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 판단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

[역사소설 소현세자 52] 일본과의 수교를 봉쇄하라

등록 2008.05.26 19:21수정 2008.05.2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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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비. 삼전도비 후면에 새길 ‘대청황제공덕비’라는 일곱 글자를 쓰지 않기 위하여 신익성은 왕명을 거역하였다. ⓒ 이정근


신익성의 의지는 단호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비문을 쓰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목숨을 내놓은 항명이다. 인조 역시 신익성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임금의 명을 거역하지 않았는가. 갈등이 깊었다. 심사숙고 하던 인조가 한발 물러섰다.

"병든 자가 어찌 글을 쓸 수 있겠는가. 여이징으로 하여금 쓰도록 하라."


우여곡절을 거치며 목판본이 완성되었다.

"말을 주어 어서 빨리 심양으로 보내라."

급했다.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비문을 심양으로 보낸 인조는 비석을 세울 자리에 여러 층계를 만들고 담장을 둘러라 명했다.

사신은 도성에 들어와 있다. 급주마를 보내고 공사를 하고 있다고 면피 될 리 없다. 세우겠다고 자청한 황제의 공덕비를 아직 세우지 않았으니 어떠한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른다. 잘 보이려고 했던 일이 오히려 칙사의 노여움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도성에 들어와 있는 사신은 아직 아무런 언급이 없으니 답답하고 불안하다. 인조는 묘당의 당상관을 불렀다.

"사신의 복심을 알아보도록 하라."


도성에 들어와 있는 사신의 주 임무를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역관을 접촉한 비국 당상관이 보고 했다.

"저들이 함구하고 있어 알아낼 방도가 없습니다."


도성에 들어온 사신은 임무를 밝히지 않았다. 거들먹거리며 대접만 받았다. 그들 역시 황급히 떠나오느라 임무가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 도성에 들어왔다.

정보에 주린 임금에게 신하가 내놓은 의견 "관직을 헌상하지요"

"계속 탐문하라."

부스러기 정보라도 얻어 오라는 것이다. 청나라 말에 능통한 역관과 내관들이 투입되었다.

"정역관에게 상을 주면 좋을 듯 합니다."

좌의정 신경진이 임금에게 주청했다. 예전엔 정명수 아내의 아우인 봉영운을 벼슬시키자 했고 이제는 역관 본인에게 상을 주자는 것이다.

"무슨 상을 주면 좋겠는가?"
"정명수를 동지중추부사로 제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하라."

정명수를 만나고 온 신경진이 아뢰었다.

"관직을 내리겠다하니 정역관이 기뻐하는 빛이었고 처남 봉영운을 서로(西路) 변장에 승차해주기를 원하고 매부 임복창이 현재 성천에서 정병으로 있으니 군역을 면제해 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역관 김돌시의 가족도 벼슬을 내려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리하도록 하라."

임금의 명을 시행하던 병조에서 아뢰었다.

"정명수를 동지중추부사로, 김돌시의 종제 김산해를 수문장으로 임용하라는 관교를 상신의 분부에 따라 작성하여 정원에 보냈는데 정명수가 연도를 소급해 달라고 합니다."
"원하는대로 해주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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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화관. 서대문구 영천동에 있는 모화관 표지석. ⓒ 이정근



갑자기 연체동물이 된 임금이 모화관에 거둥하여 익일연(翌日宴)을 베풀었다. 사신이 들어온 다음날을 기념하는 잔치이며 본격적인 사신임무가 시작되는 날이다.

"대청국은 일본과 수교할 것이오."

함구로 일관하던 청나라 사신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전혀 뜻밖의 문제였다. 삼전도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허를 찔린 셈이다. 고압적인 자세로 화두를 툭 던진 사신은 더 이상 언급이 없었다. 일방통고인지 협조를 구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잔치를 끝낸 사신은 한강에 나가 유람선을 띄우고 유희를 즐겼다.

사신이 관소로 돌아간 그날 밤. 어전에서는 심야 회의가 열렸다.

