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철 감사원장의 사퇴가 정부의 압력 때문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를 확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해 주목된다.
원 장관은 16일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전윤철 감사원장 사퇴건과 관련해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며 "지난 1월 대통령 당선자와 저는 전 감사원장을 모양좋게 나가게 하는 것으로 의견일치를 봤고, 3월 초 제가 그런 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이어 "감사원장도 흔쾌히 동의했고, 퇴임준비를 해왔다"면서 "감사원장을 교체하려면, 국회 청문회뿐 아니라 동의도 받아야 하므로 섣불리 하다가는 모양만 나빠지고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원 장관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이었고, 2007년 대선 때도 상근특보로 활동해, 이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원 장관은 지난 1월에는 대통령직 인수위 법무행정분과 상임 자문위원이었다. 그런 원 장관이 대통령의 뜻을 받아 전 원장에게 '모양좋은' 퇴진을 요구했고, 전 원장이 이를 받아들여 물러났다는 것이다.
"감사위원은 탄핵결정이나 금고이상의 형을 선고받았을 때, 장기의 심신쇠약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 때가 아니면 그 의사에 반해 면직되지 않는다"는 감사원법 8조(신분보장)와도 위배되는 것이다.
전윤철 "사표냈더니 이 대통령이 한두 차례 만류"
또 지난 13일 전윤철 원장이 사퇴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한두 차례 만류했다"는 것과도 다른 얘기다.
전 원장은 13일 기자회견에서 "감사원장은 헌법 정신에 따라서 임기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나, 나를 임명했던 대통령이 바뀌었고, 나를 신임했던 국회가 5월 30일 종료되기 때문에 물러난다"며 "그 전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해 5월 말이 가까워 오는 이 시점을 택했다"고 사퇴 배경을 밝혔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것이다.
전 원장은 또 임기 연장을 위해 새정부 코드에 맞는 감사를 하고 있다는 언론 등의 비판에 대해 "지난 날을 회고해 보면 자장면과 소주로 배고픔을 달래면서 살아왔던 공직자인데 공직자 전체를 영혼없는 공직자로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전 원장은 지난해 11월 임기 4년의 감사원장에 연임됐으나, 70세 정년 규정에 따라 내년 6월까지가 사실상의 임기였다.
그가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고위직 인사인 데다, 지난 4월 11일로 예정돼있던 감사원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연기되면서 사퇴압력을 받고 있다는 관측이 나돌았다.
"이 대통령은 바쁜 CEO라 헌법 안 읽은 듯... 원세훈 증인으로 불러야"
전 원장의 사퇴논란과 관련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5일 오전 남일호 감사원 사무총장을 불러 긴급 현안보고를 들었다.
김동철 통합민주당 의원은 이 자리에서 원세훈 장관의 인터뷰를 언급하면서 "원 장관이 전윤철 감사원장을 물러나게 했다고 본인 입으로 얘기했는데 무슨 소리냐"면서 "이 시점에 물러날 결심을 한 사람이 작년 11월에 재임용에 응하고, 국회청문회를 받았겠느냐"고 말했다.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은 전 원장의 사퇴에 대해 "제헌이래 국가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라며 "본인의 의사에 반해 사퇴시킨 것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의 중대한 헌법위반 사항"이라고 규정했다. 조 의원은 이 대통령에 대해 "바쁜 CEO 출신이라 헌법을 한 번도 안보고 취임한 것 같다"고 비꼬면서 "(전 원장의 사표를) 세 번째 반려해야 헌법위반 사항이 치유된다"고 강조했다.
전 원장에 대해서도 "감사원이 새 대통령, 새 정부와 팀워크를 맞추도록 하기 위해 물러난다고 했는데, 정부와 팀워크를 맞추면 감사를 어떻게 하느냐"며 "이런 논리라면 대법원장, 헌재소장도 다 물러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조 의원과 김 의원은 원세훈 장관을 법사위 증인으로 출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김 의원은 한나라당과 이 문제에 대해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전 원장의 사퇴는 자의'라는 점을 강조했다. 나경원 의원은 "지난 정권에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해 감사원장이 그만 둔 것"이라며 "지난 정권 말기에 무리하게 감사원장과 감사위원을 임명했기 때문에 임기제를 무소불위의 원칙으로 주장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박세환 의원은 남일호 사무총장에게 "물러나라는 외부 압력이 있었다면, 평소 전 원장의 성격으로 볼 때 반발하든가,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겠느냐"라고 물었다. 남 총장은 "아무튼 전 원장은 감사원 독립성 문제를 최고의 가치에 두고 일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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