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뺨치는 통신사 요금제 마케팅

'무료체험' 등 악용, 명의자 아니라도 가입만 시키면 그만?

등록 2008.04.24 17:27수정 2008.04.2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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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집전화 더블프리요금제편 CF.

KT집전화 더블프리요금제편 CF. ⓒ KT

KT집전화 더블프리요금제편 CF. ⓒ KT

오늘 지방에서 할머니를 모시는 삼촌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삼촌은 직장 관계로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한 달에 한두 번씩 할머니댁에 오시곤 한다.

 

"많이 바쁘지 않으면 삼촌이랑 통화 가능하니?"

 

워낙 온순하던 삼촌이라 평상시 어투와는 다른 약간은 격앙된 목소리에 걱정이 되었다. 휴가를 얻어 할머니 댁에 왔는데 할머니가 전화를 거의 쓰지 않음에도 전화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삼촌이 확인해 보았다고 했다. 고지서에는 기본 통화요금 외에 5천원 상당의 부가서비스 요금이 부과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3년째 부과된 정체불명의 부가서비스 요금

 

삼촌은 2년 전부터 집과는 먼 거리의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후 나는 취업 때문에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고 부모님 역시 귀농을 하시게 되어 할머니 혼자 지내시게 되었다. 사건은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전화 요금을 내시던 할머니가 삼촌에게 지나가는 말로 그 이야기를 했던 데에서 시작된다. 확인해 본 결과 정체불명의 부가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던 것이 아닌가?

 

삼촌은 KT 고객센터로 자초지종을 설명하였고 거기선 확인 후에 연락하겠다고 했다. 얼마 후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KT측의 설명은 더욱 황당한 것이었다. 내가 2005년 7월경에 부가서비스를 신청했다는 것이었다. 그 부가서비스의 내용은 '일반전화로 이동전화에 전화를 했을때 월평균 통화료에 30% 추가된 금액을 월정액으로 부담하는 조건으로 월평균 통화료의 두 배까지 무료통화를 제공한다(KT집전화 더블프리요금제)'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 접하는 요금제였고 신청을 한 기억이 없다고 삼촌에게 얘기하였다.

 

4년 전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리고 할머니 혼자 간병을 하기에 힘이 들어 우리 가족이 함께 모시고 살게 되었다. 부모님과 동생은 2층에서 지내고 나는 1층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였다. 당시 그집은 삼촌의 명의로 된 집이었고 전화 역시 삼촌 명의로 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독자적으로 부가 서비스를 신청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2시간 후에 삼촌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담당자와의 통화를 통해 신청자인 본인은 신청한 기억이 없고 명의자도 아닌 조카와의 계약이 성립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어필하였다. 그리고, 녹취로 계약이 성립되었다면 그것을 증명해 달라고 했다.

 

KT측에서는 녹취는 자사의 규정상 1년 6개월만을 보관한 뒤 폐기처분한다고 했고 일체의 사과는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해당 전화를 통해 녹취계약이 이루어졌기에 명의자 본인이 아니더라도 계약은 성립한다고 하였다.

 

이 부분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어이가 없는 부분이다. 이런 것이 합법이라면 그것은 지극히 기업에 편중된 법이 아닐까? 세상 물정에 어두운 연세가 많은 노인과 사회성이 결여된 계층의 사람들은 이런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금 일부 돌려주고 무마하면 그만인가

 

30분 통화끝에 KT측에서는 그동안 납부한 17만원 가량의 부가요금 중 할인적용된 요금 5만원을 제한 금액을 반환하는 것으로 종결하자는 제의를 하였다. 하지만, 삼촌은 돈은 받지 않겠다고 하였고 그런 식으로 무마하려는 KT측의 태도와 또다른 피해자가 생길지도 모르는 잘못된 KT 시스템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였다.

 

그제서야 담당자는 자사의 잘못된 점을 인정하며 사과하였지만 계속 요금 반환을 통한 종결로 유도하였다. 삼촌은 그런 식으로 해결을 하려는 태도에 반박하였고 반환금은 필요가 없으니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이상 생기지 않도록 상부에 보고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담당자는 그렇게 해보겠다는 말은 하였지만 확답은 꺼렸고 그렇게 오랜 통화는 끝났다고 한다.

 

모든 것을 설명한 후 삼촌은 얘기하였다.

 

"내가 너무 깐깐하게 대한 건 아니지? 하지만, 내가 돈을 환불 받으면 법적인 효력도 사라질테고 그러면 그사람들의 잘못된 시스템으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들이 생길 수도 있는데 차마 그렇게 할 순 없었어."

 

퇴근후 집에 돌아와 확인해 보니 많은 이들이 KT집전화 정액요금제나 더블프리요금제에 자신도 모르는 새 가입돼 장기간 부가서비스 요금을 내왔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중앙> 3월 28일자 '네티즌, KT와 '한판' 붙은 사연')

 

이뿐 아니다. 이동통신사에서도 새로운 요금제를 홍보한다는 명목으로 무료체험 권유 전화를 자주한다. 나 역시도 몇 년 전에 한 달 무료 체험에 동의하였지만 무료체험 기간 종료 후 요금이 자동으로 청구된다는 사실을 잊은 채 3개월 정도를 흘려 보낸 적이 있다.

 

법률의 틈새를 이용한 편법이 아닌 순수한 홍보라면 무료체험 기간 종료 후 가입 의사를 재확인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이와 같은 마케팅 수단은 이동통신뿐 아니라 유선방송, 신문구독과 같은 우리 실생활 가까운 곳에 수없이 존재한다.

 

젊은 세대인 우리도 자칫 잊고 지나칠 수 있는 무료체험 마케팅, 이런 것들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는 대기업들… 기업의 편의에 치우친 짧은 시간의 녹취에 의해 성립된 계약과 명의자 본인이 아니더라도 계약이 성립되는 법률의 틈새, 달콤한 무료 체험을 앞세워 가입 의사의 재확인이 생략된 마케팅 방식이 보이스피싱과 비슷하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예전과 같은 우편 고지서가 아닌 이메일 청구서가 보편화된 지금, 어쩌면 당신도 모르는 부가 서비스 요금이 새 나가고 있진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블로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4.24 17:2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블로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무료체험마케팅 #법률의틈새 #소비자보호 #대기업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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