"저들이 왜국과 수교하겠다고 말한 것은 필시 곡절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왜와 수교하여 병기를 무역하려는 것이다."

대륙의 패권을 놓고 명나라 일전을 벼르고 있는 청나라는 중화기의 열세를 절감했다. 남한산성에 갇혀있던 인조와 조선군 병사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홍이포는 실은 청나라에서 제조한 대포가 아니라 명나라 장수들이 투항하면서 가지고온 것들이었다. 일본과 외교 관계가 없는 청나라는 조선을 통하여 일본과 수교하고 홍이포의 생산국 네덜란드와 교역을 트겠다는 것이다.

일본과의 수교를 봉쇄하라!

"이는 반드시 우리나라에 화를 끼칠 것입니다. 저 사람들은 으레 은밀한 말로 뜻을 전달하는데 우리도 난처하다는 뜻으로 말하여 황제에게 보고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최명길이 신중하게 접근하자고 말했다.

"다른 대신의 뜻은 어떠한가?"
"저들은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나서는지를 시험해 보려는 것입니다."

홍서봉이 의견을 내놓았다.

"청나라가 반드시 수교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먼저 일본에 사신을 보내 의사를 타진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듯 합니다."

최명길의 외교 감각은 남달랐다. 청나라가 일본과 외교 관계를 원하면 기필코 수교하리라 고 전망했다. 기왕 이루어질 일. 조선이 능동적으로 나서 청나라와 일본의 외교관계에 일정부분 역할을 하고 실추한 조선의 외교력을 회복하여 돌파구를 열어보자는 것이다.

"그건 안 될 말이다. 그들이 일본과 수교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인조의 의중은 완고했다. 청나라와 일본을 떨어트려 놓아야 조선의 이익이라고 생각했다. 명나라와 수교하고 있는 일본과 조선 즉, 3국이 연대했을 때 청나라와 대적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이미 청나라에 짓밟혔고 명나라는 무너지고 있다. '정세 판단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한다'고 역사는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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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전. 창덕궁 인정전에서 왕비 책봉식이 거행되었다. ⓒ 이정근



다음날 창덕궁 인정전에서 왕비 책봉례가 이루어 졌다. 14살 어린나이에 인조의 계비가 된 장렬왕후 조씨가 청나라 황제의 책봉을 받았다. 성스러워야 할 책봉례가 우울하게 치러졌다. 영광보다도 치욕의 정서가 궁궐을 짓눌렀다. 왕비는 소현세자보다 12살 밑이다. 세자빈 강씨보다도 13살이나 아래인 시어머니가 탄생한 것이다.

본국에서 가져온 삼전도비문을 받은 소현세자는 지체 없이 청나라 예부를 방문했다.

"이번 칙사를 내보낼 때 만주 문자를 쓰는 사람과 몽어(蒙語)를 아는 사람을 미처 내보내지 못하고 칙사로 하여금 비석만 보고 오게 했소. 비문 쓰는 사람은 후일에 내보낼 테니 그리 아시오."

비문을 검토한 범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로소 비문이 합격점을 통과 한 것이다.

"세자책봉을 곧 시행할 테니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시오."

세자관으로 돌아온 소현은 비문 통과 사실을 빨리 본국에 알리라 명하고 번민에 휩싸였다.

"청나라의 책봉을 받게 되면 나는 명나라를 배은하고 청나라의 신하가 된다. 전란에 피폐해진 조국을 끌어안고 국권회복을 꾀하고 있는 부왕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귀국하면 흐트러진 국력을 모아 부왕의 원수를 갚고 백성들의 원한을 갚기 위하여 청나라를 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이 때였다. 가마 한 대가 세자관 정문 앞에 멈췄다. 4명이 메는 4인교였다.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용 가마였다. 시종을 거느린 것으로 보아 예삿집 가마가 아니었다.
#삼전도비 #소현세자 #칙사 #모화관 #인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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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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