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에서 동해 넘어가는 길굽이굽이 넘는 재
이희동
동해를 지나 삼척에 다다르니 대금굴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번 달 사촌의 결혼식에서 만난 큰어머니가 다녀오셨다며 입이 마르도록 자랑했던 바로 그 동굴. 큰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금굴에 비하면 환선굴은 장난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동양 최고라고 광고해왔던 환금굴이건만 도대체 대금굴은 어떻게 생겼기에 이리도 찬밥이 된 걸까?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처음에는 대금굴이 우리가 찾던 그 동굴이 맞는지 긴가민가했지만, 삼척에 들어서는 순간 대금굴의 안내판만이 모두 새로 정비한 것인지라 확신할 수 있었다. 대금굴에 대한 기대 때문일까? 오전의 정선 레일바이크와 마찬가지로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모든 차들이 대금굴행인 것 같았다. 설마 또 표가 없는 건 아니겠지?
삼척에서 태백 방면으로 얼마나 갔을까? 저 멀리 큼지막한 동굴 종유석 모양의 구조물이 개선문처럼 서 있었다. 대금굴과 환선굴이 함께 씌어져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두 동굴은 같이 붙어 있는 듯했다. 나중에 알아본 바로는 대금굴을 보고 나면 곁다리로 환선굴도 볼 수 있게 해놓았다니 과연 대금굴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구조물 앞에서 우회전을 한 우리는 표지판을 따라 더더욱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8년 전에 만들어진 지도 책자를 보니 그 길의 끝에는 환선굴만이 표시되어 있을 뿐, 주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동굴 때문에 만들어지거나 포장된 길이라는 이야기인데 과거 이곳은 얼마나 산간오지였을까?
산이 깊어지는 만큼 그 색이 연해진다 싶더니 창밖으로 현수막 하나가 지나갔다.
'대금굴 관람은 인터넷 예약으로만 가능합니다'순간 차 안은 정적으로 휩싸였다. 설마, 또 퇴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끝은 보고 가야지 않겠는가. 현수막이 잘못 되었기를, 현장 판매분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차를 몰아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제발.
드디어 등장한 동굴 입구의 매표소. 대금굴을 관람할 수 없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직원은 매정하게 대답했다. 이미 인터넷으로 6월까지 모두 예약되어 있다고, 인터넷 말고는 다른 방법으로 예매하는 방법이 없다고.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부랴부랴 서두른 결과가 결국 두 번의 퇴짜란 말인가. 오랜 만에 식구들과 돌아다니는 것 자체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여행길이었지만, 막상 두 번씩이나 거절을 당하니 기분이 썩 좋을 리 없다. 여행 이전부터 꼼꼼히 계획하지 않았던 우리의 잘못도 잘못이었지만, 모든 예약을 인터넷을 통해 받는다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관람객을 모으는 입장에 있어서 인터넷 예매는 매우 유용한 수단일 것이다. 현장 판매 분을 남기기보다 전량 인터넷으로 판매한다면 그만큼 빈 좌석의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우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예매를 할 것이오, 동굴관광과 연계해 다른 상품을 준비하는 여행사들이 대량 구매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여타 관광객의 경우이다. 컴맹에다가 단체관광을 원하지 않는 이들에게 100% 인터넷 예약은 동굴 관람을 하지 말란 이야기와 같다.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여행 상품을 강제 구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연 이와 같은 구조가 옳은 것일까? 특정 계층을 제외한 채 관광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까?
물론 관광의 궁극적 목표는 이윤추구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국민의 권리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근대국민국가가 수학여행을 통해 국토를 재발견시키고 국민을 만들어가듯이, 여행이나 관광을 통한 국토순례는 국민이 형성되는 경로 중의 하나이며 동시에 권리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것은 국민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접근권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기본권을 컴퓨터를 원활히 다루지 못한다는 이유로, 원하지 않는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본권이 어찌되었든 간에 현실은 퇴짜였다. 우리는 다음을 기약한 채 핸들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지도와 창밖을 바라보았다. 두 번이나 퇴짜 맞은 우리 가족들을 군소리 없이 받아줄 그런 곳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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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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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퇴짜야?" 여행객 허무하게 하는 '인터넷예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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