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활짝 핀 꽃보다 아직 피지 않은 모란의 미완성 봉오리가 더 좋아."
안병기
영산홍은 종류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자주색 꽃이 피는 것을 일러 특별히 영산자(映山紫), 혹은 자산홍이라 부르지요. 송용억 가 여기저기에는 자산홍이 무더기로 피어 있습니다. 저는 이 꽃 무더기를 일러 '꽃뫼'라 부릅니다.
꽃산이라는 뜻이지요. 세상에서 눈으로만 올라야 하는 유일한 산인 셈입니다. 원근감을 느끼고 싶은 사람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오르면 되고, 꽃의 체취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싶은 사람은 가까이 가서 오르면 되는 산입니다.
전 송용억 가의 영산홍·자산홍에서 오래된 지병을 얻었습니다. 작년 봄, 꽃들의 아름다움 때문에 앓았던 병을 올해에도 또 앓습니다. 자산홍 속에는 제아무리 철판 같은 가슴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끝내 앓을 수밖에 없는 사무치는 아름다움이 숨어 있습니다.
영산홍·자산홍을 바라보면서 전 때때로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소싯적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저 영산홍처럼 잔인하게 피어났던 적이 있는 그대라면 제 말뜻을 쉽사리 이해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