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생중계를 통해 현장상황을 지켜보다가 10년 전 부르던 노래(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흘러나와서 잊고 살았던 옛 기억이 떠올라 친구 2명을 꼬셔서 이곳에 왔다"
25일 새벽, 종로구 교보빌딩 앞에서 자유발언을 30대 시민의 말이다. 한 시민은 "<다음 아고라>의 글을 통해 새벽까지 이어지는 집회 소식을 듣고 이곳에 뛰어왔다"고 밝혔다.
반대로 소식을 전해주는 시민들도 있다. 서울예대에 다니는 임아무개(25)씨는 "노트북을 통해 활동하는 커뮤니티 등에 현장 상황을 전해준다"고 말했다.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를 들고 현장 상황을 담아 웹상에 전달하는 시민들도 많다. 대학생인 대화명 '라쿤남방'은 <아프리카 TV>를 통해 직접 생중계를 실시하여 누리꾼들에게 현장 소식을 전했다.
이처럼 시민들을 하나로 묶는 수단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즉석에서 소식을 전하며 하나로 뭉친다. 시민들이 직접 뉴스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새로운 '디지털 저널리즘'이 웹상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기존 언론사의 느린 뉴스 전달에 답답해한다. 각 언론사 기사에는 "상황 벌어진 거 인터넷에 다 떴는데 왜 내용 업데이트가 안 되는 거냐"는 성토의 댓글이 많다. 비교적 기사 업데이트가 빠른 인터넷 매체도 이들에겐 성이 차지 않는다.
그래서 시민들은 언론사 보다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커뮤니티나 클럽 등에 먼저 접속하여 정보를 얻는다.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알고 싶다"며 기자의 노트북에 다가 온 시민들은 "아직 기사가 안 올라왔냐"며 자신이 활동하는 카페 주소를 입력했다. 포털 사이트를 이용할 때도 '느려 터진' 기사보다 토론방 등의 공간에서 먼저 뉴스를 접한다.
이명박 정부의 "졸속적인 쇠고기 협상"을 계기로 '디지털 게릴라'들의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왜 거리로?] 귀 닫은 정부에 인내심 탕진... "입만 나불대니 듣지 않는 건가?"
동네 길거리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차량 통행을 막고 도로를 점거하게 된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은 왜일까? 시민들은 "계속적으로 국민의 말을 듣지 않는 정부에 대한 인내심이 탕진됐다"는 말을 자주 했다.
회사원인 이아무개(22)씨는 "지금 정부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며 "쇠고기 협상은 물론이고 민영화 정책, 대운하, 교육자율화 정책 등을 보면 우리가 지금 한가하게 노래만 부르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게임 개발자라고 밝힌 이아무개(30)씨는 "국민들이 이렇게 도로를 점거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 누구 책임이냐"고 반문한 뒤, "한 달 동안 계속해서 한목소리로 '쇠고기 협상 무효'를 외쳤는데도 티끌만큼도 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에도 있었다는 40대의 시민은 "내가 살아갈 세상을 내가 만들어 나간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보기 좋다"며 "정부와 정치권은 우리 목소리를 새겨들을 의지가 보이지 않는 만큼 옆의 친구와 형, 동생들 손 붙잡고 함께 나와 10만의 물결을 만들어 보자"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인 박아무개(19)양은 "새벽까지 길거리를 계속 거니는 게 힘들지만 고생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보험이라 생각한다"며 "결국 정부가 일을 제대로 못하고, 소통을 하려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 이렇게라도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하아무개(18)양은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문에서 '어린 학생들까지 나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참 가슴이 아팠다'고 할 때 정말 욕하고 싶었어요. 만날 말로만 저러는 것이 정말 답답하잖아요. 우리가 입만 나불대니까 듣지 않나 봐요. 우리 입만 아프지."
[이모저모] '조직 안 된' 조직이라 우왕좌왕... "자발적이라 더 역동적"
'조직되지 않은' 조직이다 보니 질서정연한 일사불란함은 없었다. 누리꾼들의 즉석 만남이었기 때문에 앞에서 이끌 지휘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몇몇의 앞장서는 사람들이 시민대오를 이끌며 거리 행진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미리 정해진 행진 동선이나 시위 계획도 딱히 없었다.
때문에 경찰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진땀을 뺐다. 계속 즉석에서 이동 경로를 변경하자 한 경찰관계자는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 힌다"며 혀를 내둘렀다.
익숙지 않은 거리 행진인데다가 지휘자도 없는 상황이라 진행 과정에서의 이견도 많이 존재했다. 서울 시청 앞에서 광화문 쪽으로 행진하던 시민들이 경찰의 제재에 봉착하자 "청계광장으로 돌아가 세를 규합하자", "돌아가면 고립된다. 서울역 방향으로 가자", "그냥 경찰 앞까지 전진하자"는 등의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20분여의 시간 동안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서울역 방향으로 가자는 결론 나왔다. 그러자 다시 한 목소리로 "고시철회 협상무효", "이명박 탄핵"등의 구호를 외치며 한걸음씩 발을 뗐다. 국민대 재학 중인 박아무개(34)씨는 "아무래도 이끄는 사람이 없으니까 좀 헤매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특정 단체가 앞에서 끌고 가기보다 이렇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게 더 역동적이고 멋진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즉석에서 책임자를 선출하기도 하며 향후 계획에 대한 토의와 협의, 그리고 다수결에 의한 결정까지 내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시청과 서울역, 명동, 동대문을 지나 대학로까지 진입한 시민들은 잠시 자리에 앉아 회의를 진행했다. 앞에 나서서 이동 경로를 짜내던 한 남성이 시민들의 환호소리와 함께 '책임자'가 되기도 했으며 향후 이동 계획에 대해 토의하는 시간도 가졌다. "자정이 다 됐으니 해산하고 다음날을 기약하자", "시청 쪽으로 가서 거기 시민들과 합류하자"는 두 의견이 나왔고, 다수가 찬성한 "계속 하자"는 의견에 따라 다시 시청으로 이동했다.
시민들은 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한 시민이 산 초코바를 손에서 손으로 건네며 나눠먹었다. 한 시민은 거리 행진 중간에 물을 사다가 도로 중간에 올려놨다. 그 길을 지나는 시민들은 물을 하나씩 꺼내 마시며 메마른 목을 축였다.
[관련기사 | 미국 쇠고기 수입 후폭풍]
2008.05.26 11:00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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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왜 도로를 점거했나? 온-오프라인 넘나드는 '디지털 게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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