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1926년 10월 28일 경남 충무시 명정리에서 박수영(朴壽永)씨의 장녀로 태어나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했다. 1946년 1월 30일에는 김행도(金幸道)와 결혼했으나 1950년 12월 25일 남편과 사별했다.
1955년 8월 <현대문학>에 김동리에 의해 단편 '계산'이 추천되었으며, 1956년 8월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 완료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57년에는 단편 '불신시대'로 제3회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받았으며, 1958년 첫 장편 '연가'를 <민주신보>에 연재하면서 단편 '벽지', '암흑시대' 등을 발표했다.
1959년에는 장편 '표류도'를 발표, 제3회 <내성문학상>을 받았으며, 1962년 전작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발표했다. 1963년에는 장편 '파시'를, 1965년에는 장편 '녹지대'를 발표했으며, 장편 '시장과 전장'으로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을 받았다. 1966년에는 단편 '집', '인간', '평면도', 연작 '환상의 시기'를 발표했으며, 수필집 <Q씨에게>를 펴냈다.
1968년에는 단편 '우화', '약으로도 못 고치는 병'을 발표했으며, 1969년부터 '토지' 1부를 <현대문학>에 연재(1969. 9∼1972. 9)하기 시작했다. 1970년에는 단편 '밀고자'를 발표했으며, 장편 '창'을 연재했다. 1972년에는 '토지' 1부로 제7회 <월탄문학상>을 받았으며, '토지' 2부를 <문학사상>에 연재(1972. 10∼1975. 10)했다.
1974년에는 장편 '단층'을 발표했으며, 1977년 '토지' 3부를 <독서생활>(1977. 1∼1977. 5)과 <한국문학>에 연재(1977. 6∼1978. 1)했다. 같은 해 수필집 <호수>, <거리의 악사>(민음사)를 펴냈다. 1979년에는 박경리 문학전집 전16권(지식산업사)을 펴냈으며, 1980년 원주시 단구동 742번지(지금의 토지문학공원)에 정착했다.
1983년에는 '토지' 4부를 <정경문화>에 연재(1983. 7∼1983. 12)했으며, 1985년 수필집 <원주통신>(지식산업사)을 펴냈다. 1987년에는 '토지' 4부를 <월간경향>에 연재(1987.8∼1988.5)했으며, 1988년 시집 <못 떠나는 배>(지식산업사)를 펴냈다. 1990년에는 제4회 <인촌상>을 받았으며, 중국기행문 <만리장성의 나라>, 시집 <도시의 고양이들>(동광출판사)을 펴냈다.
1991년 8월 연세대학교 원주 캠퍼스에서 강의를 시작했으며, 1992년 9월 1일부터 '토지' 5부를 <문화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장편 <김약국의 딸들>, <파시>, <시장과 전장>(나남출판)을 펴냈다. 1994년에는 <박경리의 원주통신-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문학선 <환상의 시기>, <가을에 온 여인>(나남출판)을 펴냈으며, 같은 해 8월 15일 집필 25년 만에 <토지>를 탈고했다.
같은 해 이화여대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0월에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올해의 여성상>을, 12월에는 유네스코 서울위원회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1995년 3월에는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객원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현대문학사)를 펴냈다.
1996년 3월에는 제6회 <호암상예술상>을, 4월에는 칠레정부로부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문학기념메달>을 받았고, 5월에는 토지문화재단 창립 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1997년에는 연세대학교 석좌교수로 임용되었으며, 사단법인 토지문화관 이사장을 맡았다.
1998년에는 토지문화관을 착공, 건립한 뒤 1999년 6월 9일 개관했다. 1999년에는 장편 <표류도>(나남출판)를, 2000년에는 시집 <우리들의 시간>(나남출판)을, 2007년에는 <가설을 위한 망상>(나남출판)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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