인할 수 없었으며 그 파장이 더 크게 야기될 것이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중앙일보>는 오히려 '노무현 정부의 대미 외교'를 미화시켜버린 것이다. <중앙일보>가 게재한 '빅터 차'의 증언이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떠나, "노무현 정권은 부시 행정부의 현실을 파악해 그것을 역으로 이용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반면에,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게는 허를 찔리고 있고, 미국에게는 한동안 잠잠했던 파병 문제와 쇠고기 수입 개방에 대한 목소리를 요구당하고 있다. 이게 '실용외교'인가? 오히려, 미국의 현실을 이용해 미국이 '좋은 동맹관계 유지'를 위해 아무 소리도 못할 이야기를 던졌다고 증언해버린 <중앙일보>, 과연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실용외교, 하려면 제대로 하라

 

조선의 역사를 보라. 무턱대고 친명사대정책을 표방하던 조선 16대 임금 인조와 서인 정권이 맞이한 결말은 '병자호란'이었다. 국제 정세의 혼란과 민감한 외교적 문제가 충돌하는 시기에는, 넓은 안목에서 대국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는 바둑이나 장기도 안해본 사람들만 모였을까? 그렇지는 않다. 바둑이나 장기에서도 넓은 안목에서 바라보는 대국을 눈여겨봐야 하는데, 하물며 외교전에서는 어떨까?

 

'실용외교'라는 표현 자체에는 찬성한다. 모름지기 외교란 '실용적'이어야 한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는 실용적이지 않다는 점에 있다. '아프간 재파병 요구'와 '쇠고기 수입 개방 압력'이 실용의 결과물로 눈에 들어오고 있다. 이게 정말 '실용'인가? '실용' 좋아하는 이명박 정부, 실용의 사전적 의미를 돌아보도록 하라.

 

"실제로 씀. 또는 실질적인 쓸모."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4.15 08:28ⓒ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북핵 #실용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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