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둑'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밥도둑이 진짜 밥을 도둑질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입맛을 돋워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밥을 뚝딱 먹어 치우게 만드는 특별한 반찬'을 지칭한다는 사실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최소 10년 이상 긴 세월을 배움과 씨름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짐을 덜어 줄 '공부도둑'이 존재한다면 누구나 다투어 '공부도둑'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할 것이다. 사람들은 제도권 안이든 제도권 밖에서든 평생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며 살아가기 마련이니, 배움이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것이 아닌, 밥도둑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즐겁고 유쾌한 것이 될 수 있다면 이 기쁨을 어찌 작다 할 수 있겠는가.
평생 배움과 나눔의 즐거움을 누려온 이론물리학자 장회익 교수가 <공부도둑>이라는 책을 펴냈다. 독자들은 이미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눈치를 챘을 것이다. 저자는 '앎의 즐거움'에 대해 자신이 걸어 온 길을 차분한 어조로 차근차근 소개한다.
잔잔하지만 군데군데 곱씹을 요소 또한 많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자기도 모르는 사이 '공부도둑'과 친해져 앎이 주는 즐거움을 기꺼이 맛보고자 할 것이다. 달거리 노래라도 들려주듯 열두 마당의 이야기판에 펼쳐내는 이야기에서 저자의 공부도둑이 과연 무엇인지 두어 가지만 살그머니 엿보도록 하자.
스스로 학습법의 길잡이가 된 '야생마 기질'
도둑질을 업으로 삼는 아비와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아비 도둑이 아들 도둑을 데리고 부잣집 곡식창고에 들어가 아들을 안에 남겨 둔 채 밖에서 자물쇠를 건 다음 주인이 들을 수 있도록 자물통을 흔들어댔다. 아들 도둑은 창고에 갇힌 채 빠져 나올 길이 없자, 처음에는 쥐가 문짝을 박박 긁는 것 같은 소리를 내, 쥐를 잡으려는 주인으로 하여금 창고 문을 열게 만들고, 뒤늦게 아들도둑을 뒤쫒는 사람들을 따돌리려고 호수에 커다란 돌멩이를 던져 위기를 모면한 뒤 아비 도둑에게 이렇게 따진다. "새나 짐승도 제 새끼를 보호할 줄 아는데
제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욕을 보이십니까?" 그러자 아비 도둑이 말했다.
"남에게 배운 것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그 응용이 무궁한 법이다.
더구나 곤궁하고 어려운 일은 사람의 심지를 굳게 하고 솜씨를 완숙하게 만드는 법이다.
네가 창고에 갇히고 다급하게 쫒기지 않았던들 어떻게 쥐가 긁는 흉내를 내고 못에 돌을 던지는 꾀를 냈겠느냐. 이제 지혜의 샘이 트였으니 다시는 큰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제 천하의 독보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후에 과연 그는 천하제일의 도둑이 되었다.
저자는 공부를 시키지 않으려던 할아버지로 인해 초등학교 과정과 중학교 1학년 과정을 정식으로 밟지 못했다. 그런 환경은 지식욕 강한 저자로 하여금 스스로 학습하고 사유하는 습관을 길러준다. 저자는 산과 들의 모든 것을 통해 사유영역을 넓혔으며 확실하게 알 때까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질문하는 습관을 갖는다.
이 '자가 학습법'은 실체를 접하지 못하는 이론물리학을 공부하는 저자에게 가장 필요한 공부도둑 중 하나가 된다. 저자는 학문의 길에 들어 선 이후 줄곧 자신의 야생마적 기질을 십분 활용하여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만족할만한 성과물을 얻어내곤 한다. 이는 환경적 요인을 잘 컨트롤하는 습관을 몸에 베개 해, 스스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익힌 때문이다.
공부의 참된 맛을 깨우치지 못한 채 공부 맛만 본 그의 할아버지는 "공부 그까짓 것 아무 쓸데없는 것이다, 아예 할 생각도 말라"고 해 그로 하여금 공부를 해야 할 본연의 이유를 찾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할아버지가 오히려 그를 '공부꾼'의 길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는 "아무도 장에 안 가도, 옆에서 아무리 장에 가는 것을 막아도 나는 장벽을 뚫고라도 간다"는 식의 공부 길을 일찍부터 걷게 만든 할아버지에게 감사를 표한다. 결과적으로 그의 지적 성장에 그의 할아버지가 적절한 경쟁상대가 되어 준 셈이다.
아들도둑: 내가 요즘 새로 다듬은 '물리학'이라는 열쇠로 생명이라는 창고 문을 살짝 열고 들여다 봤는데요. 그 안에 번쩍번쩍하는 보물이 엄청나게 많아요. 혹시 나하고 같이 이곳 창고털이에 나서지 않겠어요?
아비 도둑: 나도 그 얘기는 벌써 들었다. 혹시 틈이 있으면 나는 벌써부터 보아 놓은 우주라는 창고의 물건들을 좀 훔쳐내겠다. 그러니 거기는 너 혼자 나서봐라. 혹 필요하다면 널 도와 줄 다른 도둑 하나 붙여주마. - 본문 중
저 글은 그의 지도교수와 나눈 이야기를 도둑 이야기에 견주어 표현한 것이다. 자신의 야생마적 기질을 마음껏 활용하여 다양한 학문적 소양을 길러나간 그는 마침내 관심을 두지 않던 생명공학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학습 소화불량엔 되새김질이 명약
우리는 예습보다 복습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학습효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 못하는 것은 학습 소화불량 증세 때문이다.
저자는 아는 것을 다시 음미하여 더 깊은 이해를 도모하는 것, 알기는 아는 것 같은데 불완전하게 아는 것을 반복적으로 학습하여 완전하게 이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80% 가량 이해가능한 쉬운 책을 반복하여 읽을 것을 권하고 있다. 되새김질을 통해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앎'을 바탕삼아야만 자신감이 생기고 학문에의 혐오증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생겨난다.
제도권 안이건 밖이건 스스로 무언가를 알아가려는 의지와 끊임없는 되새김질이 병행된다면 누구나 공부도둑이 주는 배움의 즐거움을 마음껏 맛보게 될 것이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 不亦說乎) :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공부도둑과 함께 배움의 열락에 빠져보는 것은 어떠하리오.
2008.05.09 18:07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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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양이의 꿈
강인숙 지음,
생각의나무,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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