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두 번 울고 말았다

눈물처럼 진한 모녀간의 사랑

등록 2008.05.02 08:57수정 2008.05.0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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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보다 아름다운 기도가 있을까. 오늘밤 두 번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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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 친정어머니가 챙겨준 두릅을 전해준 진실이 엄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 최종수

▲ 두릅 친정어머니가 챙겨준 두릅을 전해준 진실이 엄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 최종수

저녁미사를 마치고 골목길을 걸어 아파트 사제관으로 향한다. 배보수퍼 삼거리에는 생선자판 리어카가 홀로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 리어카와 나란히 서 있는 담벼락에는 스물 한 개의 쪽방이 사람의 온기가 끊어진 채 쓸쓸하게 어깨를 걸고 있다.

 

봉제공장이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부터 떠나간 노동자들의 빈 쪽방들을 할머니 혼자 지키고 있는 마당에는 겹벚꽃이 마지막 꽃잎들을 떨어뜨리고 있다.

 

배보수퍼 안으로 들어서는데, 진실이 엄마가 수화기를 들고서 눈물을 닦고 있다.

"엄마에게 농사일 조금만 하라고 말하며 울고, 엄마는 너무 일 많이 해서 하지동맥이 생겼는데, 그것 수술할 시간 없이 일하는 저 때문에 울었어요."

 

사제에게 들킨 눈물을 감추려고 얼른 말을 바꾼다.

"신부님, 두릅 드세요?"

"아직도 두릅이 있나요?"

"신부님 한 번 꼭 드리고 싶었는데…. 여기 취나물도 있는데 이것도 가져가세요. 아차, 싹이 난 더덕도 있어요. 넝쿨은 살짝 대쳐서 초장이 찍어 드세요."

"다 주면 무얼 먹으려고요."

"신부님 한 번도 드리지 못했는데 마침 오셨으니까 가져가세요. 토요일 미사 보고 주일에 진실이 아빠랑 임실 친정에 가요. 어머니가 꼼쳐놓았다가 챙겨주신 것들이에요."

"그래요,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네요. 진실이 외할머니 생각하며 맛있게 먹을게요. 어머니 살아계실 때 주일마다 찾아뵈세요. 효도가 따로 있나요.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는 게 효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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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주려고 이 산 저 산에서 뜯은 취나물 ⓒ 최종수

▲ 취 딸에게 주려고 이 산 저 산에서 뜯은 취나물 ⓒ 최종수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진실이 엄마 손을 꼭 잡아주고 문을 나선다. 세 개의 비닐봉지를 들고 중국식당을 하는 총무님 댁으로 갔다. 하루 일을 마치고 탕수육에 소주를 들고 있는 신자들, 정겨운 소주잔이 오고간다. 잠시 집에 다녀온다는, 일명 '영자씨'로 통하는 다온 외할머니가 오늘 고창 여동생 집에서 가져왔다며 소라를 챙겨왔다. 소주 한 잔 카! 초장에 소라 한 점, 환상적인 이 맛을 누가 알랴.

 

안나 자매가 탁자에 놓인 비닐봉지를 보고 뭐냐고 묻는다.

"배보수퍼 진실이 엄마가 준 두릅이에요. 좀 전에 진실이 엄마가 시골에서 농사짓는 어머니에게 전화 해서는 일 조금하라고 울었대요. 또 진실이 외할머니는 진실이 할머니 대로 딸에게 일 조금하라고 울고....진실이 엄마가 그 전화 통화하고서 챙겨준 나물이에요. 근데 왜 또 눈물이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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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 자연산 더덕의 향기가 진동한다. 친정어머니의 사랑처럼 말이다. ⓒ 최종수

▲ 더덕 자연산 더덕의 향기가 진동한다. 친정어머니의 사랑처럼 말이다. ⓒ 최종수

늘 혼자인 아파트에 돌아왔다. 비닐봉지에서 더덕과 두릅을 꺼내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었다. 쟁반에 떨어진 더덕 순 하나를 물에 씻어 입에 넣었다. 코끝까지 싸하는, 진실이 외할머니와 진실이 엄마, 이 모녀지간의 사랑의 향기가 아닐까.

2008.05.02 08:57 ⓒ 2008 OhmyNews
#취 #모녀지간 #두릅 #더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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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는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일꾼으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으로 2000년 6월 20일 폭격중인 매향리 농섬에 태극기를 휘날린 투사 신부, 현재 전주 팔복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첫눈 같은 당신'(빛두레) 시사 수필집을 출간했고, 최근 첫 시집 '지독한 갈증'(문학과경계사)을 출간했습니다. 홈피 http://www.sarang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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