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사잇길로' 간만에 다녀온 가족 나들이

등록 2008.05.16 14:31수정 2008.05.1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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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보리밭 옆 길에서 가족사진 지나가는 아저씨께 사진을 부탁해서 찍은 사진이다. 우리 가족. 흰 옷 입은 분이 아내. 앞에 배나온 아저씬 필자.

보리밭 옆 길에서 가족사진 지나가는 아저씨께 사진을 부탁해서 찍은 사진이다. 우리 가족. 흰 옷 입은 분이 아내. 앞에 배나온 아저씬 필자. ⓒ 지나가는 아저씨


지난 5월 12일 월요일. 그날은 부처님 오신 날이기도 하고 우리집 딸(초등6)과 아들(초등1)의 봄 단기 방학 마지막 날이기도 하였어요.


집에 그냥 쉴까? 가까운 사찰에라도 가볼까? 아니면 십리 대밭에 있는 보리밭으로 가볼까?
이런 저런 궁리를 해보면서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때요? 보리밭 한번 안 가 볼래요?"

차 멀미 때문에 여행 가는것, 외소한 체력 때문에 멀리 걷기 등을 질색하는 아내. 이게 웬일 입니까? 같이 가보자고 하네요. 새벽에 신문을 돌리고 와서 피곤 할텐데 말입니다.

간만에 가족 나들이 가게 되었지 뭡니까. 우린 외출복으로 차려 입고 아이들을 위한 간식거리 준비한 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a 꽃밭에서 이름은 모르지만 빨갛게 예쁜 꽃. 아내는 예쁘다며 탄성을 질렀다.

꽃밭에서 이름은 모르지만 빨갛게 예쁜 꽃. 아내는 예쁘다며 탄성을 질렀다. ⓒ 변창기


거리는 한산하더군요. 간혹 사찰 옷을 입은 중년 여성들이 눈에 띄기도 하고 말이지요. 울산 태화 강변에 있는 십리대밭은 남목에서 버스로 약 20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강변이 나왔고 강길을 따라 얼마쯤 가니 보리밭이 먼저 나오더군요.


보리밭 앞엔 예쁜 꽃이 많이 피어 있었습니다. 아내는 보리밭과 꽃을 보자 마치 사춘기 소녀 시절로 되돌아 간듯이 탄성을 내지르며 좋아라 했습니다.
"와! 이 꽃밭 좀 봐. 예쁘다."
아내는 휴대폰 사진기로 꽃을 찍으며 즐거워 했습니다. 항상 다소곳하여 속내를 잘 안 드러내는 성격인데 이날은 예외더군요.

우린 십리대밭 사이를 걷고 꽃길도 걷고 보리밭 사잇길로도 걸었습니다. 이곳저곳 풍경 좋은 곳에선 사진도 찍었지요. 아이들도 보리밭이 신기한지 드넓게 펼쳐진 보리밭을 보며 신기해 했습니다.


a 보리밭에서 청보리밭을 보고 아내는 기분 좋아 했다. 아이들도. 나도...

보리밭에서 청보리밭을 보고 아내는 기분 좋아 했다. 아이들도. 나도... ⓒ 변창기


보리밭.

내 어렸을 때 살던 동네 염포엔 온통 들과 밭과 논이었는데 지금은 대규모 공장만이 삭막하게 서 있답니다. 그땐 학교 오가면서 길가에 널린 보리밭에서 보리 한 줄기 뽑아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곤 하였답니다.

보리 줄기를 뽑으면 중간쯤 분리되어 뽑히지요. 그러면 그 중 밑둥을 손가락 길이 만큼 잘라내고 뿌리 부분을 앞니로 잘근잘근 씹은 후 입에 물고 '후' 하고 불면 '삐이' 하고 소리가 나지요. 같이 가는 동무들도 하나씩 뽑아 보리피리 만들어 여기저기서 '삐이' 소리를 내면 어느새 보리피리 합주가 되곤 했답니다.

보리가 다 익고 타작이 시작될 때 우리는 모여 보리밭을 훑고 다닙니다. 그러면 보리 이삭이 많이 버려져 있습니다. 우린 그 보리 이삭들을 주워 모아 보리 짚단으로 불을 질러 거기다 보리 이삭을 넣고 익히지요.

그런 후 손으로 비벼 보리 알갱이를 불리하여 후 하고 입바람을 불면 티는 다 날아가고 구워진 보리알만 남지요. 그것을 입안에 털어 넣고 씹어 먹습니다. 고소하고 맛있었어요. 한참 그렇게 보리를 비벼 먹은 후 얼굴을 보면 입 주변이 시커멓게 변해있어요. 그럼 서로 얼굴을 보면서 키득거리며 웃곤 했는데.

가족과 함께 한 보리밭 구경에 옛 추억이 아른거리네요. 십리대밭 옆에 드넓은 벌판에 심은 청보리는 시청에서 사료용으로 심었다고 합니다. 어릴 때처럼 생보리를 불에 태워 비벼 먹어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네요.

오늘은 그냥 가족과 같이 사진이나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시절 그 많던 보리밭은 모두 사라지고 없어 그리웠는데 보리밭을 구경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가족 #보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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