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물러나는 삼성, 얼마나 변할까?

[분석] 삼성 지배구조 및 경영권 승계는 변화 가능성 낮아... '국면전환용' 의심도

등록 2008.04.22 18:07수정 2008.04.2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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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22일 내놓은 경영쇄신안은 일견 파격적으로 보인다.

특히 이건희 회장,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 불법을 저지른 핵심 경영진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있다. 삼성증권 차명계좌 1199개를 이용해 포탈한 양도소득세 1128억원을 모두 내겠다고 한 부분도 긍정적이다.

그러나 삼성이 내놓은 경영쇄신안 10가지를 조목조목 뜯어봤을 때 삼성이 혁신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특히 경영권 승계 구도와 현 이 회장 일가의 지배구도가 변화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경영권 승계] "이재용 전무는 백의종군이 아니라 백의퇴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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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수 전략기획실장이 22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쇄신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이학수 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이 전무는 삼성전자의 CCO(고객총괄책임자)를 사임한 후 주로 여건이 열악한 해외 사업장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현장을 체험하고 시장개척 업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일문일답을 통해 "회장께서 이 전무가 주주와 임직원 사회로부터 경영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승계할 경우 회사나 이 전무에게 불행한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당분간 경영 일선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정작 이를 곱씹어보면 이 전무가 경영수업을 마치고 난 후 경영권 승계를 받을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특히 이 전무는 이번 특검의 최대 수혜자다. 유일하게 기소됐던 e-삼성기사건은 무혐의로 결론 났고, 에버랜드 전환사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인수를 통한 부당 이득에 대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논평을 통해 "이건희 회장의 일선 퇴진은 쇄신이라 보기 힘들고 3%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근본적 구조개선 없는 이번 쇄신안은 일시적 눈가림"이라며 "이재용 전무는 백의종군(白衣從軍)할 것이 아니라 백의퇴군(白衣退軍)해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변화 없는 삼성 지배구조] 생색내기에 그친 지배구조 개선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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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쇄신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이 땀을 닦고 있다. ⓒ 권우성


이학수 부회장은 "지주회사로 전환하거나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는 조언이 많지만 현재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는 약 20조원이 필요하고, 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문제가 있다"며 "앞으로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 부회장이 "순환출자 구조와 관련해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25.6%)을 4~5년 내 매각하겠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사실 지난 2006년 국회를 통과한 금산법 개정안 부칙에 따라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을 5년 내에 매각하도록 시정조치를 받았기 때문에 생색낸 것에 불과하다.

또 설사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을 해소하더라도 이 회장 일가의 에버랜드에 대한 지배력은 공고하다. 김상조 교수도 이와 관련해 "삼성카드 지분 25%가 해소되더라도 나머지 75%가 이재용, 이서진 등 삼성 일가 관계자들의 지분"이라며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매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평가 절하했다.

특히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본시장통합법 및 보험업법 개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 부회장은 이날 "앞으로 삼성은 은행업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자통법 등이 통과될 경우 삼성의 금융계열사들은 지급결제 등 실질적인 은행 업무가 가능하다. 또 지난 3월 금융위원회가 금산분리 원칙이 대폭 완화해 비은행 금융지주회사 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이상 삼성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지주회사 전환도 가능하다.

결국 변하는 것은 없다.

[재산 사회 환원] 삼성이 되풀이하는 레퍼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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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숙인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실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이학수 전략기획실장이 22일 오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경영쇄신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삼성은 이번에도 '재산 사회 환원'을 내세웠다. 이 부회장은 이날 "차명계좌는 경영권 보호를 위한 것"이라며 "조세포탈 문제와 관련해 탈루세금을 내고 차명재산을 회장 일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익적 목적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애초 6개월 전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의 명의로 된 굿모닝신한증권과 우리은행에 개설된 차명계좌를 공개한 직후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며 강경하게 나선 것과 대비되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간 국민들을 속여왔던 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또 차명으로 밝혀진 삼성생명 차명지분 16.2%와 지난 98년 실명으로 전환된 700만주에 대한 상속세 납부 등의 언급도 전혀 없었다. 대신 "오늘날의 삼성이 있기까지는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과 사회의 도움이 컸다"며 "앞으로 더 아끼고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지난 99년 이 회장은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책임을 지기 위해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증여하고 삼성생명을 상장해 부채를 갚겠다고 공언하고 9년 동안 그를 지키지 않았던 점, ▲지난 2006년 2월 불법대선자금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을 때는 80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고 구조조정본부 축소개편, 계열사별 독립경영 등을 약속했지만 결국 특검의 수사로 그때의 약속이 '말'뿐이었음이 드러난 점을 생각할 때 이번 쇄신안의 진정성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경실련은 이날 논평을 통해 "삼성그룹의 본질적 변화가 누락된 이번 발표는 여론호도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삼성은 전근대적인 지배구조를 대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라"고 강변했다.

경제개혁연대도 "국민들은 삼성에게 돈을 구걸하지 않는다"며 "이건희 회장은 탈세한 검은돈으로 사회 환원 운운하며 여론을 무마하기보다는 단 한 번만이라도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하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삼성 쇄신안 #삼성 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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