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평화마을 제주 강정리를 갈라놓다

[제주도, 평화의 섬에서 배우다 ①] 노란 깃발 대 태극기로 갈라진 강정마을의 눈물

등록 2008.04.20 10:31수정 2008.04.2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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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각 지역에서 역사왜곡이 여전히 진행되는 가운데 평화를 지향하는 공통된 역사인식을 위해 한일시민이 함께 걸으며 배우고 느끼는 평화순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4월에도 오키나와-제주로 이어졌다. 제주-오키나와는 한일 양국에서 '평화의 섬'이라 불리지만 화려한 관광지로 개발되어 전쟁과 폭력의 상처는 아직도 소외당하고 있는 땅이다. 이번 답사는 외부에서 강요된 해군기지 건설로 인하여 마을 공동체가 찢겨져 버린 강정마을, 태평양 전쟁 말기 군사요새화되었던 전운이 감도는 역사 현장, 냉전의 희생양이 되어 쓰러져갔던 4·3의 아픈 땅을 더듬어가는 여정으로 진행되었다. 세 편의 글로 나누어 그 여정을 함께 들여다 보려 한다. -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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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구름 너머로 한라산의 신비로운 자태가 드러나고 있다. ⓒ 평화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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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 평화시민연대


멀리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안개 구름 뒤로 한라산이 신비롭게 자태를 드러내고, 바다의 깊은 푸름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제주도 남부 서귀포 해안가 작은 마을 강정. '물 강(江), 물 정(汀)'자를 써서 '강정'이라 이름 붙여진 이 마을은 물이 귀한 제주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용천수가 마을 곳곳에 넘쳐 흘러 서귀포 시민의 80%가 이 물을 식수로 마시고 있다고 한다.

또 유네스코가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선정할 만큼 국내 천연기념물의 70%가 이곳에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힘을 가진 자들은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가만두지 않는 것일까. 지금 강정마을은 4·3과 한국전쟁 이래 제주도의 가장 아픈 곳이다. 강정마을을 들여다보면 제주도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보인다고 할 만큼 첨예한 갈등이 수마처럼 이곳을 할퀴고 지나갔고, 그 상처와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400년 평화롭던 마을, 큰 전쟁에 휩싸여

강정마을은 주민의 대다수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있지만 해군기지 찬·반 갈등으로 몇십 년 넘게 이어온 동창회와 친목계가 깨지고 있다. 결국 지난해 12월 국회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던 끝에 '민군복합형 기항지의 크루즈 선박 공동 활용'에 대해 조사하기로 하고, 제주도와 협의를 거쳐 집행하겠다는 부대조건을 달아 기지 문제의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국방부와 해군이 이를 무시하고 사실상 일방적으로 기지 건설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서 많은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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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노란 깃발 ⓒ 평화시민연대


항일기념관 견학을 마치고 오후 늦게 강정마을을 방문한 한일 평화순례단의 눈에 이 마을은 참 소박하고 단정하고 고요했다. 수줍음을 내포한 듯도 했다. 그러나 마을 곳곳에는 노란 깃발이 걸려 있었고, 국경일도 아닌데 태극기가 걸린 가게와 집들도 눈에 띄었다.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에 따르면 노란 깃발은 해군기지 건설 반대, 태극기는 찬성의 표시라고 한다. 강동균 회장은 일본에서 온 순례단을 위해 유창한 일본말로 짧막한 강의를 들려준 뒤, 거친 현무암을 따라 강정 해안가를 걸을 수 있게 안내해주었다.

"강정마을은 지금 큰 전쟁에 휩싸여 있습니다. 400년 동안 평화롭던 마을이었습니다. 이곳에 해군기지를 만들겠다는 국가의 정책에 우리가 반대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땅은 선조가 우리에게 빌려준 것입니다. 한 번 파괴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섬을 긴장과 전쟁으로부터 지켜내 아름다운 상태 그대로 후손에게 물려주려고 이렇게 싸우는 것입니다."


