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산 영국사를 찾아서

많은 문화유적을 둘러볼 수 있는 사찰

등록 2008.05.14 09:52수정 2008.05.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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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읍내를 지나 천태산 영국사 가는 길은 다소 멀다. 양산팔경 가운데 하나로 풍광이 좋기로 유명한 영국사는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가족이 등반하기에 적격이다. 기암절벽과 수림이 조화를 이뤄 찾는 이들에게는 등산로로 잘 알려져 있다.

영국사는 정확히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문무왕 때, 진평왕 때라는 설이 있다. 영국사라고 본격적으로 불려지기 시작한 것은 고려 공민왕 때 부터라고 전해진다.


많은 문화재가 있는 영국사

현재 영국사에는 대웅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1호), 영국사 3층석탑(보물 제533호)을 비롯하여 망탑봉 3층석탑(보물 제535호), 영국사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영국사부도(보물 제532호) 그리고 천연기념물 223호로 지정된 영국사 은행나무, 영국사 원구형부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5호), 영국사 석종형부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4호) 등 많은 문화재들이 볼거리로 있으나 절은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지 하나가 땅에 뿌리를 내린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가 가장 먼저 반긴다. 대략 1200년쯤으로 추정된다. 보통 사찰에 있는 나무들은 사찰의 창건 년대와 수령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은행나무는 국가의 큰 난이 있을 때에는 소리를 내어 운다고 한다. 누가 심었는지는 전해지지 않으나 사찰과 관련된 스님이거나 아님 국가에서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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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1000년 이상 된 은행나무라 그 규모가 엄청나다. 가을 노오란 은행잎이 절정을 이루면 장관을 이룬다. ⓒ 김환대




이곳에서 앞쪽 봉우리를 보면 그 곳이 망탑봉인데 홍건적의 침략 당시 공민왕이 이곳으로 피난왔을 때 망루 역할을 한 망탑이 있는 곳이다. 현재 망탑봉 삼층석탑이 남아 있으며, 망탑 옆에는 마치 고래가 헤엄을 치며 바다 위를 오르는 형상을 한 흔들바위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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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바위 물개 혹은 고래라고 하는 흔들바위이다. ⓒ 김환대




망탑봉 3층석탑(보물 제535호)은 작은 봉우리 정상에 위치한 화강암반 위에 세워졌는데 자연암을 그대로 이용하여 암석을 편평하게 다듬어서 기단을 만들었다. 탑 몸돌은 괴임 받침을 두고 그 위에 세웠고, 지붕돌은 다른 돌로 만들어졌다. 고려 중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1층 몸돌에는 문짝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의 층급 받침은 1층은 5단, 2층과 3층은 4단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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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탑봉 석탑 망탑봉 석탑은 주변에도 석탑 부재가 있다. ⓒ 김환대



영국사에는 대웅전이 정면에 보이고 그 앞에 영국사 3층석탑(보물 제533호)이 있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일반형 석탑으로서, 2중기단 위에 3층으로 만든 몸돌을 세웠다.

위·아래층 기단의 네 면에는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특히 위층 기단의 무늬는 모서리까지 침범할 만큼 크고 넓다. 기단 맨윗돌에는 네 모서리 끝 부분에서 약간의 치켜올림이 있어 주목된다. 탑신부는 각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놓았으며, 1층 몸돌 정면에는 자물쇠와 문고리까지 있는 문짝 모양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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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 몸돌에는 문비가 기단에는 안상이 조각된 석탑이다. ⓒ 김환대



영국사 대웅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1호)은 정면 3칸, 측면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집으로 천태산을 배경으로 높은 석축 위에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조선 중기에서 후기건물의 모습이 남아 있다. 대웅전 내부에는 정면에 석가여래 삼존불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조선후기로 추정되는 동종 하나가 있다. 건물은 1989년 해체, 복원하였다.

대웅전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가 있다. 이 비석은 고려 의종 7년(1154)에 선사(禪師)가 되었고, 명종 1년(1171) 9월 12일 왕사(王師)가 되어 1174년에 입적한 원각국사비이다.

원각국사는 9세 때 선종의 대선사 교웅(敎雄)의 문하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교웅은 "우리 종(宗)을 중흥시킬 사람은 이 어린 사미승일 것"이라고 항상 칭찬을 하였다고 한다.

고려 명종 10년(1180) 한문준이 비문을 지어 원각국사비를 건립하였다고 <조선금석총람> 상권에 그 전문이 소개되고 있다. 비몸돌(碑身)은 점판암 1장으로 되었으며, 비문은 총알을 맞아 손상된 곳이 많아 그 내용을 전부 알 수는 없다.

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과 떨어져 있는 비 머리에 있는 네 마리 용은 매우 특이하며, 각 부분의 조각은 그 제작 연대를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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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국사비 큰 규모이나 마멸이 심하고 비는 일부 파손되었다. ⓒ 김환대



뒤편에는 영국사 석종형 부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4호)가 위치하고 있는데 주인공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부도의 양식은 돌로 된 종 모양인데, 다른 부도에서는 볼 수 없는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또한 아래 위의 연꽃 잎이 한 잎인 점으로 보아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사 원구형부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5호)는 부도의 확실한 주인공은 알 수가 없다. 둥근모양의 이 부도는 다른 부도에서는 볼 수 없는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또한 아래 위의 연꽃 잎이 한 잎인 점으로 보아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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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형부도 부도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없고 주변에는 쌍리지가 있다. ⓒ 김환대



영국사 부도(보물 제532호)는 영국사에서 남쪽으로 200m쯤 되는 언덕 위에 있으며, 신라와 고려에서 많이 조성되었던 8각원당형의 부도이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인 11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원각국사 유골이 영국사에 안치되었다는 기록이 비문에 남아 있어, 이 부도가 원각국사 사리를 안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윗 받침돌 옆면에는 한 겹의 연꽃잎을 위아래로 장식하였다. 탑신에는 한 면에 직사각형의 문짝을 새기고 그 안에 자물쇠 모양을 돋을새김 하였으나 마멸이 심해 알아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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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 부도 작은 크기의 부도로 규모에 비해 조각 수법은 아주 우수하다. ⓒ 김환대



지붕돌의 각 면에는 기왓골을 본떠 새겼는데 처마의 곡선과 잘 어울려서 경쾌한 인상을 준다. 머리장식으로는 복발(覆鉢)과 보주(寶珠)가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아담한 형태의 부도로 매우 우수한 작품이다. 영국사는 천년고찰 답게 많은 문화유적이 있고, 주변 산세가 좋아 많은 이들이 찾는 영동의 알려진 사찰이다.
#천태산 영국사 #망탑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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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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