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마디 한자말 털기 (32) 접하다接

[우리 말에 마음쓰기 312] ‘소식을 접하며’, ‘도로와 접해’ 다듬기

등록 2008.05.18 14:52수정 2008.05.1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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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소식을 접하며

 

.. 교회 불지르기와 휴대전화의 빠른 보급, 노예노동과 디지털 혁명, 여아 살해와 나스닥 증권시장 붕괴, 지참금 문제로 아내를 태워죽이는 남편들과 세계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성들에 관한 소식을 늘 동시에 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아룬다티 로이-9월이여 오라>(녹색평론사,2004) 21쪽

 

 “여성들에 관(關)한 소식”은 “여성들을 다루는 소식”이나 “여성들을 말하는 소식”으로 다듬습니다. ‘동시(同時)에’는 ‘한꺼번에’로 다듬어 주고, ‘여아(女兒)’는 ‘계집아이’나 ‘여자아이’로 다듬습니다.

 

 ┌ 접하다(接-)

 │  (1) 소식이나 명령 따위를 듣거나 받다

 │   - 사고 보도를 접하다 /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하자

 │  (2) 귀신을 받아들여 신통력을 가지다

 │   - 신을 접하게 되는데 쉽게 될 수야 없지요

 │  (3) 이어서 닿다

 │   -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에 접해 있다 / 우리 마을은 바다와 접해 있다 /

 │     판자로 지은 집들이 서로 접해 있다 / 우리 집은 바다를 접하고 있다

 │  (4) 가까이 대하다

 │   - 그는 거기서 엉뚱하게 동학의 교리에 접하고 바로 입도를 했습니다 /

 │     나는 사람들과 접하면서 사람마다 다른 개성을 발견했다 /

 │     그들이 서로 접하기 시작한 것은 며칠 전이었다 /

 │     그녀는 다른 간호원과는 달리 나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  (5) 직선 또는 곡선이 다른 곡선과 한 점에서 만나다.

 │      또는 직선, 평면, 곡면이 다른 곡면과 한 점에서 만나다

 │

 ├ (접하다 1) → 소식을 듣다

 ├ (접하다 2) → 신이 내리다

 ├ (접하다 3) → 바다에 닿다 / 집이 붙어 있다 / 바다를 끼고 있다

 ├ (접하다 4) → 교리를 듣고 / 사람들과 만나다 / 나를 볼 기회

 └ (접하다 5) → 닿다 / 만나다

 

 날이 갈수록 ‘接하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지난날에는 지식인과 글쟁이만 쓰던 ‘接하다’였으나, 이제는 신문이며 방송이며 인터넷이며 책이며 영화며 연속극이며 …… 온갖 곳에 ‘接하다’라는 말이 쓰입니다.

 

 소식을 듣는 자리에도, 어디에 닿는다는 자리에도, 이야기를 듣는다는 자리에도, 사람을 만난다는 자리에도 죄다 ‘接하다’라는 말을 넣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책을 접한다”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제법 많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조용히 사라집니다.

 

 

ㄴ. 도로와 접해 있는

 

.. 버스가 다니는 도로와 접해 있는 논에 자갈을 실은 트럭과 불도저가 왔다 ..  <엔도 슈사쿠/김석중 옮김-유모아 극장>(서커스,2006) 64쪽

 

 ‘도로(道路)’는 ‘길’로 다듬어 줍니다. ‘트럭(truck)’은 ‘짐차’로 손질하고, ‘불도저(bulldozer)’도 ‘땅차’나 ‘밀차’로, 또는 다른 말로 풀어내어 봅니다.

 

 ┌ 도로와 접해 있는 논

 │

 │→ 길에 닿아 있는 논

 │→ 길에 붙어 있는 논

 │→ 길과 가까이 있는 논

 │→ 길 옆에 있는 논

 │→ 길가에 있는 논

 │→ 길가 논

 └ …

 

 버스가 다니는 길 옆에 있는 논이라는 소리네요. 그러면 한 마디로 “길가 논”입니다. 이래저래 길게 갖다 붙이지 않아도 돼요. “길가에 있는 논”이라 해도 됩니다. “길에 붙어 있는 논”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있는 그대로 쓰면 아무 탈이 없으나, 있는 그대로 안 쓰니까 자꾸 탈이 납니다. 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쓸 때가 가장 알맞아요. 우리들 삶도 있는 그대로 가꾸고 돌볼수록 자연스럽게 아름다워지고 살뜰함이 깊어가요. 우리가 쓰는 말과 글도 억지스러운 꾸밈이나 덧붙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알맞고 손쉽게 쓰는 가운데 아름답게 가꾸고 살뜰하게 돌볼 수 있습니다.

 

 

ㄷ. 이야기는 곧잘 접해 보았지만

 

.. 힙합을 하기 위해서 주차장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한다는 이야기는 곧잘 접해 보았지만, 이삭이처럼 대놓고 다른 직종의 장래 희망을 말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 ..  <김종휘-너, 행복하니?>(샨티,2004) 75쪽

 

 “힙합을 하기 위(爲)해서”는 “힙합을 하려고”로 손봅니다. “생계(生計)를 해결(解決)한다”는 “살림을 꾸린다”로 풀고, “다른 직종(職種)의 장래(將來) 희망(希望)을 말한 경우(境遇)는”은 “앞으로 다른 일을 하겠다고 말한 적은”으로 풀어냅니다.

 

 ┌ 이야기는 곧잘 접해 보았지만

 │

 │→ 이야기는 곧잘 들어 보았지만

 │→ 이야기는 곧잘 들었지만

 │→ 이야기는 곧잘 귀에 들어오지만

 └ …

 

 이야기는 ‘듣’습니다. 한쪽에서 이야기를 ‘하’면 한쪽에서는 ‘들어’요. 소식도 듣고 이야기도 듣습니다. 칭찬도 듣고 꾸지람도 듣습니다. 때로는 “귀에 들어오는” 이야기나 소식이 있습니다.

 

 ― 살림을 꾸린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누군가한테 건네는 자리라면, “이야기가 있다”고 적어 볼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2008.05.18 14:52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외마디 한자말 #우리말 #우리 말 #접하다 #한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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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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