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국영-정순왕후 연대의 '진상'

[사극으로 역사읽기]

등록 2008.04.23 11:10수정 2008.04.2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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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순왕후와 홍국영. 드라마 <이산>.
정순왕후와 홍국영. 드라마 <이산>. MBC

좌상 장태우(가상의 인물)가 정국의 한 축을 장악한 이후 조선 정계에는 그를 견제하기 위한 강력한 정치적 연대가 등장했다. 홍국영과 정순왕후(당시에는 왕대비)의 연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연대가 위력을 발휘함에 따라 <이산> 제63회(4월 22일)에서는 장태우가 숙위소 군인들에게 체포·연행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현재 드라마 <이산>에서 홍국영-정순왕후 연대는 국왕 암살미수 사건과 완풍군 문제 등을 중심으로 정국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 정순왕후는 이 연대를 유지하기 위해 특히 완풍군 문제에서 홍국영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그 한 예로, <이산> 제63회에서는 정순왕후가 최측근인 최석주(가상의 인물)를 내세워 은언군(정조의 배다른 형제)의 아들 이담(완풍군 혹은 상계군)의 세자책봉을 건의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이산 너는 이제 아들 낳을 생각을 말라'는 메시지와 다를 바 없는 이 건의는 그야말로 황당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드라마 속의 홍-정 연대는 그 정도로 막강하다. 

실제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은 홍-정 연대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는 이러한 홍-정 연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순왕후는 홍국영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국영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 가중되던 정조 3년(1779) 봄에도 정순왕후는 기본적으로 홍국영의 적들과 같은 편에 서 있었다. 

정순왕후가 홍국영 편에 서지 않았다는 점은 정조의 후사문제에 관한 정순왕후의 기본 입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산>에 따르면, 정순왕후는 입양을 통해 정조의 후사를 세우고자 하는 홍국영의 방안을 지지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의 정순왕후는 입양이 아닌 후궁 간택을 통해 후사를 이어가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 점은 홍국영의 세도가 유지되던 시기에 정순왕후가 내린 두 차례의 후궁 간택 하교에서 잘 표현된다. 첫 번째는 완풍군 문제가 발생하기 1년 전인 정조 2년(1778)이고, 두 번째는 홍국영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 강화되던 정조 3년(1779)이었다.


두 차례의 하교에서 나타나는 정순왕후의 일관된 입장은, 정조의 후사는 후궁 간택을 통해 생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정조실록> 정조 4년(1780) 2월 21일자 기사에 수록된 정순왕후의 하교에 담긴 다음과 같은 표현을 음미해보면, 그가 홍국영의 방안(입양을 통한 후사문제 해결)에 기본적으로 찬동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후궁간택 통한 왕위계승 지지한 정순왕후


"사백년 종사가 오로지 주상에게 의지하고 있다. 춘추가 한창인데도 아직 후사의 경사가 없다."(四百年宗社之托惟在主上春秋鼎盛而尙未有嗣續之慶)

여기서 "춘추가 한창인데도"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홍국영은 아직 서른 살도 안 된 정조 임금에게 원빈의 양자를 들이라고 했다. 이것은 향후 정조 임금한테서는 후사가 나올 수도 없고 나와서도 안 된다는 그의 바람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정순왕후는 '주상은 아직 한창 나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것은 향후 정조의 몸에서 후사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표출하는 것이다. 만약 드라마에서처럼 정순왕후가 완풍군 이담의 왕위계승을 지지했다면, 그가 이 같은 하교를 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실제의 정순왕후는 입양이 아닌 후궁간택을 통한 왕위계승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는 홍국영과 대립적인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드라마 <이산>에서처럼 완풍군 문제를 놓고 그가 홍국영과 정치적 연대를 결성할 가능성은 낮았던 것이다. 

드라마 <이산>에서 홍-정 연대라는 가상의 설정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태우라는 가상의 거물을 견제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상의 장태우를 전제로 한 연대이므로, 이 연대 역시 가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산>이 홍-정 연대를 내세울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드라마 속의 정순왕후가 세손 시절의 이산에게 악독한 짓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다. 정조의 등극을 방해했기 때문에 그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정순왕후가 '뒷방 노인네' 신세에서 벗어나려면 홍국영이라도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드라마 <이산>의 설정이다.  

드라마 초기, 지나친 악녀로 묘사된 데 따른 결과물

 홍-정 연대의 피해자인 좌상 장태우. <이산> 제63회에서 그는 홍국영에게 체포되었다. 드라마 <이산>.
홍-정 연대의 피해자인 좌상 장태우. <이산> 제63회에서 그는 홍국영에게 체포되었다. 드라마 <이산>. MBC

하지만, 실제의 정순왕후는 굳이 홍국영을 끌어들여 정치적 재기를 도모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정순왕후가 세손에게 딱히 도움이 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가 정조의 등극을 그렇게 방해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정순왕후와 김귀주는 기본적으로 이산의 왕위 등극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게다가 정순왕후는 엄연히 정조의 할머니였다. 충효를 이념으로 하는 유교사회에서 국왕의 할머니라는 위치는 쉽게 흔들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이상으로는 정조보다 일곱 살 위였지만, 형식을 따지는 유교사회에서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충효의 모범이 되어야 할 군주가 중대한 명분도 없이 할머니를 박대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왕위를 위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정순왕후는 영조의 부인이자 정조의 할머니라는 이유만으로도 얼마든지 정치적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었다. 굳이 홍국영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그는 얼마든지 뒷방 노인네 신세로 밀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최근 드라마 <이산>에서 완풍군의 입양 및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정국의 흐름을 이끌고 있는 홍국영-정순왕후 연대는 실제 역사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장태우라는 가상의 거물을 견제할 필요성에서 나온 결과물인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드라마 초기에 정순왕후가 지나치게 악녀로 묘사된 데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산 #정순왕후 #홍국영 #완풍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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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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