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보건정책, 무엇보다 보건교육이 중심이 돼야

건강 없이 교육 없고, 교육 없이 건강 없다

등록 2008.04.17 11:16수정 2008.04.1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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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을 기점으로 학교 보건 현장에는 크고 작은 이슈가 많았다. 사상 최대의 식중독 사건이 일어났고, 유행성 눈병 및 결핵 창궐 등 전염병 문제가 대두했다. 또 학생 신체검사 제도가 학생 건강검사 제도로 바뀌어 초중고 3년에 1회씩 병원 검진을 받도록 개선되었으며, 아토피 증가로 실내 공기질 개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학교 환경관리 기준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각종 건강 증진 대책을 세우면서도 관련 보건교육을 어떻게 할지는 제외해 문제가 있다.

 

학생 건강검사의 경우, 미국 등 선진국처럼, 사전 보건교육-병원검진-사후 보건교육의,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건강검사가 실시될 수 있어야 하나, 보건교육 시간이 확보되지 않아,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검진만 받고, 그 결과가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지 배울 기회가 없는 실정이다.

 

의료인과의 대화법, 혈압, 콜레스테롤, 비만, 체질량 지수 등에 대해 배우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학생 및 청소년이 단순히 의료인의 진료 객체로서 수동적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검사라는 훌륭한 체험 학습의 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건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이 배제되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료소비자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마저 놓치고 있다. 해마다 연간 600억 이상 소요된다는 학생 건강검사가 단순히 병원의 주머니만 채우는 검진으로만 끝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현장에서는 일생에서 가장 건강한 아동 청소년 시기에 현재와 같은 성인형 건강검사를 무조건 실시하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많다. 

 

실내 공기 질 개선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석면, 포름알데히드 등이 건강에 미치는 해악에 대하여 제대로 교육하지 못해, 실내공기질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교육부는 관련 보건교육 시간을 확보하고, 어떻게 학생들을 교육할 것인지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학교 단위에서 환경위생관리자라고 불리는 담당자를 지정해, 학교 시설을 관리하라며 학교보건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였다. 

 

지금껏 학교에서 시설관리자가 관리해 온 시설관리를 환경위생관리라는 단어로 포장하고, 시설관리자를 환경위생관리자로 명칭을 변경하고 나니, 뭔가 대단한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오도되고 있다.

 

학교환경위생을 위하여 새로운 담당자를 지정하는 것처럼 법적으로 바꾸고 나자, 이를 새로이 관리 감독할 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 속에 각 시도 교육청에는 보건행정직이 증원되었다. 교육부가 새학교 증후군과 아토피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학교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교육부(청)가 보건행정직 증원의 몸집 부풀리기를 시도하고 있다며  반대했던 교육시민단체, 언론 등의 주장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러다보니 학교 현장은, 기존 시설관리자가 있는데도, 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환경위생관리, 즉 지금껏 시설관리자가 담당해온 시설관리를 교사가 담당해야 한다며, 아토피 등 환경성 질환에 대하여 교육해야 할 교사를, 공기질 측정 및 시설 관리를 담당하는 환경위생관리자로 지정하고 있다.

 

교사가 교육 대신 시설관리자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교원 및 교육의 전문성과 자주성은, 교육부가 주도한 시행규칙 앞에서 단숨에 훼손되고 있다. 법치 행정이 아니라, 관치 행정으로 전도되어 버린 것이다. 

 

식중독, 유행성 눈병, 결핵 등도 해마다 확산, 증폭되고 있으나, 보건교육 강화란 지침만 되풀이될 뿐 구체적인 보건교육 전략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에서, 정작 학교에서 보건교육을 책임져야할 보건교사는 시설관리 행정 업무로 내몰리고, 보건교육은 유령처럼 공문에만 명기되는 기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예방활동이 가장 강조되는 학령기 보건 사업 및 정책 절정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보건교육이 우선되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국민건강증진법, 지역보건법 등 건강증진관련법에서는 보건교육을 건강증진 방안 중 최우선 전략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전 인구의 1/4이 생활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보건교육권에 대한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미흡했다. 다행히, 지난해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의원 전원이 보건교과 설치 학교보건법 개정에 찬성하면서,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 학교 보건교육의 활성화에 불씨가 지펴졌다.

 

그 어느 때보다 사회 각 분야에서 혁신이 강조되면서, 지금껏 섬으로 고립되어 있던 각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창조적 발상이 쉬지 않고 샘솟고 있으나, 불행히도 학교보건 현장은 50여 년의 역사 동안 여전히 전염병 창궐기의 학교보건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는 듯하다. 정책 개발에 있어서 보건교육이 갖는 폭발적인 잠재적 에너지가 사장되지 않도록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발상의 전환과 실천력이 필요한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 칼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4.17 11:16ⓒ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 칼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보건교육 #보건교과 #학교보건 #학생건강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교육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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