국방부는 원래 화순항을 해군기지로 눈여겨보고 있었으나 주민들이 5년 동안 저항운동을 이어가자 위미 지역으로 눈길을 돌렸다. 위미에서도 주민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자 강정마을로 급선회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제주도지사와 해군(국방부) 측은 마을 주민 다수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군사작전 마냥 은밀하게 기지건설 문제를 추진하였다. 적법한 절차 없이 몇몇 사람을 포섭, 기습적으로 기지 유치 신청을 처리해버린 것이다.

명백히 불의한 일이었기에 대다수 주민들이 다시 임시총회를 열어 강동균 신임 회장과 부회장 2인을 선출했다. 그러나 도지사와 국방부, 마을의 소수 적극 찬성자들이 손을 잡고 삼각의 동맹을 맺은 상태에서 이들의 싸움은 너무나 외롭고 아프고 힘겨운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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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강동균 회장. ⓒ 평화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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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바다 속에 군락을 형성한 대규모 연산호.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세계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존지역이지만,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쉽게 파괴되고 말 것이다. ⓒ 평화시민연대


자리를 옮겨 해안가 현무암을 밟아 오르며, 해군기지 예정지룰 전체적으로 보여주고 설명한 강 회장과 윤호경 사무국장은 "강정마을의 큰내(江汀川)와 아끈내(嶽近川) 하구 연안은 서근도·범섬·문섬·섭섬으로 연결돼 5개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44호인 연산호(부드러운 겉표면과 유연한 줄기구조를 갖춘 산호를 통틀어 가리킴) 군락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희귀종 중의 70%가 이곳에 서식 중입니다. 강정천에는 은어가 올라오는데 해군기지 건설로 인하여 환경이 파괴되고 은어가 올라오지 않는다면 생태계 전체가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라며 안타까워 했다.

"군대 들어와 마을 공동체와 환경 파괴"

일본에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일꾼 오가타 타카오씨는 "우리가 소중하게 지켜야 할 아름다운 마을에 군대가 들어와 공동체를 파괴하는 모습은 오키나와의 미군문제와도 비슷합니다. 노란 깃발, 태극기가 상징하는 공동체의 분열이 너무나 슬픕니다. 기지 문제만 아니었다면 사이좋게 지냈을 사람들인데 도 당국과 군대가 착한 사람들을 이렇게 상처주고 있습니다. 이들의 싸움이 너무나 고립되어 있고 쓸쓸해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잠깐 이곳을 방문했을 뿐인데, 와주어서 고맙다고 말씀하시고 우리들의 눈길 하나가 더해지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고 말씀하시는 현지 주민들을 보면 절실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우리는 내일 다른 곳으로 이동하겠지만 이분들은 계속 여기 남아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또 해나갈 것입니다. 강정마을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제주도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한국의 타지역 및 일본에서도 강정마을 문제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말을 할 때 그의 눈빛은 젖어드는 것 같았다.

강정마을의 아름다움과 고뇌를 현장에서 발로 누비며 온몸으로 느꼈던 순례단은 저녁에는 윤호경 사무국장이 운영하고 있는 현지 식당에서 식사를 나누었다. 제주도의 대표음식 가운데 하나인 제주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으며 현지주민들과 교류회를 가졌다. 눈빛이 크고 청명한 윤 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해군 군함이 돌아다니다가 잠깐 기름이나 식량을 보급 받으러 오는 정도의 기항지를 허락하는 부가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와 해군에서는 사실상 민군복합형 기항지가 아닌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크루즈 민간복합형 기항지는 주민의 70%가 합의하고 있지만 해군기지는 4.7%만이 찬성합니다. 저희는 지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기지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것이 마을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에 의해 폭력도 당하고, 위협도 당하고, 고소 고발도 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마을의 공동체를 지키고 싶습니다. 우리가 갈라지고 나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워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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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은 평화다"라고 쓴 오른쪽 하단의 작은 글씨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강동균 회장의 강의를 듣기 위해 들어선 건물 입구. ⓒ 평화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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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사업단의 게시판. 한 동네 안에 시한폭탄처럼 양립하고 있는 두 모습. ⓒ 평화시민연대


"민군 복합형 기항지는 70%, 해군기지는 4.7%만이 찬성"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한일 시민간의 교류회가 이어지며, 오키나와의 평화를 위해 노래로서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는 산신 연주가 미야무라 미츠오씨가 '아리랑' 등을 연주하면서 제주도의 평화를 외쳤다. 이에 동석한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힘차게 뻗어 올리며 강정마을의 평화를 위해 구호를 외쳤다.

