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학교자율화 반대 청소년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이경태
수준별 이동수업이 효과있나수준별 이동수업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은 '수준별로 가르치면 좋겠네'라는 생각 때문이다. 당연히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의외로 효과가 검증된 연구결과는 별로 없다. 성적만 놓고 보면, 상위 5% 정도만 효과가 있다. 나머지는 큰 차이가 없거나 떨어진다.
당연하다. 당신이 교사라면, 우등반과 열등반 중에서 어느 반을 가르치고 싶겠는가. 당신이 교사라면 열등반에 가서 뭘 가르치겠는가. 아니 가르치고 싶은가.
그리고 열등반에 있는 학생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못하는 아이에게 기초를 가르친다는 게 그럴싸해 보이지만, 학습이란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도 있지만 어떤 계기를 통해 갑작스런 탈바꿈도 있다. 유약한 주몽이 수준이 낮다고 해모수에게 고차원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면, 주몽은 어떻게 되었을까. 따라서 우열반이나 수준별 이동수업은 일종의 차별이다.
특히, 한국은 수준별로 다르게 가르치지만 시험은 같은 걸 본다. 우등반 학생들은 고차원적인 것을 배우고 열등반 학생들은 기초를 배우는데, 시험은 같다. 그러면 누가 시험을 잘 보나.
수준별 이동수업이나 평준화나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효과 또한 같다. 평준화가 비평준화보다 못하다는 이른바 '하향평준화' 역시 검증된 바 없다. 간혹 평준화가 더 낫다는 결과가 보고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하향평준화'라는 말은 일종의 유언비어에 가깝다. OECD의 국제학력평가(PISA)에서 계속 1위를 한 핀란드도 극단적인 평준화 체제이지 않은가. 다만, 비평준화는 상위 5%나 10%에게 좋은 효과를 보인다.
전체적으로 효과가 별로이나 상위 5%에게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상위계층은 우열반이나 수준별 이동수업을 직감적으로 원한다. 평준화 해체를 잘 사는 사람들이 희망하는 것과 같다. 귀한 아이가 미천한 것들과 한 교실에 있는 걸 볼 수 없다는 심리라고나 할까. 임대아파트 아이들을 피해 다른 학교로 아이를 보내는 것과 비슷하다.
수준별 이동수업을 확대하면 사교육비는 당연히 증가어르신들은 우열반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때는 학교 밖에 사교육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교과서만 열심히 공부해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 밖의 사교육이 학교를 잡아먹을 기세다. 따라서 교과서만 열심히 하면 안 된다. 우등반에 남기 위해 또는 열등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교육은 필수다. 물론 돈이야, 돈 벌어주는 기계인 부모가 알아서 할 일이다.
더 큰 문제는 밴딩(우열반)보다 셋팅(수준별 이동수업)이 가지수가 많다는데 있다. 우열반은 총점으로 1부 리그, 2부 리그, 3부 리그 형태인데, 수준별 이동수업은 각 과목별로 상/중/하가 있어서 8개 과목이면 리그 수가 24개나 된다.
그러니까 우등반 '입시'가 많아진다. 따라서 아무래도 사교육을 더 받아야 한다. 여기에 지금의 사교육도 논술학원, 어학원 하는 식으로 전문화되어 있으니, 여기저기 다녀야 한다. 이를 위해 전용 자동차도 필수다. 부모가 맞벌이면 한 사람은 일을 관두게 해야 한다.
학급당 학생수를 줄여줘야 한다. 출산율을 저하되어 학생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하니, 조금만 더 학교나 학급을 만들면 된다. 그래서 교사가 학생 하나하나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말 맞춤형 수업을 원한다면수업은 관계다. 강의식 수업은 나쁜 것이고 토론식 수업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도 일종의 편견이다. 많은 학생들에게 많은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는 데에는 강의식이 보다 효과적이고, 학생을 생각하게 만드는 데에는 토론식이 보다 효과적일 뿐이다. 만병통치약과 같은 수업방식이란 없다.
인간의 역사가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 만약 만병통치약 수업방식이 있었으면 벌써 있었을 것이다. 어떤 수업방식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교사와 학생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하다. 학생과의 만남에서 교사의 말, 손 동작, 움직임, 눈빛, 귀기울이기, 믿음, 기대, 준비가 어떠냐에 따라 수업이 달라진다.
이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학급당 학생수 감축이다. 학원의 교습장에 몇 명이 앉아있는지 가서 보라. 그리고 학교로 가서 한 교실에 몇 명인지 보자. 아니면 교육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교수들이 있으면, 박사 과정 학생이 몇 명인지 물어보라.
동시에 학생들은 수준이 조금 다르더라도 함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습이란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도 있지만, 서로서로 배우는 것도 만만치 않다. 못하는 아이는 잘하는 아이에게 물어보면서 배우고, 잘하는 아이는 못하는 아이에게 대답해주면서 배운다. 따라서 학생들을 나누는 것보다 학생들끼리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도록 신경쓰는게 더 낫다.
물론 뒤처지는 아이는 당연히 있다. 그냥 섞어놓든,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모아놓든, 못하는 아이들만 모아놓든 간에 신기하게도 다시 상/중/하로 나뉜다. 이럴 때는 뒤처지는 아이들을 위한 우회도로가 필요하다. 제대로 된 의미의 보충수업이 있어야 한다.
아이 잘 기르는 법이나 가족의 행복 비결 등을 강의하거나 전파하는 그 많은 전문가들이 항상 말하는 게 있다. 비교하지 말란다. 남편을 다른 남편과 비교하지 말고, 아이를 옆 집 아이와 비교하지 말란다. 하지만 지금 이명박 정부는 전국의 수백만 학생들을 시험으로 비교해서 우열반으로 편성하려고 한다. 또 차별하지 말란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고 차별하지 말란다. 하지만 지금 이명박 정부는 전국의 수백만 아이들을 우열반이나 고교 다양화 300 따위로 나누어 차별하라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럴 때는 꼭 전문가들이 없다. TV나 각종 강연이나 돈 되는 곳에 넘쳐나던 교육학자·심리학자·아동학자들이 꼭 이럴 때만 되면 없다. 그러니 믿을 건 자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레디앙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송경원은 진보신당에서 교육분야를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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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교육기관에서 잠깐잠깐 일했습니다. 꼰대 되지 않으려 애쓴다는데, 글쎄요, 정말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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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열반'이나 '수준별'이나... 조삼모사 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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