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세운 것은 무너진다는 것이 진리다

[역사소설 소현세자 37] 환향녀의 웃음

등록 2008.04.24 15:01수정 2008.04.2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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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인왕산 아래 장동은 조선 중기 이후 권력의 본산이었다. ⓒ 이정근



"예서 뭐 하는 게요?"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한씨는 흠칫 놀라며 뒤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아니 당신이…."

시선이 마주쳤다. 얼마나 그리웠던 얼굴인가.

"당신이라니요?"

싸늘했다.


"저예요. 경복 애미. 당신의 아낙이란 말예요."

얼마나 그리웠던 가슴인가? 품속으로 파고들고 싶었다.

"일 없수다. 경복 애미는 심양으로 떠났고 내 아낙은 죽었소."

한씨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살아있는 아내를 눈앞에 두고 죽었다니 기가 막혔다.

"여보, 저 이렇게 살아왔잖아요."
"내 아낙은 죽었다 하지 않았소? 돌아가시오."

반가웠지만 차가운 가슴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한씨의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오매불망(寤寐不忘) 그리웠던 지아비로부터 돌아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천칠백 리 머나먼 길, 당신이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발이 부르트도록 달려왔어요."
"일 없다 하지 않았소. 어서 돌아가시오."
"너무 하십니다. 이러실 수는 없습니다."

한씨는 지아비 바지를 붙잡고 무너져 내렸다. 강화도에서 청나라 군사에게 붙잡혀 끌려갈 때도 오로지 지아비 생각. 심양에서 풀려나 돌아올 때도 생각나는 것은 지아비뿐이었다. 그렇게 돌아온 환향녀가 지아비 발치에 엎드려 오열하고 있었다.

"이리 오너라."

밤새 떨어진 감꽃을 쓸고 있던 마당쇠가 부리나케 뛰어와 대문을 열었다.

"서방님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대감마님께서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청나라 군사에게 마누라를 빼앗긴 사내들은 사내들대로 괴로웠다. 자신의 아내를 지키지 못한 무력감에 몸과 마음이 황폐화되어 갔다.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차라리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이율배반이 그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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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절요. 성리학을 요약한 책. 조선의 사대부들은 성리학에 함몰되어 여자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이정근



인륜과 인정의 갈등 속에서 그들은 괴로웠다. 부모형제 친구들에게도 털어놓고 얘기할 사안이 아니었다. 이러한 괴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유일한 벗이 술이었다. 한씨의 남편도 작부가 있는 술집에서 밤을 새워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어온 것이었다.

"저 여자를 대문 안에 들여놓지 마라."

발치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는 한씨를 야멸차게 뿌리치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당쇠가 한씨 옆으로 다가왔다.

"웬 여자가 새벽부터 울고불고 난리야? 재수 없게스리…. 소금이라도 뿌려야겠구만."

마당쇠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뒤돌아섰다.

"얘, 장쇠야!"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였다.

"댁은 뉘신데 남의 집 종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거요?"

생뚱한 얼굴로 장쇠가 한씨 곁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엎드려 있던 한씨가 얼굴을 일으켰다.

"아니, 마님이 꼭두새벽에 웬일이세요?"

화들짝 놀란 장쇠는 순간, 뒤통수가 아찔했다. 돌아오는 며늘아기는 절대 집안에 들여놓지 말라는 대감마님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밖에서 쫓겨나는 환향녀

"장쇠야. 경복이 얼굴이라도 한 번만 보여 다오."

흐느끼는 한씨를 대문밖에 두고 장쇠가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되돌아온 장쇠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대감마님께 여쭈었다가 경만 치고 나왔습니다요. 제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하고 싶지만 죄송합니다."

머뭇거리던 장쇠가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문밖에 엎드려 오열하던 한씨가 일어나 문고리를 잡고 틈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때였다. 경복이가 마당에 나와 깡충깡충 뛰며 감꽃을 줍고 있었다.

"경복아!"

불러보았지만 목울대만 뜨거워올 뿐, 목소리가 입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들여다보던 한씨는 발길을 돌렸다. 골목을 빠져나오면서도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리운 가슴 지아비의 품도, 보고 싶은 아들 경복이의 얼굴도 없었다. 장동 골목을 빠져나온 그녀의 등 뒤로 아침 햇살이 부서지고 있었다.

골목을 빠져나온 한씨는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히죽히죽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닌 이상야릇한 웃음이었다. 그 웃음은 향기도 없었고 온기도 없었다. 차가웠지만 뜨거운 웃음이었다. 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여자만이 웃을 수 있는 비소(悲笑)였다. 전쟁의 참극을 몸소 체험한 여자가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며 흘리는 웃음을 후대의 사람들은 '환향녀의 웃음'이라고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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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추문. 경복궁의 서문으로 대소신료들이 드나들던 문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대원군이 중건하였으며 일제에 의해 다시 헐려 1975년 복원하였다. ⓒ 이정근



얼마쯤 걸었을까? 허물어진 담장 사이에 부서진 대문이 누워 있었다. 영추문이었다. 조선 건국 초, 한 때 위용을 자랑하던 경복궁 서문이었지만 초라한 모습으로 허물어져 있었다.

"보아라. 허물어져 있지 않느냐? 인간이 세운 모든 것은 허물어진다는 진리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느냐. 집도 대궐도 성벽도 언젠가는 허물어진다. 인간이 세운 것은 무너진다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윤리와 도덕도 비켜갈 수 없다. 억년 가는 집이 있고 만년 가는 법도가 있다더냐? 설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억겁의 시간 속에서 찰나에 불과하다.

인륜이 하늘의 뜻이고 칠거지악이 도덕이라고? 그것은 너희들이 이 땅의 여자들을 억압하기 위한 구실일 뿐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다. 밭을 택하는 것은 너희들의 목적추구를 위한 위선과 미망일 뿐, 언젠가는 씨를 선택할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이 가장 자연적인 법칙이다. 나는 학문이 짧아 더 깊은 내막은 잘 모르지만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공부했다는 사대부들아! 잘 붙들고 잘 먹고 잘 살아라."

한씨의 입가에 뜨거운 냉소(冷笑)가 흘렀다. 분노의 이글거림 속에서 차가운 웃음이었다. 한씨의 눈빛은 세상에 대한 저주가 출렁거렸다. 한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숭례문을 지나고 청파역을 지났다. 만초천을 따라 걷는 한씨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세상의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듯 한강 쪽으로 가던 한씨의 그 후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이 땅에서 스러져간 환향녀(還鄕女)를 화냥년이라고 매도했다. 지켜주지 못한 자괴감에서 발로한 자기 합리화다. 물론 갈 곳이 없는 여자들이 일부이긴 하지만 유곽과 주막에 들어가 매음녀가 된 여자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조국을 찾아온 환향녀를 화냥년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남성 중심사회의 보호수단이었다.

화냥년이라는 말의 어원은 화랑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사회에서 화랑은 무당이었으며 남자 무당은 여자 무당에 비해 지위가 낮아 여자 무당들을 찾아다니며 일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행실이 좋지 못한 남자 무당을 '화냥이'. '화냥놈'이라고 불렀으며 원래 남자에게 쓰이던 말이 여자에게 쓰이게 되면서 '서방질을 한 계집'을 뜻하게 되었다. 심양에 붙잡혀 간 여자들이 돌아오기 이전 신라시대부터 쓰이던 말이 환향녀 들에게 전가된 것이다.
#환향녀 #병자호란 #성리학 #사대부 #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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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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