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오늘 한 번 쐈다!

고향인 좌동 경로당에 다녀왔습니다

등록 2008.04.28 13:23수정 2008.04.2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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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락동회센터에서 회 장만하는 아지매와 풍경 ⓒ 최용기

▲ 민락동회센터에서 회 장만하는 아지매와 풍경 ⓒ 최용기

 

"민락동 OO상회죠, 건강보험직원인데요."

"아… 예!"

"토요일 아침 10시반경에 가지러 갈께요. 잡어 10만원어치하고 매운탕거리, 초장 와사비..알죠? 아이스박스에 넣고요, 저번처럼 시간 어기면 안 됨더, 예?"

"예 알았심더."

 

오늘(26일)은 고향 경로당에 우리 엄마가 한 턱 쏘는 날이다. 미리 전화해 놓으면 알아서 다 해주니, 이래서 단골집이 좋은가 보다. 주문한 것을 찾아왔다. 잡어회에 매운탕 거리에다, 한 스무명은 먹고도 남을 만큼 푸짐하다. 고향 경로당으로 나서는 엄마는 좀 들뜬, 아니 매우 기분 좋은 표정이다.

 

"음, 점심시간에 맞추면 딱 되겠다. 갑장계나 모임 갈 때 마다 경노당서 우째 잘해주는지…."

"아 예! 당연히 갚아야죠!"

 

토요일이라 30여 분만에 마을경로당에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누고? 용기 아이가?"

"예, 잘 지냈습니까?"

"그래, 용기 니가 정말 잘한데이!"

"무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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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 경로당 전경입니다 ⓒ 최용기

▲ 경로당 경로당 전경입니다 ⓒ 최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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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 가운데 우리 엄마와 오른쪽 집안상곡아지매 외 ⓒ 최용기

▲ 위하여! 가운데 우리 엄마와 오른쪽 집안상곡아지매 외 ⓒ 최용기

 

아이스박스를 턱 푸니 잡어회가 가득하다. 다를 "와!"하면서 시선을 모은다.

 

"아이고! 헐은 아나고나 사오지, 비싼 잡어뿐이네?"

"우리 아들이 비싼 것만 사왔데이!"

 

단돈 10만원에 이렇게 고향 어른들이 기분 좋아하는데, 난 여태 뭘 했을까. 순간 몹시 부끄러운 마음에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다들 상추에 싸서, "아이고 맛있다!"하면서 잘 드신다.

 

근데, 아무리 열심히 살펴봐도 우리 엄마가 제일 곱고 예쁘다.

 

"가만 보니,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쁘네예? 가끔씩 고집 부리고 싸우기도 하지만요…."

"(다들)그래! 너거 엄마 누가 팔십이라 하겠노? 니가 잘 챙기는 갑다."

"(하하)아임더!"

"너거 엄마는 낙천적이고 활동적이고, 그래서 저래 건강하다."

"야! 용기가 복이 많죠?"

"그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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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감 군침도는 횟감, 끝내줘요! ⓒ 최용기

▲ 횟감 군침도는 횟감, 끝내줘요! ⓒ 최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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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노당서 모여서 회 잡수시는 모습이 넉넉하다 ⓒ 최용기

▲ 경노당서 모여서 회 잡수시는 모습이 넉넉하다 ⓒ 최용기

 

소주 두 잔에 회 몇 점을 상추에 싸서 먹곤 자리를 일어서면서 말했다.

 

"앞으론 1년에 두 번은 꼭 챙길께요!"

"아이고 그래, 말만 들어도 고맙데이."

"그럼 이만 갑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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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교 08년 4/26일 촬영한 좌동교 ⓒ 최용기

▲ 좌동교 08년 4/26일 촬영한 좌동교 ⓒ 최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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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교 80년도 고향 친구들과 좌동교에서 ⓒ 최용기

▲ 좌동교 80년도 고향 친구들과 좌동교에서 ⓒ 최용기

참 예쁜 동네였는데, 마을 위로 길이 나면서부터 공교롭게도 교통사고가 끝이질 않아서

남자들은 거의 다 죽고 과부들만 모여 산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 건너편엔 원자력병원이 한창 건설 중이고, 옛날 우리집(499번지)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 지 오래다. 또 여름마다 멱을 감았던 냇가는 이젠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정도. 다들 문명의 이기에 찌든 볼품없는 모습들만 남아 있는 것 같다!

 

근데, 원자력병원이 다 들어서면 우리 마을 자체가 아예 없어진다고 한다. 휴우! 이 서러운 마음도 어른들에게 베풀었다는 뿌듯함으로 잠시나마 행복하다. 그래, 오늘의 이 초심을 잃지 말고 살자!

 

잘 생긴 리키 마틴의 경쾌하고 섹시한 라틴음악에 몸을 던지고 왕복 2시간에 걸친 용기의 짧은 고향 나들이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2008.04.28 13:23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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