강 회장과 윤 국장은 밤이 깊어가는 마을을 뒤로 하고 버스에 오른 한일 평화순례단을 끝까지 배웅하며 아쉬운 듯, 제주 한라봉 두 박스를 선물했다. 또 버스 안에서도 강정마을 해안에 서식하는 연산호의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을 곁들였다. 이 사진 자료는 주민들이 직접 바다 속으로 들어가 촬영을 해온 것으로, 강정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헌신적이며 절절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강정마을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더 슬펐던 것처럼 윤 국장의 눈빛과 목소리도 너무 맑고 푸르른 만큼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인터뷰] "세계 평화의 섬에 해군기지 안 돼"
제주참여환경연대 양동규 정책국장
 18일 제주도 김정문화회관에서 강정마을 해군기지유치와 관련, '사전환경성검토서 초안'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해군 측에서 주최한 것인데, 이미 2014년 해군기지 준공을 전제해놓고 작성한 검토서라는 점에서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날 설명회에는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 100여 명이 참석해, 설명회 자체의 부당성을 알렸다. 또 국회에서 '민군복합형 기항지' 쪽으로 방향을 틀어 검토하기로 결정했는데 해군이 일방적으로 사실상의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주민들과 함께 해군측에 설명회의 중단을 요구했던 제주참여환경연대 양동규 정책국장은 "국회에서 제시한 부대조건에 대해 국방부나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성실하게 이행해줄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해군이 오늘과 같은 설명회를 개최하는 것 자체가 기지건설을 강행하겠다는 의미다. 우리는 국방부의 일방적인 태도에 대해 끝까지 문제제기를 하고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해군기지로 인한 제주도의 갈등은 오래된 것이다. 6년 전부터 화순항이 한 번 몸살을 앓았고, 위미 지역을 거쳐 이번에는 강정마을에 재앙이 닥친 것인데, 화순항 주민들이 정부와 국방부를 상대로 싸울 때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특별자치도와 국방부에서 경제논리를 내세워 해군기지가 마치 강정마을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것처럼 홍보를 해댄대다가, 일부 주민만을 사전 포섭한 채 다수 주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기지건설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제주도에는 강정마을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 강정마을 주민들 대다수가 해군기지를 반대하고 있지만, 긴 싸움에 지쳐서 국회가 내놓은 '민군복합형 기항지로 개발하겠다'는 의견에 대해 한 발 양보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참여환경연대 등 제주도내 시민단체의 의견은 엇갈린다. 제주참여환경연대의 공식적 입장은 해군기지든 민군복합형 기항지든 강정마을에 대규모 항만이 개발되는 것에 반대하는 쪽이다. 이에 대해 양 정책국장은 "강정마을은 유네스코에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을 만큼 생태적으로 우수한 마을이다. 대규모 항만개발이 일어날 경우 이 우수한 환경과 자원이 모두 파괴될 수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국회에서 민군복합형 기항지 개발에 대한 조사를 제주 전역으로 확대하여 진행하고, 제주도민이 납득할 만한 타당한 조사가 이뤄져, 도민들 다수가 합의를 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수용할 수 있다"면서, 의사결정 과정의 정당성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제주도 어느 곳에든 군시설이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양 정책국장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을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과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라는 안목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2005년도에 제주도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던 이야기가 제주도를 동북아 평화의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게 하는 것은 거꾸로 동북아의 긴장을 더 심화시키는 일입니다. 이는 제주도민뿐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알아야 할 사실입니다. 제주도를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전략적 기지건설보다는 환경을 잘 보존하고 가꾸어 나가면서 동북아 평화의 거점 지역으로 만들 새로운 방향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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