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서명이 '민란'이면 국민은 '폭도'?

[주장] 국민의 저항을 '민란'이라 깎아내리는 언론들의 입방정

등록 2008.05.02 16:08수정 2008.05.0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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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 열기에 인터넷이 뜨겁다. 이제는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이야기가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광우병 문제를 다룬 MBC <PD수첩>이 방영된 이후인 30일 늦은 밤부터 서명에 동참하는 누리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덩달아 <다음>을 비롯한 각 포털에서는 '이명박 탄핵'이라는 단어가 실시간 인기 검색어 상위 순위에 올랐다.

 

이렇게 누리꾼들의 반응이 뜨겁게 달아오르자 언론들도 30일 밤부터 이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언론들이 누리꾼들의 이와 같은 서명운동을 두고 '짬짜미'라도 한듯 '인터넷민란, 사이버민란, 누리꾼민란, 네티즌민란'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한 단체에서도 대통령의 책임을 추궁하며 '민란'을 염려하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사태' '반란'이라고까지 했다. 덕분에 서명에 참가한 누리꾼들은 졸지에 '반란'을 주도하고 '민란'을 모의한 불순세력처럼 되고 말았다. 언론들은 정말로 국민들의 난동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일까?

 

국어사전에서 '민란'을 찾아보면?

국어사전에서 민란을 찾아보면 "포악한 정치 따위에 반대하여 백성들이 일으킨 폭동이나 소요"라고 설명돼 있다.

포악한 정치 따위에 반대한 것으로 돼 있으므로 얼핏보면 문제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폭동'과 '소요'의 뜻풀이까지 읽고 나면 아찔해진다.

폭동[暴動]

[명사] [법률] 내란에까지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집단적 폭력 행위를 일으켜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어지럽게 하는 일.

소요[騷擾]

[명사] 여러 사람이 모여 폭행이나 협박 또는 파괴 행위를 함으로써 공공질서를 문란하게 함. 또는 그런 행위.

물론 '민란'이라는 용어를 쓴 언론들이 누리꾼들을 폄훼할 의도로 그렇게 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취임 두 달을 겨우 넘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서명이 하룻밤 사이에 수만 명씩 늘어나는 심상치 않은 현상을 호들갑스레 보도하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민란'이라는 용어에는 다분히 '불순하고 정당하지 못하다'는 혐의가 담겨있기 때문에 언론들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통치자의 부당한 억압에 항거하는 국민들의 행위를 '민란'이라는 용어로 깎아내리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그것이 설령 의도하지 않은 바라 하더라도 언론의 기능과 책임을 생각했다면 신중해야 했다.

 

중고교의 국사 교과서에도 민란이라 이름 붙여졌던 역사 속의 사건들이 '민란'이라는 단어의 부정적 의미를 고려해 용어가 '봉기'로 바뀌었다. 이를테면 '진주민란'이 아니라 '진주농민봉기'다. '봉기'도 온전한 해석에 따른 용어같지는 않지만 '민란'보다는 객관적이고 비판적 용어라는 데는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정이 이런데도 언론들은 용어에 대한 성찰 없이 잘못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광주 '사태'였기에 시민들은 '폭도'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언론들은 제발 잊지 말기를 바란다.

2008.05.02 16:08ⓒ 2008 OhmyNews
#이명박탄핵 #민란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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